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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축영화이자 지역영화

<콜럼버스> 코고나다 2017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진(존 조)은 엘리나(파커 포시)에게 건축 교수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라는 소식을 듣고 급히 서울에서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떠난다. 콜럼버스에서 평생을 살아온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는 그곳의 건축물들을 사랑하고 건축을 배우는 것에도 흥미가 있지만, 한 때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엄마 마리아(미셸 포브스)를 홀로 두고 떠나길 어려워한다. 우연히 마주친 진과 케이시는 콜럼버스의 여러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성장한다. 한국계 감독인 코고나다의 신작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를 연상시킨다. 대부분의 쇼트가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되었기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또한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코고나다는 링클레이터에 대한 다큐멘터리 <Linklater: On Cinema & Time>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렸고(그 밖의 히치콕, 브레송 큐브릭 등의 감독들에 대한 단편 다큐멘터리들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오즈의 각본가 파트너인 노다 코오고에서 따왔다. <비포 선라이즈>를 연상시키는 진과 케이시의 이야기, 오즈의 후반기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후반부의 작별과 받아들임은 <콜럼버스>가 어떤 영화가 되기를 추구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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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대부분은 카메라가 고정된 쇼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프레임 속의 구도가 마치 회화처럼 꽉 잡혀있는 장면들은 다양한 건축물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의 사람들을 한눈에 담아낸다. 간혹 이렇게 꽉 찬 구도들로 가득한 영화들, 가령 오즈의 후반기 컬러영화들이나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같은 작품들은 어떤 답답함을 주기도 한다. (물론 언급한 작품들을 이러한 답답함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걸작이다) 반면 코고나다의 <콜럼버스>는 104분의 러닝타임이 이러한 쇼트로 가득함에도 편안하다. 그 이유는 프레임 속에 담기는 색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스크린 위에 가장 많이 펼쳐지는 색은 식물의 초록이다. 다양한 시기에 각기 다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건축물들은 자연 속의 초록 혹은 인공적인 정원의 초록과 조화를 이루며 한 프레임 속에서 편안한 그림이 된다. 그 속에서 진과 케이시가 나누는, 주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촉발되어 진의 아버지와 케이시의 어머니로 향하는 이야기들은 극적인 사건이나 격한 감정연기 없이도 그들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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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된 감정선은 진과 케이시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들 보다는 케이시와 마리아의 모녀 멜로드라마를 통해 등장한다. 진의 아버지가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가 콜럼버스를 떠나는 케이시의 모습으로 끝나는 것은 이 영화가 진의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하여 케이시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남과 대화를 통해 진과 케이시 모두가 성장하지만, 더욱 큰 폭으로 성장하는 것은 케이시이다. 그는 콜럼버스의 건축물들을 통해 흥미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시작된 대화를 통해 다음 단계의 도약을 시도한다. 코고나다는 콜럼버스의 건축물에서 케이시의 서사를 이끌어내고, 그의 피사체가 된 건축물들처럼 정교한 구도의 숏들을 쌓아 올려 별 다른 사건 없이 케이시를 성장시킨다. 그는 콜럼버스라는 지역을 통해 서사를 만들어내고 그곳에서 감정을 이끌어낸다. 때문에 <콜럼버스>는 흥미로운 건축영화이자 지역영화이다. <비포 선라이즈>를 보면서 비엔나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처럼, <콜럼버스>를 보면서 콜럼버스의 건축물들을 보러 떠나고 싶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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