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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22. 2018

흥미로운 건축영화이자 지역영화

<콜럼버스> 코고나다 2017

 진(존 조)은 엘리나(파커 포시)에게 건축 교수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라는 소식을 듣고 급히 서울에서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떠난다. 콜럼버스에서 평생을 살아온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는 그곳의 건축물들을 사랑하고 건축을 배우는 것에도 흥미가 있지만, 한 때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엄마 마리아(미셸 포브스)를 홀로 두고 떠나길 어려워한다. 우연히 마주친 진과 케이시는 콜럼버스의 여러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성장한다. 한국계 감독인 코고나다의 신작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를 연상시킨다. 대부분의 쇼트가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되었기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또한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코고나다는 링클레이터에 대한 다큐멘터리 <Linklater: On Cinema & Time>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렸고(그 밖의 히치콕, 브레송 큐브릭 등의 감독들에 대한 단편 다큐멘터리들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오즈의 각본가 파트너인 노다 코오고에서 따왔다. <비포 선라이즈>를 연상시키는 진과 케이시의 이야기, 오즈의 후반기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후반부의 작별과 받아들임은 <콜럼버스>가 어떤 영화가 되기를 추구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콜럼버스>의 대부분은 카메라가 고정된 쇼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프레임 속의 구도가 마치 회화처럼 꽉 잡혀있는 장면들은 다양한 건축물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의 사람들을 한눈에 담아낸다. 간혹 이렇게 꽉 찬 구도들로 가득한 영화들, 가령 오즈의 후반기 컬러영화들이나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같은 작품들은 어떤 답답함을 주기도 한다. (물론 언급한 작품들을 이러한 답답함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걸작이다) 반면 코고나다의 <콜럼버스>는 104분의 러닝타임이 이러한 쇼트로 가득함에도 편안하다. 그 이유는 프레임 속에 담기는 색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스크린 위에 가장 많이 펼쳐지는 색은 식물의 초록이다. 다양한 시기에 각기 다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건축물들은 자연 속의 초록 혹은 인공적인 정원의 초록과 조화를 이루며 한 프레임 속에서 편안한 그림이 된다. 그 속에서 진과 케이시가 나누는, 주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촉발되어 진의 아버지와 케이시의 어머니로 향하는 이야기들은 극적인 사건이나 격한 감정연기 없이도 그들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의 주된 감정선은 진과 케이시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들 보다는 케이시와 마리아의 모녀 멜로드라마를 통해 등장한다. 진의 아버지가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가 콜럼버스를 떠나는 케이시의 모습으로 끝나는 것은 이 영화가 진의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하여 케이시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남과 대화를 통해 진과 케이시 모두가 성장하지만, 더욱 큰 폭으로 성장하는 것은 케이시이다. 그는 콜럼버스의 건축물들을 통해 흥미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시작된 대화를 통해 다음 단계의 도약을 시도한다. 코고나다는 콜럼버스의 건축물에서 케이시의 서사를 이끌어내고, 그의 피사체가 된 건축물들처럼 정교한 구도의 숏들을 쌓아 올려 별 다른 사건 없이 케이시를 성장시킨다. 그는 콜럼버스라는 지역을 통해 서사를 만들어내고 그곳에서 감정을 이끌어낸다. 때문에 <콜럼버스>는 흥미로운 건축영화이자 지역영화이다. <비포 선라이즈>를 보면서 비엔나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처럼, <콜럼버스>를 보면서 콜럼버스의 건축물들을 보러 떠나고 싶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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