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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25. 2018

다양한 모성을 이야기하는 다채로운 방법

<당신의 부탁> 이동은 2017

 2년 전 남편을 잃은 효진(임수정)은 친구 미란(이상희)과 공부방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종욱(윤찬영)의 보호자인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면서, 보호자가 없어진 종욱과 함께 살 수 없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얼떨결에 종욱과 함께 살게 된 효진. 법적으로는 종욱의 어머니로 등록되어 있지만 어릴 적 몇 차례 만난 것뿐이었던 둘의 기묘한 가족생활이 시작된다. 이동은 감독이 <환절기>와 연달아 극장가에 선보이게 된 <당신의 부탁>은 그가 직접 쓴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무덤덤하고 담백한 톤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이동은 감독의 연출은 한국영화에서 줄기차게 다루어진 모성을 주제로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접근방식이 눈에 띈다. 

 <당신의 부탁>이라는 한국어 제목보다 <Mothers>라는 영문 제목이 이 작품을 더욱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는 엄마라는 상황에 놓인다. 효진은 얼떨결에 종욱을 맡게 되고, 임신한 상태로 영화에 등장한 미란은 영화 중반 출산을 거치고, 종욱의 친구인 주미(서신애)는 임신을 하며, 당연하게도 이미 엄마인 효진의 엄마(오미연)가 영화에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다양한 엄마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하고 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성을 이해하며 드러낸다. 혈연은 아니지만 호적으로 엮인 효진과 종욱, 남편이 있지만 그의 직업 특성상 혼자 생활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 미란, 미혼모인 주미 등의 모습은 사랑과 희생으로 점철된 신파극 속의 획일화된 모성과는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당신의 부탁>은 수많은 모성과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그리고 그들 각자가 자신의 모습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효진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이 다양한 형태의 모성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한다면, 종욱은 그 형태 안에 자리 잡게 되는 한 개인이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엔 종욱은 “우리 서로 존중하면서 살자”라는 효진의 말을 무시하는 듯 가출해버린다. 몇 번의 사건이 있은 후 타협과 수긍 그 사이에 있는듯한 감정을 드러낸다. 종욱은 효진, 효진의 엄마, 주미 등 엄마의 위치에 놓이게 된 자신의 주변 인물로부터 조금씩 타협과 수긍을 배워간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선택하고 싶어 하는 종욱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란이 효진에게, 효진이 종욱에게 바통터치하듯이 넘겨주는 “OO 하기에 가장 알맞은 사람은 너야. 그런데 현실적으로 OO를 하지 말아야 할 사람도 너야.”라는 말은 인생, 특히 누군가와 매일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가족관계 안에서 타협하고, 수긍하고, 그것을 구성하는 시발점임을 표현한다. 

 <당신의 부탁>은 덤덤하게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진행된다. 주인공인 효진과 종욱은 물론, 미란과 주미 등 각 조연 캐릭터가 지닌 이야기들이 한층 한층 쌓여 풍성한 결을 지니게 되는 이 작품을 보고 있자면 이동은 감독의 다음 작품이 절로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신파를 배제한 채 모성을 이야기하는 방식, 무척이나 담백하고 촘촘한 방식은 자극으로 가득한 한국 극영화들 사이에서 빛을 발한다. 최근 여러 영화들에서 고통받는 역할들을 주로 연기해온 이상희 배우가 드디어 고통받지 않는 역할로 등장한 것에서 <당신의 부탁>이 가진 태도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디어 <장화, 홍련> 이후 임수정의 대표작으로 부를 수 있는 작품이 등장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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