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01. 2018

즐거운 한 판 뒤집기

<당갈> 니테쉬 티와리 2016

 전직 레슬링 전국 챔피언이었던 마하비르(아미르 칸)는 국제대회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어느 작은 시골 동네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금메달을 통한 국위선양이라는 꿈을 자신의 아들이 이뤄주길 바라면서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딸만 넷이 줄줄이 태어나고, 마하비르는 자신의 꿈을 접으려 한다. 그러던 중 첫째와 둘째인 기타(자이라 와심/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바비타(수하니 바트나가르/산야 말호트라)가 레슬링에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마하비르의 혹독한 훈련 끝에 기타와 바비타는 차례로 남성 레슬러들을 격파하고, 여성 레슬러 전국 챔피언이 되기 이른다. 마침내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된 기타와 바비타는 과연 마하비르의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있을까? <세 얼간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르 칸이 제작과 주연을 맡은 <당갈>은 여성 레슬러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받은 기타와 바비타, 이들을 길러낸 아버지 마하비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도 영화답게 춤과 노래가 함께하는 맛살라로 가득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88 서울 올림픽 중계방송과 마하비르가 직장동료와 벌이는 레슬링 한 판이 겹쳐지는 초반부의 재치 있는 편집은 <당갈>이 준수한 완성도의 스포츠 영화이자 오락 영화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영화에 다양한 노래들이 삽입되어 레슬링 경기나 훈련 장면을 마치 하나의 안무처럼 그려지도록 연출된 장면은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맛살라라는 인도영화의 전통을 훌륭하게 변용하면서도 매끄러운 서사의 연결과 스포츠 영화라는 장르적인 특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현명한 선택이다. 기타가 국제대회에 진출하게 되는 후반부는 도리어 노래를 비롯한 음악을 줄이고 레슬링 경기의 압박감과 타격감 등을 전달하는데 집중하여 정통 스포츠 드라마의 연출법을 따르며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161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순식간의 지나갈 정도로 <당갈>은 재미있게 흘러간다. 

 동시에 인도의 여성 레슬러를 다루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만하다. 기타와 바비타가 훈련을 통해 레슬링을 익히고, 실력을 통해 그들을 비웃던 남성들을 잠재우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감동을 준다. 영화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두 여성의 성공이 인도의 소녀들에게 미칠 영향을 이야기한다. “우리 딸들은 성공한 여자가 돼서 결혼할 남자를 직접 고르게 될 거야”로 시작해 “너의 승리는 너만의 것이 아니고 여성은 열등하다는 인도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며 인도의 여자 아이들의 인권의 승리이다”로 끝나는 기타와 바비타라는 두 여성의 성공과 승리가 롤모델로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히든 피겨스>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모습이나, <원더우먼>, <고스트 버스터즈> 이후 여성 영웅들의 코스튬을 입고 할로윈 거리로 나선 소녀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보이는 아동학대에 가까운 마하비르의 훈련 방식, 계속해서 강조되는 부성애 서사는 아쉽고 일정 부분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마하비르는 이제 막 10대가 된 것으로 보이는 기타와 바비타를 새벽부터 깨워 훈련을 시키고, 긴 머리가 레슬링에 방해가 된다며 잘라 버리고,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강 물에 던진다. 심지어 레슬링이라는 선택지는 두 아이가 선택한 것도 아니다. 영화 내에서 기타와 바비타가 마하비르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존재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할 뿐이다. 다만 한국의 몇몇 영화들처럼 과도한 신파나 부성애에 의존적인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한국의 영화들보다 <당갈>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이유랄까? 그리고 성애화 되지 않은, 오로지 레슬링 선수의 것으로만 그려지는 여성들의 몸을 담아냈다는 것과, 아미르 칸의 전작들처럼 확고하고 필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 등이 앞서 언급한 단점들을 덮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161분이 순식간이 흘러갈 정도의 재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당갈>은 이미 훌륭한 상업영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양한 모성을 이야기하는 다채로운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