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죽음> 아르만도 이아누치 2017
한 남자가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은 의사를 부르는 대신 가식적인 슬픔을 보이며 앞으로 각자의 거취를 걱정한다. 쓰러진 사람의 이름은 스탈린, 소련의 독재자이다.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쓰러지고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탈린의 사망 이후 그의 최측근들이 벌이는 권력투쟁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아르만도 이아누치는 이를 날이 선 정치 스릴러로 그려내는 대신 블랙코미디를 택한다. 온갖 육두문자와 황당한 상황들, 웃지 않을 수 없는 슬랩스틱이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진다. 우스운 만큼 살벌하며, 살벌한 만큼 비웃음이 나오는 영화 속 광경은 스탈린 체제 하의 소련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으며 그렇기에 공포스러웠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미 정치 코미디 드라마 <VEEP>으로 자신의 코미디 능력을 증명한 아르만도 이아누치 감독은 이번에도 정치 코미디가 자신의 장기임을 드러낸다. 스티브 부세미, 사이먼 러셀 빌, 제프리 탬버, 제이슨 아이삭스, 올가 쿠렐린코 등의 배우들은 감독이 깔아 둔 판 위에서 빛나는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많은 부분 슬랩스틱으로 이루어진 <스탈린의 죽음> 속 코미디들은 과장된 톤으로 스탈린 체제를 비꼬아댄다. 이번 영화의 슬랩스틱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인물들의 동선이다. 한 쇼트 안에 최소 네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할 정도로 인물로 가득한 영화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동선 자체가 코미디로 기능하는 연출을 선보인다. 가령 쓰러진 스탈린을 그의 침대로 옮겨가는 장면이라던가, 스탈린의 시신이 운구되는 차량을 누가 먼저 쫓아갈지 눈치 보는 장면 등에서의 인물 동선을 보고 있자면 그 자체만으로 웃음이 터진다. 여기서 쏟아지는 대사들은 인터넷에서 ‘공산주의 유머’나 ‘사회주의 유머’로 통칭되는 요소들을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입을 통해 펼친다는 점은 큰 웃음을 선사한다. 스탈린이 참모들에게 “카우보이 영화 한 편 보고 가지 않겠나?”라고 요구하고, 영화가 끝난 뒤 참모들이 “존 포드 만세! 존 웨인 만세!”라며 만세삼창하는 장면에선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뻔뻔한 코미디인 이 작품에서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극 중 인물들이 던지는 농담 중 몇몇은 꽤나 여성혐오적인 양상을 띤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충분히 나올만한 대사라 여길 수 있지만, 조금 더 정제하여 깔끔한 코미디를 선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미권 배우들이 어색한 러시아 억양의 영어로 구 소련 체제를 비꼰다는 낡은 설정에서 오는 피로감은 <스탈린의 죽음>의 피해갈 수 없는 한계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며, 아마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관객 반응이 좋았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