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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4. 2018

나비효과의 치정극

<사라와 살림에 관한 보고서> 무아야드 알라얀 2018

 사라는 이스라엘 여성이고, 살림은 팔레스타인 남성이다. 사라는 이스라엘 군의 장교를 남편으로 두고 있고, 살림은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있다. 사라는 예루살렘 시내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살림은 그 카페에 빵을 배달하는 배달부다. 둘은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는 중이다. 영화는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이 사는 지역이 동/서 예루살렘으로 구분되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차별이 점점 격화되는 지금의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나누던 둘은 베들레헴 지역으로 배달을 가는 살림을 사라가 따라나섰다가 발생한 문제를 통해 둘만의 밀회가 밝혀질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위기는 단순한 치정극의 수준에 머문다거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앙숙인 관계에 위치한 지역갈등 정도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사이에 놓인 둘의 불륜은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둘의 불륜에 대한 사라의 남편 다비드와 살림의 아내 비산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다양한 결을 담게 된다. 

 <사라와 살림에 관한 보고서>는 단순히 갈등을 뛰어넘은 둘의 사랑 따위를 전달하는 통속극은 아니다. 영화는 치정극임에도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덜어내고, 실화인 둘의 이야기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속에서 어떤 연쇄작용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취조 과정에서 변질된 진실은 살림이 이스라엘 여성을 매수하여 정보를 빼낸 팔레스타인의 영웅으로, 사라는 유혹에 넘어가 기밀을 불어버린 배신자로 만들어버린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군인인 다비드는 아내를 통해 기밀을 유출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살림과 이혼을 결심한 비산은 영웅인 남편을 저버린 의리 없는 아내가 되어버린다. 단순한 치정극으로 끝났을 사건은 점점 확장되고 예상 밖의 (혹은 예상 가능했지만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남성인 살림과 다비드는 사건으로 인해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사건 이전보다 명예로운 위치에 놓이게 된다. 반면 여성인 사라와 비산은 각각 조국과 남편을 배신한 사람이 된다. 쉽게 쉽게 해결하자는 변호사의 말을 거부한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길 선택한다. 사라와 살림의 불륜이 불러온 나비효과 속에서 남성들은 그래도 남은 미래를 비교적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지만, 여성인 사라와 비산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살림이 재판받는 법정 앞에 앉아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비산이 임신한 아이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은 휘몰아치던 사건의 끝에서 주목해야 될 사람이 두 여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제목처럼 덤덤한 톤으로 담아낸 영화의 종착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짧은 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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