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스 에이트> 게리 로스 2018
<오션스 일레븐>으로 시작된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트릴로지는 50~60년대 이후 한 동안 큰 히트작을 내놓지 못한 할리우드 하이스트 무비의 부흥을 이끌어냈다. 물론 소더버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아쉬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시리즈이지만, 조지 클루니를 필두로 맷 데이먼, 브래드 피트 등 최고의 스타들을 한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작품이었다. 최근 들어 <고스트버스터즈>의 여성 버전 리메이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나 <원더 우먼> 등 여성 중심 블록버스터의 흥행에 힘입어 오션스 시리즈도 여성 버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동생인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이 극의 중심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전작과 큰 연결고리를 가지지 않는 작품이다. 동시에 시리즈의 첫 작품을 적절히 가져오며 여성 중심 서사로 시리즈를 재탄생시키려는 의도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산드라 블록을 비롯해 케이트 블란쳇, 헬레나 본햄 카터, 앤 해서 웨이, 민디 캘링, 리한나, 사라 폴슨, 아콰피나라는 인종적 균형감도 안정적이면서 묵직함을 선사하는 캐스팅은 기존 오션스 시리즈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면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오션스 에이트>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연출이나 각본 대신 배우의 힘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다.
데비의 가석방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오션스 일레븐>의 구조를 고스란히 답습한다. 풀려난 데비는 감옥 안에서 세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루(케이트 블란쳇)와 함께 동료들을 모은다. 디자이너 로즈(헬레나 본햄 카터), 보석 감정사 아미타(민디 캘링), 해커 나인볼(리한나), 잠임의 귀재 태미(사라 폴슨), 소매치기 콘스탄스(아콰피나) 등이 데비와 루에 의해 캐스팅 된다. 이들의 목표는 멧 갈라의 주인공 격인 배우 다프네(앤 해서웨이)의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다. 영화는 이를 위해 제대로 판을 깐다. 놀라운 캐스팅의 배우들은 물론, 멧 갈라를 재현하기 위해 실제로 파티를 열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촬영을 했으며, 일일이 거론하기도 귀찮을 셀럽 카메오들을 불러 모았고, 수많은 보석들과 영화를 위해 제작된 드레스가 준비되었다. 게리 로스 감독은 이제 이것들을 잘 담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게리 로스는 완벽하게 준비된 요소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케이퍼 무비 특유의 긴장감은 부족하고, 아름다운 보석들은 그저 카메라에 담기기만 한 수준이며, 학생 UCC에서나 볼법함 촌스러운 편집 효과들은 계속해서 영화의 감흥을 깎아먹는다. 8명의 캐릭터들은 배우의 능력에 힘입어 흥미로운 존재들로 기능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힘을 동력으로 삼아 가까스로 서사를 지탱한다. 물론 기존 오션스 시리즈 또한 큰 긴장감 없이 배우들의 힘으로 영화를 이끌어간 작품이었지만, <오션스 에이트>의 편집과 촬영에선 어떤 무성의함까지 느껴진다. 배우부터 의상, 카메오까지 영화의 성공을 위해 많은 요소들이 완벽에 가깝게 준비되어 있지만, 게리 로스의 연출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그의 전작인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에 비해서도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탐정을 연기하는 제임스 코든은 후반부 몇 장면에만 등장할 뿐이지만 모든 장면이 지루하기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오션스 에이트>를 보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잘 담아내진 못했지만 멧 갈라를 이만큼 충실히 재현한 작품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기도 하고, 이를 위해 준비된 세트, 드레스, 보석, 카메오 등을 보는 재미는 관객의 기대치를 어느 정도는 채워준다. 무엇보다 주연으로 등장한 여덟 배우들의 힘이 <오션스 에이트>의 가장 큰 미덕이다. 각 배우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매력을 고스란히 살린 캐릭터들을 보는 즐거움은 물론, 그들이 여성이기에 가능한 서브플롯, 가령 가족에게 계속해서 결혼을 권유 받는 인도계 미국인 아미타, 성공한 범죄자에서 가정주부가 되었음에도 창고에 장물을 쟁여두고 이베이에서 샀다고 가족에게 이야기하는 태미 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영화의 개봉 이후 수많은 2차 창작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남성 주인공들이었다면 범죄를 통해 번 돈을 카지노나 술과 향락에 쏟아 붓는 장면으로 마무리 되었을 법한 엔딩이, 각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점 또한 눈여겨 볼만 하다. 결국 <오션스 에이트>는 배우들의 힘으로 겨우 지탱되는 영화이지만, 여성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서 기존과 다른 텍스트로 재탄생한 프랜차이즈의 장점을 지닌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얻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