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04. 2018

마블의 가족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페이튼 리드 2018

 스캇 랭(폴 러드)은 ‘시빌 워’ 이후 소코비아 협정을 어긴 죄로 2년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2년이 거의 다 채워질 무렵, 양자 영역에 들어갔던 순간이 등장하는 꿈을 꾸고, 스캇은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과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들은 30여 년 전 양자 영역으로 사라져 버린 행크의 아내 재닛(미셸 파이퍼)이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구조하려 한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고스트(해나 존-케이먼)가 나타나 구출에 필요한 장비를 훔쳐간다. 스캇은 다시 앤트맨이 되어 와스프 슈트를 입은 호프와 함께 재닛을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빌 워’로부터 2년 정도가 흐른 시점, 하지만 ‘인피니티 워’보다는 약간 앞선 시점의 <앤트맨과 와스프>는 내년 개봉할 <어벤져스4>와 전작의 징검다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낸다. 전작의 강점이었던 사이즈를 이용한 액션은 더욱 강화되었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더불어 MCU 최고 수준의 유머를 선사하며, 등장하는 캐릭터의 숫자가 들었음에도 크게 산만해지지 않는다. 영화적으로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블랙 팬서>나 <인피니티 워>에 비해서 액션의 합이나 편집 등의 테크닉도 훨씬 안정적이다. 

 <앤트맨> 시리즈가 MCU의 다른 영화들, 더 나아가 최근의 여러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차별화된 지점은 역시 사이즈에 있다. 모두가 모든 것을 더욱 거대하게 만들려 할 때, <앤트맨>은 작은 것을 크게 보여주거나 작아진 시점의 거대함을 선보이려 했다. 게다가 ‘시빌 워’에서 자이언트 맨이 등장함으로써 여타 블록버스터가 지닌 거대함의 쾌감도 어느 정도 갖추었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이러한 강점을 유려하게 펼쳐낸다. 소금병을 거대화하여 적을 잡거나, 거대한 건물을 축소하여 여행용 캐리어처럼 끌고 다니는 모습 등은 이번 영화의 가장 주요한 아이디어로 등장하며 액션과 유머, 서사적 장치로의 기능성 모두를 해결한다. 그것의 백미는 예고편에서도 등장한 카체이싱 장면이다. 크기를 자유자재로 변신시킬 수 있는 자동차의 등장은 조금은 지겨울 수도 있는 카체이싱 장면을 흥미진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만들어준다. 게다가 거대 개미가 등장하는 <THEM!>이나 사람이 축소되는 영화(<마이크로 결사대>인 것 같았지만 제대로 확인은 하지 못했다)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방식 또한 소소한 재미를 준다. 

 영화 속 유머들도 즐겁다. 예고편에도 등장했던 거대한 헬로 키티 사탕은 물론이고, 건물부터 자동차까지 극 중 등장하는 거의 모든 소품들이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전작이나 <시빌 워>에 비해 더욱 다양한 사이즈를 보여주는 앤트맨의 모습은 그 자체로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또한 전작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루이스(마이클 페냐)의 ‘투 머치 토커’ 장면 또한 다시 등장하고, 그의 동료인 데이브(티아이)와 커트(데이빗 디스트말치안) 또한 감초 역할을 즐겁게 선보인다. 코미디의 귀재인 에드가 라이트의 아이디어가 녹아든 전작에 비하면 대사로 관객을 웃기려는 부분이 더 많아진 것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유머들은 MCU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억지스러움이 덜하고,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계속 힘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많은 사람들이 <앤트맨과 와스프>의 악역이 부실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사실 타노스 같은 빌런이 등장한 와중에 이번 영화에서 또 다른 강력한 악역을 선보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사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앤트맨과 와스프가 빌런을 물리치는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장르라기 보단 재닛을 구출하는 구출영화(물론 ‘구출영화’가 명확한 장르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수많은 영화들에 의해 쌓여온 클리셰가 있기에 이렇게 표현한다)에 가깝다. 인물들이 양자 영역을 탐험하는 장면은 리처드 플레이서의 <마이크로 결사대>에 대한 오마주에 가까운데, 이 영화 또한 일종의 구출영화로 볼 수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 또한 <마이크로 결사대>나 <이너스페이스> 등 사람을 축소하여 다른 사람을 구조하거나 치료하는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뚜렷한 악당이 있고 그와 대결하는 구조 대신, 구출해낼 목표를 선정하고 구출을 위해 영화가 달려가는 구조를 취한다. 영화는 행크가 호프에게 재닛을 구조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자신의 장르를 확실히 드러낸다. 

 반면 <앤트맨과 와스프>의 홍보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소개되는 것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도리어 ‘스캇과 호프’가 아닌 ‘앤트맨과 와스프’라는 점에서 행크와 재닛까지 아우르는 가족영화로 이 영화를 보는 게 더욱 알맞은 이야기가 아닐까? <앤트맨>이 하이스트 무비의 틀을 빌려와 만들어낸 가족영화였다면, <앤트맨과 와스프>는 구출영화의 틀을 가져온 가족영화이다. 동생이 누나를 죽이고(<토르: 라그나로크>),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왕이 사촌동생을 죽이며(<블랙 팬서>), 아버지가 딸을 제물로 바치는(<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MCU의 괴랄한 가족관계도 속에서 <앤트맨과 와스프>는 유일한 가족영화의 면모를 선보인다. 이런저런 캐릭터를 모아 두고 반복해서 가족영화라 우기는 <데드풀 2>를 생각하면 <앤트맨과 와스프>야 말로 진정한 가족 히어로 영화처럼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여성 액션영화의 보완과 한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