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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08. 2018

극장에 놓인 추억들

<너와 극장에서> 유지영, 정가영, 김태진 2017

 <너와 극장에서>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의 지원을 통해 제작된 옴니버스 영화이다. <너와 극장에서>는 제목처럼 극장을 테마로 한 세 편의 단편영화를 담고 있다. 얼마 전 <수성못>을 통해 장편 데뷔를 마친 유지영 감독, <비치 온 더 비치>, <밤치기>,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등 장편 단편을 가리지 않고 독보적인 개성을 뽐내며 빠르게 필모그래피를 쌓아 가고 있는 정가영 감독, <영원한 여름>, <겨울꿈>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던 김태진 감독 등 세 명의 감독이 연출로 참여했다. <극장 쪽으로>, <극장에서 한 생각>,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제목의 세 단편은 각각 대구 오오극장, 광화문 에무시네마, 종로 서울아트시네마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유지영 감독의 <극장 쪽으로>는 우연히 극장을 찾게 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취업으로 인해 서울에서 대구로 오게 된 선미(김예은)는 인근 공군기지의 소음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어느 날 근무 중에 “6시에 오오극장에서 만나요”라는 쪽지를 받고 극장으로 향하게 된다. 누군지 모를 쪽지의 주인을 기다리며 담배를 사러 간 선미는 인근 골목에서 길을 잃고 만다. 흑백으로 촬영된 화면이나 음산한 느낌을 풍기는 음악 등 다소 스릴러적인 요소를 품은 작품이다. 영화제 등으로 평소 가지 않던 극장을 찾아본 적이나, 극장 인근 흡연구역을 찾아 돌아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미가 겪는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게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어느 정도 깨트릴 수 있는 공간이 극장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소 오오극장의 홍보용 영화 같다는 인상이 드는 (궁금했던 오오극장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은 부분도 있었다) 작품이었다.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은 GV 중에 벌어진 정가영 감독(이태경)과 한 관객 간의 싸움을 담은 작품이다. 정가영 감독의 전작들처럼 아무 말이나 하는데 그게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간 정가영 감독이 영화 속에서 주연을 맡아온 것과 다르게 이태경 배우가 정가영 감독을 연기한다. 다른 작품에서 보면 정가영 감독의 말투나 표정을 너무 정확하게 따라 하고 있어 감독의 전작을 본 관객이라면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장에서 한 생각>이라는 제목답게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토렌트에 대한 소신을 말하는 정가영 감독의 모습이라던가, GV에서 등장하는 무례한 질문에 직접 대꾸하며 싸우는 모습 등은 영화제나 GV를 자주 찾는 관객이라면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것만 같은 사건들이 영화 속에서 벌어진다. 극 후반부에 직접 정가영 감독이 (어김없이) 직접 등장하여 보여주는 모습은, 그간 자신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모습을 패러디한 일종의 메타 유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은 은정(박현영)이 갑자기 사라진 직장동료를 찾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낙원’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낙원상가 시절부터 서울극장에 자리 잡은 현재까지의 서울아트시네마를 추억하는 작품과도 같다. “(진성 씨네필인) OO가 실종되면 서울아트시네마에 가봐”같은 농담을 영화로 만들어버린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영화의 내용도 쉽게 파악이 되어버리고, 큰 재미없이 영화가 흘러간다. 게다가 지난 봄 서울아트시네마를 둘러싼 논란 이후에 보게 된(물론 영화는 작년 여름 즈음에 촬영되었지만), 그 공간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내는 <우리들의 낙원>은 심정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여성감독의 작품이었단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남성감독이 만들었음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특히 BJ 커플 캐릭터를 찍는 구도 등) 부분 또한 식상하기만 하다. 

 영화를 통해 극장이라는 공간을 되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극장에서 한 생각>의 극 중 정가영 감독은 극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등의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과 35명의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들이 참여한 <그들 각자의 영화관> 등을 참고했다고 이야기한다. 직접 찾아가던 국내의 극장들을 다룬 작품을 보는 것은 해외의 작품들을 통해 극장에 대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보다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물론 세 편의 작품이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이 지닌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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