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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2. 2018

액션 위주의 불균형한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리 워넬 2018

 <쏘우>부터 <인시디어스> 시리즈까지 꾸준히 공포영화들에 출연해오다 <인시디어스3>를 통해 연출자로 데뷔한 리 워넬의 두 번째 연출작 <업그레이드>가 개봉했다. 영화의 설정은 언뜻 익숙하게 느껴진다. 사고로 아내 애샤(멜라니 밸레조)를 잃고 사지가 마비된 그레이(로건 마샬 그린)는 자신의 고객인 반도체 기업의 창립자 에론(해리슨 길벗슨)에게 어떤 제안을 받는다. 스템(STEM)이라는 칩을 척추에 이식하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제안. 모든 게 자동화된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그레이는 결국 에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스템이 그레이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가 당한 사고 뒤에 음모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그가 복수하기를 종용한다. 그렇게 그레이는 스템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시작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음모가 더욱 거대했음이 드러난다.

 <업그레이드>는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문명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그려내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결국 기술에 인간이 굴복하거나 지배당하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나 <업그레이드>는 세계관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블랙미러>를 비롯한 여러 SF영화에서 그려진 미래적 이미지와 설정들을 가져오고, 그것을 이용해 액션을 선보이려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예고편에서도 드러난 독특한 카메라 워크와, 스템에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그레이(의 몸을 사용하는 스템)의 액션이 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액션 시퀀스의 카메라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거나 단순히 액션의 동선을 담아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를 빌린 기계가 액션을 선보이는 만큼, 카메라는 그레이의 상체에 고정된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액션의 합 자체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가 움직이는, 혹은 기계화된 신체가 움직이는 영화들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것이지만, <업그레이드>의 카메라는 약간의 변화를 줌으로써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이는 기계-인간, 아날로그-디지털의 결합이라는 주제를 적절하게 반영하기도 한다. 가령 스템의 작동이 중지되는 상황에서 시점 쇼트가 아님에도 카메라가 그레이의 움직임에 고정되어 있는 장면 등이 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 내내 반복되다 보니 산만해지는 경향도 있다. 중후반부 몇몇 액션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과도하게 그레이를 쫓아가 액션을 제대로 담지 못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업그레이드>는 영화의 세계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점점 산만해지는 액션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영화가 설정한 세계관일 텐데, <업그레이드>는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레이가 보여주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부딪힘 혹은 융합이나, 엔딩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을 더욱 섬세하게 다뤘다면 수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리 워넬이라는 연출자의 기존 출연작 또는 제작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SF를 통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폭력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거기에 블룸하우스라는, 최소비용 최고효율을 추구하는 제작사가 함께하여 탄생한 작품이 <업그레이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많지만, 킬링타임용 100분짜리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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