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이종석 2018
태국에서 한 기자가 납치된다. 청와대, 국정원, 경찰, 공군 등으로 구성된 특별팀이 꾸려지고, 경찰 위기협상팀의 하채윤(손예진)이 협상가로 급하게 선발된다. 그녀가 상대해야 될 대상은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의 무기를 밀매하는 밈태구(현빈). 하채윤은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협상을 그만두려 하지만, 인질로 잡힌 위기협상팀의 정 팀장(이문식)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추석 연휴를 노리고 개봉한 <협상>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깊게 다뤄지지 않은 협상가의 역할을 영화의 전면에 내세운다. 협상이라는 소재에서 F. 게리 그레이의 <네고시에이터>나 조엘 슈마허의 <폰 부스> 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상대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대사로 대부분의 상황을 진행시킨 다는 점에서 <더 테러 라이브> 등의 한국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영화가 협상과정을 통한 치열한 심리전이라던가, 대사가 살아있는 배우들 간의 충돌 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협상>은 납치와 협상이라는 소재를 통해 출발하지만, 결국 사회비판적인 스릴러 내지는 드라마의 형식으로 선회하며 <내부자들>이나 <베테랑> 같은 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 이 과정에서 협상이라는 영화의 소재는 사라지고, (기존의 JK필름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부패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개인 혹은 가족의 모습이 신파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노년 남성들로 구성된 소위 고위층 인사들이 대거 등장해 소리만 질러대는 장면이 이어지며, 이러한 장면들은 제대로 된 협상과정이 그려지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소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익숙하고 지겨운 이야기에 영화가 전도된다. 때문에 협상과정으로부터 오는 긴장감과 부패권력을 처벌할 때의 쾌감 두 가지를 모두 놓쳐버린다. 어느 곳 하나에도 똑바로 집중하지 못한 결과물이랄까?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협상가를 연기한 손예진과 인질 협박범을 연기한 현빈의 연기는 만족스럽고, 한 과장을 연기한 장영남이 등장하는 어떤 장면에서의 배우들은 꽤나 인상적이기도 하다. 김상호, 이주영, 장광, 최병모 등의 조연들도 종종 여러 작품에서 겹치는 이미지 때문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결국 <협상>의 문제는 안일한 기획과 각본이다. 어떠한 소재를 가져와도 신파 내지는 부패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희석시켜버리는 기획은,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가 싶을 정도로 지겹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