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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25. 2018

역병보다 무서운 충무로 사극의 고질병

<창궐> 김성훈 2018

*스포일러 주의


 <공조>를 통해 예상외의 흥행성적을 거둔 김성훈 감독이 현빈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촬영했다. <창궐>은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조선에 야귀(좀비)떼가 창궐한다는 소재를 담고 있다. 영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따르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왕(김의성)을 죽이고 왕위에 오를 음모를 꾸미던 김자준(장동건)이 야귀떼를 통해 계획을 실현하고, 때마침 청나라에서 돌아온 강림대군(현빈)이 이를 저지하려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때문에 <창궐>은 독특한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익숙한 이야기만을 답습하며 마무리될 뿐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배경 충무로 사극들의 관습이야 말로 야귀떼보다 무서운 고질병이 아닐까 싶다.

 매해 여러 편의 조선시대 배경 사극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자본이 들어간 영화들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역배우를 데려다 왕을 연기하도록 시키던, 관상을 보거나 풍수지리를 끌어오던, 전쟁을 치르던, 괴물이나 야귀떼가 궁궐까지 쳐들어오던 모든 이야기는 왕권 다툼을 그려내는 것에 그치고 만다. 아무리 참신한 소재를 들고 와도 조선, 특히 한양 도성이라는 배경 안에서 모든 이야기는 왕권 다툼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어떤 영화를 봐도, 어떤 소재를 봐도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창궐>은 바로 한 달 전에 개봉한 <물괴>와 거의 동일한 시대, 유사한 소재, 궁궐이라는 배경을 공유한다. 때문에 두 영화의 이야기는 거의 동일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거의 모든 소재를 왕권 다툼을 통한 사회비판에의 비유에 소비해버리는데, 때문에 장르적 쾌감은 대부분 희석되어버리고 지겨움 만이 남게 된다. <창궐>의 경우 <물괴>보다 영화적 완성도는 나은 편이나, <부산행>과 별반 다르지 않은 좀비들의 움직임과 디자인, 영화 스스로도 하질(저질)이라 평하는 유머 코드, 불필요한 플래시백으로 점철된 한국 상업영화 특유의 편집까지 대부분의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또한 이러한 영화들이 참된 왕의 상을 담아내려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아마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퍼진 경향으로 생각되는데, <대립군>, <물괴>, <명당> 등 최근 개봉한 조선시대 배경 사극들 또한 이러한 경향을 공유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저 추상적인 리더상을 그려낼 뿐이지만, <창궐>은 꽤나 직접적으로 현재의 정권을 연상시킨다. 영화 거의 마지막 장면, 궁궐의 야귀떼를 물리치고 김자준을 해치운 강림대군은 근정전 지붕 위에 앉아 횃불을 들고 몰려온 민초들을 바라본다. 이 모습은 마치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를 광화문 위 혹은 청와대에서 바라본 구도를 연상시킨다. 이 장면에서 강림대군은 “늦어서 미안하네”(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이러한 내용의 대사)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명백히 왕권 국가인 조선을 배경으로 현재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올바른 리더의 모습을 치켜세우는 것은 일종의 우상화일 뿐이다. <물괴>는 적폐 정권을 갈아치우기 위해 벌어졌던 촛불집회가 마치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벌어진 것처럼 그려낸다. 늦게 왔다는 강림대군의 대사는 이미 왕이 될 사람이 결국 왕이 되었고, 이를 당연하게 촛불집회의 이미지와 연관시킬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대통령을 떠올린다. 어설픈 프로파간다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때문에 <창궐>이라는 영화의 정치적 태도는 유사한 이야기를 지닌 다른 영화들보다도 구차하게 느껴진다.


p.s. 영화의 엔드크레딧에 작년 세상을 떠난 김주혁의 이름이 특별출연으로 올라온다. 김주혁은 강림대군의 형인 세자 역할을 맡았으나, 촬영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역할은 김태우가 다시 촬영하여 영화가 완성되었다. 비록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창궐>은 김주혁 배우의 정말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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