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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3. 2018

정말로, 이 영화를 굳이 봐야 할까?

<마약왕> 우민호 2018

 70년대 부산으로 원료를 수입해 가공하여 일본에 마약을 수출하던 수출왕이자 마약왕의 실화가 영화로 제작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 <마약왕>은 70년대 독재정권 하에 마약을 통해 권력을 얻은 이두삼(송강호)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밀수를 통해 근근이 살아가던 두삼이 우연한 계기로 마약이라는 개척지를 알게 되고, 그가 이를 통해 돈과 권력을 얻은 뒤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문제는 139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제대로 이를 그려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약왕>은 139분의 러닝타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이두삼이 활동한 대략 10여 년 간의 시간을 담아내지만, 생략이 많은 이야기는 종종 뜬금없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두삼을 제외한 그의 주변 인물들은, 조우진, 김대명, 이성민, 조정석, 배두나, 김소진, 유재명, 이희준과 같은 현재 활동하는 정상급 배우들이 무더기로 출연하지만 이두삼을 위한 소모품으로만 사용될 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무엇 하나 제대로 그려내는 것이 없다. ‘시대의 공기를 그려냈다’라고 평해지는 다른 영화들, 가령 송강호 주연의 <JSA 공동경비구역>, <살인의 추억>, <반칙왕>, <괴물>, 심지어는 <택시운전사>와 같은 졸작보다도 시대를 다루는 데 실패한다. 사실 송강호를 얼굴로 내세워 ‘시대의 공기’ 따위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지독하게 진부하다. 범죄자를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보다 못하다. 더욱이 마약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올해 개봉작인 <독전>에 비해 차별화되는 부분도 없으며, <나르코스>나 <브레이킹 배드> 같은 작품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마약왕>의 묘사와 이야기는 뻔하고 지겹기만 하다.

 영화를 보는데, 옆에 앉은 남자 관객 둘이 계속 “어, 조우진! 어, 이성민! 어, 조정석! 어, 윤제문!” 이러면서 봤다. 이 것만큼 이 영화 잘 설명해주는 상황이 없을 것 같다. 수많은 (남성) 배우들이 쏟아지지만, 그 진부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 결국 <마약왕>은 올해 개봉한 100억 원 대 예산의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었다. 영화 자체의 어정쩡한 스탠스는 물론, 여성의 몸을 스펙터클화 시켜 전시하는 장면들, (만주 출신 인물이라지만) 가부장제적인 경상도 중년 남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 80~90년대 성인만화를 연상시키는 연출 등은 그저 실망스럽기만 했다. 아마 <염력>과 더불어 올해 가장 아쉬운 대자본 한국 상업영화로 손꼽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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