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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4. 2018

흥미로운 각색의 방향성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라세 할스트롬, 조 존스톤 2018

 E.T.A 호프만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디즈니의 새 실사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을 조금 뒤늦게 관람했다. <초콜릿>, <개 같은 내 인생> 등으로 알려진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나, 약 한 달 간의 재촬영을 <퍼스트 어벤저>의 조 존스톤 감독이 맡게 되어 크레딧에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디즈니의 실사영화들은 원작이 되는 애니메이션을 숏 바이 숏 수준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했다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말레피센트>처럼 새로운 각색을 시도한다. 영화는 주인공을 원작의 마리에서 마리의 딸인 클라라(멕켄지 포이)로 바꾸고, 그에게 발명가라는 설정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영화는 마리가 유품으로 남긴 열쇠를 찾기 위해, 마리가 창조한 4개의 왕국의 세계로 떠난 클라라가 슈가 플럼(키이라 나이틀리)과 마더 진저(헬렌 미렌)의 대립을 막고 그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영화의 각색이나 비주얼의 지향점은 좋다. 작년 개봉한 <미녀와 야수>의 실사영화에서 주인공인 벨에게 발명가 성격을 부여했다고는 했지만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데 급급해 이를 살리지 못한 반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변화된 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오프닝 시퀀스가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멕켄지 포이의 연기는 이를 납득하게 만든다. 여기에 톱니바퀴 등 아날로그적 기계장치들이 주를 이루는 영화의 비주얼은 각색된 클라라의 면모와 적당히 어울린다. 발레로도 유명한 작품이기에, 디즈니의 걸작 중 한편인 <판타지아>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발레 장면 또한 좋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실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로 활동하는 미스티 코플렌드와 세르게이 폴루닌 등이 출연하여 이 장면을 꾸미는데, 이야기의 전개를 시각적으로 적절하면서도 원작이 지닌 미덕을 잘 간직한 장면이었다.

 다만 감독이 바뀌고 많은 분량을 재촬영하면서 벌어진 일인지, 각색과 비주얼의 방향성은 좋으나 각본 자체에 문제점이 많이 보인다.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이 급작스럽게 이어지고, 이를 설명해주는 적절한 대사나 상황들은 간단하게만 언급되고 지나가버리며, 이러한 각본 속에서 클라라의 발명가 기질이나 동화적인 비주얼은 온전히 기능하지 못한다. 결국 각색과 비주얼은 영화의 첫인상 정도를 만들어낼 뿐, 영화의 마지막까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이 <미녀와 야수>와 같은 원작의 복사품 밖에 안 되는 작품보다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디즈니가 기존의 애니메이션들을 줄줄이 실사화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미녀와 야수>나 <라이온 킹>의 예고편처럼 말 그대로 원작을 고스란히 실사화하는데 그쳐버린다면 디즈니에 대한 기대감은 그만큼 더 낮아질 것이다. 때문에 비록 완성도는 아쉽더라도,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말레피센트>와 함께 디즈니 실사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흥미를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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