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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7. 2018

우리가 기다려온 '트랜스포머'

<범블비> 트래비스 나이트 2018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모든 팬들이 바라던, 마이클 베이가 연출하지 않는 첫 ‘트랜스포머’ 영화 <범블비>가 개봉했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자 첫 스핀오프인 <범블비>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의 전쟁 중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쿨렌)의 명령을 받아 지구로 떠난 범블비(딜런 오브라이언)가 우연히 만난 소녀 찰리(헤일리 스테인필드)와 겪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다른 시리즈들보다 앞선 80년대이며, 시리즈 처음으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 등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로 떠오른 라이카 스튜디오의 트래비스 나이트가 연출을 맡았으며, DCEU의 <버즈 오브 프레이>의 각본을 맡은 여성 작가 크리스티나 호드슨이 각본을 썼다. 그동안 자동차와 변신로봇에 대한 남아/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어져온 시리즈가 드디어 여성 각본가를 통해 쓰이고, 여성이 주연이 된 작품을 내놓았다.

 현재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다. 2007년의 첫 영화는, 빈틈이 많이 보이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관객들의 지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작년 개봉한 다섯 번째 영화까지 이어지며 소수의 팬층마저 시리즈를 저버릴 정도가 되었다. 마이클 베이 특유의 규모밖에 남지 않는 연출이 수년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범블비>는 규모를 줄이는 대신 캐릭터와 이야기에 집중한다. 수많은 로봇들이 쏟아져 나와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던 전작들에 비해 줄어든 로봇의 수는 액션뿐만 아니라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이야기에 필요한 정보만 간결하게 전달한다. 특히 모든 로봇이 남성(의 목소리)으로 설정되어 있던 것에 반해, 여성의 목소리를 지닌 디셉티콘 섀터(안젤라 바셋)의 등장은 신선함을 더함과 동시에 로봇들이 뒤엉키는 액션 시퀀스 안에서도 각각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소년 혹은 중년 남성에서 소녀로 바뀌었다는 것이 <범블비>의 핵심이다. 주인공인 찰리는 기존 시리즈의 남성 주인공들처럼 메카닉이며,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다. 범블비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범블비와 교감한다. 더욱이 로봇들이 버리는 혼란스러운 액션 시퀀스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역할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성장 서사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이는 기존 시리즈의 남성 주인공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면모인 것은 물론이고, <아이언 자이언트> 등 소년들이 로봇과 교감을 나누던 다른 영화들과도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크리스티나 호드슨이라는 걸출한 여성 각본가와 헤일리 스테인필드라는 최고의 스타가 만나 가능해졌다.

 또한 시대 배경을 80년대로 옮기며, 80년대 영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져온 것 또한 <범블비>의 장점이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등 80년대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지금, <범블비>의 시대 설정은 시류를 따르면서도 찰리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고 범블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지점이 된다. 가령 범블비가 목소리를 잃은 뒤 라디오를 통해 인간과 대화하는 법을 깨우치는 과정이라던가, 다양한 80년대의 팝과 록음악이 등장해 찰리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지점, 적극적이진 않지만 냉전을 배경으로 이야기에 힘을 싣고 기존 시리즈와의 연결점을 만들어내는 장면 등은 <범블비>가 왜 80년대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로봇들의 디자인이 기존 시리즈처럼 강철의 질감을 강조하는 대신, 영화의 원작이 되는 애니메이션의 모습을 따른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다만 가족으로 회귀하고 마는 결말, 평면적이며 종종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군인 캐릭터 번스(존 시나) 등의 요소는 아쉽게 느껴진다. 특히 번스를 연기하는 존 시나의 연기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드웨인 존슨 사이의 스타일을 오가며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헛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모습 또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범블비>는 몇몇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관객들이 외계 로봇과 인간 사이의 우정을 그려내는 영화에서 기대하는 대부분의 것을 만족시켜주는 영화다. <E.T.>나 <아이언 자이언트>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으로 가득하고 이 영화들에 미치는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범블비>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엠블린이 이끌었던 80년대 액션 어드벤처 영화들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누구나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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