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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3. 2019

좋은 의미에서 '투 머치 코리아' 좀비

<기묘한 가족> 이민재 2018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넘긴 했지만, 2018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산행> 이전에도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는 있었지만, 그 규모와 화제성 면에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소규모였다. 2018년 <창궐>이나 2019년 초 공개된 넷플릭스의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한국적인’ 좀비를 보여주기도 했고(물론 한 편은 실패했고 한 편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테마파크에서 좀비를 테마로 한 호러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민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기묘한 가족>은 좀비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좀비 영화의 하위 장르로써 좀비 코미디는 <좀비 랜드>와 같은 대형 히트작부터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데드 스노우> 시리즈, 최근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까지 인디 장르영화 씬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좀비 코미디들이 고어의 수위를 높이고 적당한 사회비판이나 좀비라는 틀을 코미디에 사용하는 등에 모습을 보였다면, <기묘한 가족>은 충청도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지역 특화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영화는 어느 제약회사의 실험으로 가사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 보도로 시작한다. 시골 마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다 폐업한 만덕(박인환)은 렉카를 운영하는 장남 준걸(정재영)과 며느리 남주(엄지원),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해 돌아온 민걸(김남길), 늦둥이 막내딸 해걸(이수경)과 살고 있다.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좀비(정가람)에게 물린 만덕은 밤 사이 회춘하게 되고, 돈이 궁하던 가족은 좀비에게 ‘쫑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마을의 노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한다. 장사 수단은 쫑비에게 물리면 회춘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쫑비는 언제까지나 좀비, 예정된 혼란이 기묘한 가족에게 닥쳐온다.

 한국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좀비 코미디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기묘한 가족>은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민간요법적 광기를 중심적인 소재로 차용한다. 또한 전국적인 사건이었던 <부산행>과는 다르게 고립된 시골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점, 친구나 가족이 좀비로 변한다는 클리셰를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을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시골이라는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점, <시체들의 새벽>에서부터 좀비 영화의 주요한 테마였던 자본주의 비판을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걸맞은 방식의 이야기(특히 엔딩)로 드러낸다는 점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좀비 코미디 사이에서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를 다시 한번 재고하게 한다. <기묘한 가족>이 보여주는 쇠락한 한국 농촌 공동체는 <리틀 포레스트> 등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묘사한 ‘그것’들 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민걸이 가족들에게 좀비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유튜브로 <부산행>의 클립을 찾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스스로 <부산행>의 성공으로 인해 제작된 작품임을 감추지 않는다. 도리어 ‘한국적인’ 좀비 영화를 표방하고 나왔음에도, 익숙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파 서사에서 좀비라는 소재만 차용했을 뿐인 <부산행>보다 더욱 ‘한국적임’을 표방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표현한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하지만 <기묘한 가족>이 취하고 있는 것들, 가령 좀비에 물린 아버지를 대하는 자식들의 태도, 정력에 대한 중노년 남성들의 광적인 집착, 농촌 노년 남성의 황혼 재혼 등의 요소들은, 비록 표면적으로만 소재를 다룰 뿐이더라도, 한국과 한국 농촌과 한국 농촌의 남성성을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텍스트를 제공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웜 바디스>를 어설프게 따라한 (물론 <웜 바디스>가 좋은 영화인 것도 아니다) 해걸과 쫑비의 러브라인은 따분하고, 코믹한 효과음이나 몇몇 슬랩스틱은 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초반부 전개를 느릿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서도 종종 등장하여 극의 진행을 지지부진하게 만든다. 조금 더 깔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등장하는 엔딩은 앞선 아쉬움들을 잊게 만들어준다. 분명 <기묘한 가족>은 영화의 템포라던가 코미디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지만, 엔딩 장면에서의 새로움에는 대부분의 관객이 동의할 것이다. 후반부에서 길을 잃고 무너지는 많은 한국영화들과도 다르게, 예고된 난장판이 펼쳐지는 후반부가 주는 즐거움(특히 12세 관람가라는 한계를 적절하게 활용한 요소들)은 굉장히 즐겁다. 

 어쩌면 <기묘한 가족>이야말로 첫 한국적인 좀비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이라는 틀에 좀비라는 소재를 끼워 넣은 <부산행>과 <창궐>의 아쉬움을 <기묘한 가족>이 일정 부분 해소해준다. 물론 규모의 측면에서 아쉽긴 하지만, 저예산 영화라고 무시하기엔 <기묘한 가족>의 후반부가 제공하는 나름대로의 스펙터클은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창궐>의 야귀들이 스펙터클의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생각하면, <기묘한 가족>의 좀비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양한 모습의 좀비들이 등장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기묘한 가족>이 지닌 성취는 한국 장르영화 안에서도 꽤나 기억될만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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