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8. 2019

경직된 연출을 움직이는 연기

<더 와이프> 비욘 룬게 2017

 아쉽게 오스카를 놓쳤지만, SAG나 골든 글로브, 인디 스피릿 등 각종 시상식에서 글렌 클로즈에게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준 <더 와이프>가 개봉했다. 영화는 메그 울리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배경은 1992년, 작가 조셉(조나단 프라이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정해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아내 조앤(글렌 클로즈), 아들 데이빗(맥스 아이언스)와 함께 스톡홀름으로 향한다. 시상식 리허설, 연회, 인터뷰 등이 차례로 진행되는 동안, 조셉의 전기를 의뢰받은 나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트)이 이들을 따라다닌다. 그러던 중, 조셉의 소설과 조안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대단한 반전을 품고 있는 것 같은 시놉시스이지만, 영화 중반부가 되면 자연스럽게 눈치챌 수 있는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이 내용을 어떻게 연출했느냐이다. 아쉽게도 <더 와이프>는 글렌 클로즈의 (언제나 그렇지만) 놀라운 연기에도 굉장히 경직된 연출만을 보여준다. 마치 각본이 있으니 그 이야기만 보여주면 된다는 식으로 연출한 것만 같다. 더군다나 영화의 제목은 조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조앤보다 조셉, 데이빗, 나다니엘 등의 남성들에게 꽤나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조앤이라는 캐릭터는 오롯이 글렌 클로즈의 역량을 통해 자신의 분량을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또한 1992년과 60년대 전후의 과거를 오가는 연출(젊은 조앤은 글렌 클로즈의 딸 애니 스타크가 연기했다)은 상당히 조잡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젊은 조앤과 조셉이 사랑에 빠지고, 평생의 비밀로 삼을 소설들의 탄생비화를 그려내는 장면들이 상당히 오글거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더 와이프>에는 ‘문학하는 남자’에 대한 클리셰가 과다하게 들어있다.

 물론 종종 좋은, 재밌는 장면들도 존재한다. 두세 차례 등장하는 삼자통화 장면에서의 대화, 조셉과 다른 남성 사이에 끼인 위치로서의 조앤이 카메라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과정 등은 (너무 무난하려고 하지만) 잘 만들어진 장면에 속한다. 특히 후반부, 과거의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게 되고, 조앤과 조셉이 감정적으로 격돌하는 순간에서 다양한 측면으로 역전되는 (혹은 끝내 역전되지 못하고 머무르는) 성역할들이 충돌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그럼에도 비욘 룬게의 경직된 연출은 사건을 전달하는 것 외에 별다른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충돌, 감정,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글렌 클로즈를 위시한 배우들의 힘이 크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글렌의 연기에서 응축된 감정의 놀랍기만 하다. 단지 그뿐만인  영화라는 점이 아쉽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메라와 충돌하는 배우들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