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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24. 2019

Netflix <블랙미러> 시즌5

 영국의 케이블 채널 채널4에서 시작하여 시즌3부터는 넷플릭스에서 제작 및 서비스를 하고 있는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의 다섯 번째 시즌이 공개되었다. 6편의 작품이 공개되었던 3, 4시즌과 달리, 시즌5는 1, 2시즌처럼 3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웬 해리스가 연출하고 앤소니 마키와 야히아 압둘 마틴 2세가 출연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제임스 하웨스가 연출하고 앤드류 스캇과 토퍼 그레이스가 출연한 <스미더린>, 앤 세비스키가 연출하고 마일리 사이러스가 출연한 <레이철, 잭, 애슐리 투>가 시즌5에 담긴 세편의 작품이다. 물론 지금까지 쭉 시리즈를 총괄해온 찰리 브루커가 제작과 각본을 맡았다.

 그동안 <블랙미러> 시리즈의 가장 주요한 테마는 “무엇을 볼 것인가?”였다. SNS와 유튜브의 시대, 가짜 뉴스의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 당도한 우리는 무엇인가를 봄으로써 그것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발전한 기술로 인해 찾아온 다원화 시대에 개인이 쫓아가기엔 너무나도 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흘러 다니고, 사람들은 직접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그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더 나아가 존재하는 것인지를 의심하고 있다. <블랙미러>의 포문을 열은 <공주와 돼지> 에피소드가 이를 잘 드러낸다. 수상과 관료들은 납치된 공주의 잘린 손가락을 보기 전까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사실 자체를 회피할 방법만을 찾으려 한다. 결국 수상이 돼지과 성교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납치범의 목적인 “추악함을 보여주는 것”은 성공하고 만다. 결국 <블랙미러>의 핵심인 “무엇을 볼 것인가?”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명확히 드러난 셈이다. SNS를 통해 생중계라는 방식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각 개인은 무엇을 볼 것이고 보여줄 것인가? <핫 샷>, <화이트베어>, <왈도의 전성시대>, <추락>, <닥치고 춤춰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 <시스템의 연인> 등의 에피소드 들은 직접적으로 SNS와 생중계의 형식을 사용하여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가득하다. 특히 게임의 형식을 가져온 작품들이 많은데, <USS 칼리스터>가 대표적이다.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회사의 공동창업자임에도 자신이 무시받는 현실을 자신만의 커스텀 게임으로 덮으려 한다. 자신의 주변인들을 게임 캐릭터화하는 전략은 가상으로 현실을 덮는 전략의 불쾌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밖에 눈으로 본 모든 것을 저장할 수 있는 <당신의 모든 순간>, 죽은 이를 인공지능 로봇으로 되살릴 수 있는 <돌아올게>, 가상현실 게임을 이용한 <베타테스터>, 기억을 엿볼 수 있는 <악어>, 사건들을 저장해 놓는 <블랙 뮤지엄> 등의 에피소드들이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죽음, 고장, 소멸, 시간의 흐름 등을 이유로 사라진 것들을 다시 보려는 욕망, 혹은 무언가를 봄으로써 현실을 잊으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이다. 이 경향은 시즌3의 <샌 주니페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노환 등을 이유로 현실에서 행동하기 어려운 이들이 접속하는 가상현실 샌 주니페로에서 만난 두 캐릭터가 결국 현실에서도 마주하게 되고, 자신들의 의식을 업로드하여 영원히 서로를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끝나는 에피소드.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무엇을 볼 것인지, 혹은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선택으로 시작된 파국을 맞이하며 끝난다면, <샌 주니페로>는 그 선택을 최후반부까지 지연시킨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보여줄 것과 볼 것을 선택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맡겨버린 <밴더스내치>는 흥미롭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였다.

 이번에 공개된 시즌5 역시 이러한 두 축을 그대로 이어간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다시 한번 게임의 형식을 사용하고, <스미더린>은 SNS를 활용하며,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인공지능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실시간성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시즌5의 세 에피소드는 이전 에피소드들에 비해 아쉽기만 하다. 이것은 단순히 시즌1에서부터 팬이었던 관객들이 기대한 ‘멘붕’의 파국을 향해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세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선택을 하거나 선택을 지연하지 못한다. 도리어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대니(안소니 마키)는 오랜 동성 친구와 게임 속에서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감정적 선택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아내에게 그 상황을 들킨 뒤 선택 아닌 선택이라는 결말을 맞는다. <스미더린>의 크리스(앤드류 스캇)의 선택(스미더린이라는 SNS에 대한 거부와 스미더린의 CEO와 대화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나, 경찰, 스미더린사의 간부들 등에 의해 계속해서 저지당하며, 끝내 선택하는 것에 실패하고 만다. <레이철, 잭, 애슐리 투>의 레이철은 그나마 선택에 성공한다. 고모의 계략에 빠져 혼수상태가 된 애슐리(마일리 사이러스)를 돕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레이철의 선택은 애슐리의 의식이 탑재된 인공지능 로봇 애슐리의 선택으로 인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아니, 타인에 의해 레이철의 목적이 변경되고 만다. 

 세편의 에피소드 중 두 편의 에피소드는 파국이라기보단 해피엔딩(혹은 일단락된 엔딩)에 가깝다. <스미더린>의 경우는 열린 결말이지만, 그것이 좋은 상황이 아님을 관객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의 박탈들을 통해 만들어진 두 해피엔딩과 하나의 열린 결말은 <블랙미러>를 관통하던 테마를 잃어버린다. “무엇을 볼 것인가?”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테마는 세 편의 에피소드 안에서 존재를 박탈당한다. 극 중 인물들은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선택을 강요당한다. 이들의 행동의 동기 안에는 선택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으나, 이들을 둘러싼 상황들은 개인들의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을 넘지 못한 안전한 결말들은 동시대의 불화를 드러내는 대신 미미한 합의들을 선택한다. <샌 주니페로>의 선택과 합의가 아름다웠던 것은 그것이 극 중 인물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5 속 인물들의 선택과 합의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택의 가능성을 빼앗긴 대신 파국의 가능성을 안고 미미한 합의를 통해 일단락된 결말에 도달한다. 이것은 인터랙티브 필름의 형식을 취한 <밴더스내치>의 관객들이 이야기를 선택한다고 스스로 여기는 것과 다르게, 이미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며 몇 가지 엔딩만을 향해 나가아는 것만을 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밴더스내치>에 대한 관객 개인들의 감상이 각기 다른 엔딩을 찾아가는 것으로 모이는 상황은 시즌5의 세 에피소드 속 인물들의 상황과 유사하다. 시즌5는 <밴더스내치>의 함정에 작품 스스로가 빠져버린다. <블랙미러>가 지적하던 불화와 그 세계는 없어졌다. 시리즈는 스스로가 동력으로 삼던 것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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