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홉스&쇼>는 ‘하드-바디’의 재림이다. 이 영화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탤론으로 대표되는 80년대 ‘하드-바디’ 액션 영화들의 전통을 2010년대 할리우드에 복원시킨 드웨인 존슨과, 할리우드에서 격권 액션의 명맥을 이어가던 (그리고 <익스펜더블> 시리즈를 통해 ‘하드-바디’ 추억팔이 여행에 동행했던) 제이슨 스타뎀이 주연을 맡았다. 이 둘이 <홉스&쇼>의 주연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할리우드의 주된 상품이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 비디오 대여점의 베스트 리스트에 항상 올라와 있던 하드-바디 액션 영화들은 이름 그대로 육중한 육체를 지닌 이들이 정의를 위해 싸우며 적들을 무자비하게 처치하는 영화들이다. 실베스타 스탤론의 <람보> 시리즈,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코만도> 시리즈, 척 노리스의 <델타 포스> 시리즈 등이 이 장르의 대표작들이다. 이러한 영화들은 주로 보디빌더 출신 배우들의 거대하고 화려한 근육질의 육체를 전시함으로써 인기를 끌었다. 혹은 장 클로드 반담이나 스티븐 시걸과 같은 무술가 출신의 배우들을 기용해 격권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실베스타 스탤론이 기획한 <익스펜더블> 시리즈는 (그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앞서 언급한 배우들은 물론, 제이슨 스타뎀, 돌프 룬드그렌,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랜디 커투어, 멜 깁슨,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하드-바디 액션 영화에 출연해온 다양한 배우들을 총망라하며, 그 시절의 영화들의 클리셰를 집대성해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리고 <홉스&쇼>는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의 육체를 통해 이 시절을 재현해보려는 시도이다.
2015년 <존 윅>을 통해 성공적으로 연출 데뷔를 치러낸 두 액션 매니아는 이후 각각의 길을 가게 된다. 채드 스타헬스키는 <존 윅: 리로드>, <존 윅: 파라벨룸> 등으로 계속 시리즈를 이어 나갔고, 데이빗 레이치는 <아토믹 블론드>, <데드풀 2> 등 다른 장르의 액션 영화들을 연출했다. 2019년 올해는 두 감독이 각각 연출한 <존 윅: 파라벨룸>과 <홉스&쇼>가 개봉했다. 두 편의 영화를 놓고 봤을 때, 스턴트맨 출신의 두 감독 얼핏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채드 스타헬스키는 <존 윅>이라는 하나의 프랜차이즈를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있고(현재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와 TV 드라마를 기획 중이다), 데이빗 레이치는 다양한 장르를 경유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둘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이는 앞서 <홉스&쇼>가 하드-바디 액션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적은 맥락과 같다. 데이빗 레이치는 <아토믹 블론드>를 통해 에스피오나치 액션 영화, <데드풀 2>를 통해 슈퍼히어로 액션 영화, 그리고 이번 <홉스&쇼>를 통해 하드-바디 액션 영화의 집대성을 시도한다. 채드 스타헬스키의 야심은 조금 더 폭넓다. 그는 <존 윅> 프랜차이즈를 통해 액션 영화의 역사를 집대성하려 한다. 여기에는 데이빗 레이치가 다루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하위 장르들 뿐만 아니라, 이소룡의 격권 영화, 성룡의 슬랩스틱 액션, 박찬욱의 <올드보이>부터 정병길의 <악녀>, 가렛 에반스의 <레이드> 시리즈까지 이어지는 ‘아시안 익스트림’, 스즈키 세이준의 <동경 방랑자> 등으로 대표되는 야쿠자 영화, 오우삼과 두기봉으로 대표되는 홍콩의 범죄 액션 영화들이 포괄된다.
데이빗 레이치가 액션 영화 역사의 측정 시기들을 국지적으로 집대성하려 한다면, 채드 스타헬스키는 그 시작부터 파고든다. <존 윅>의 성공을 통해 프랜차이즈를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은 그는, <존 윅: 리로드>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존 윅: 리로드>의 오프닝 시퀀스는 존 윅(키아누 리브스)이 전편에서 자신의 차를 훔쳐간 일당들을 쫓는 카체이싱으로 시작한다. 존 윅은 자동차를 타고 있고, 그가 쫓는 인물은 바이크를 타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카체이싱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뉴욕의 전경을 담아내던 카메라는 이윽고 한 빌딩을 비춘다. 빌딩에는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 영사되고 있고, 영화 속 인물은 바이크 위에 앉아 있다가 어딘가에 충돌하여 튕겨져 나간다. 이 영화는 버스터 키튼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셜록 2세>이다. <존 윅: 리로드>는 바이크에서 버스터 키튼이 튕겨져 나가자 빌딩 아래에 있는 내리막길에서 바이크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치 버스터 키튼의 영화가 알을 낳는 것처럼 그려지는 이 장면은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자신의 시발점이 무엇인지를 공표하는 것으로 읽힌다. 스턴트맨 출신의 액션 영화감독이자, 액션 매니아임을 자처하는 그에게 ‘최초의 액션 배우’로 불리는 버스터 키튼은 자신의 지금의 그가 있게 된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존 윅: 리로드>는 오프닝 이외에도 여러 무성영화의 장면들을 가져온다. 많은 이들이 이소룡의 <용쟁호투> 속 거울의 방을 먼저 떠올리는 후반부 장면은, 사실 찰리 채플린의 장편영화 <서커스> 속 거울의 방의 장면을 차용한 것에 가깝다. <서커스> 속 거울의 방 시퀀스는 우연히 거울의 방에 들어온 찰리가 사방이 거울인 방 속에서 길을 잃고 여기저기 부딪히는 슬랩스틱 코미디 시퀀스이다. 찰리 채플린이 거울에 머리와 지팡이 등을 부딪혔다면, 존 윅은 거기에 몸 대신 총을 쏜다. 어찌 보면 이 장면은 찰리 채플린이 거울의 방을 사용한 방식을 확장한 것이다. 채플린이 이 공간을 활용한 논리에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이 거울을 깨트리는 방식을 더한 셈이다. 단순히 총으로 거울을 쏴 깨트리는 것을 넘어, 거울 너머에 위치한 적에게 총을 쏘는 장면은 명백히 채플린과 이소룡, 두 사람이 거울의 방을 활용하는 방식의 합이다. <존 윅: 리로드>의 포스터 또한 한 무성영화의 장면을 차용한 것이다. 무표정한 존 윅의 얼굴 주변을 수많은 총들이 둘러싸고 있는 이 포스터는 해롤드 로이드의 <Two-Gun Gussie> 속 이미지의 변형이다. 버스터 키튼과 함께 최초의 액션 배우 중 한 명인 해롤드 로이드에 대한 헌사를 분명히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인 <존 윅: 파라벨룸>에서도 이어진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도 버스터 키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 중 세계관의 규칙을 어긴 존 윅은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존 윅: 파라벨룸>은 여기서 곧바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자신의 강아지와 함께 도망치는 존 윅은 뉴욕 타임스퀘어에 당도하게 된다. 수많은 이미지들이 전광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와중에 한 전광판에서 익숙한 ‘스톤 페이스’가 보인다. <경찰>에서 버스터 키튼이 달려가는 자동차에 매달리는 장면과 <제물>에서 기관차의 맨 앞에 앉은 버스터 키튼의 얼굴이 카메라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 장면이다. <경찰>에서 버스터 키튼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수많은 경찰들의 추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존 윅: 파라벨룸>에 등장한 장면은 아니지만, <경찰>에서 시각적으로 거대한 경찰 무리가 버스터 키튼의 뒤를 쫓아오는 장면은 수많은 킬러들에 둘러 쌓인 존 윅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연상된다. 수많은 이들이게 쫓기고 있는 버스터 키튼의 상황은 극 중 존 윅에게 당도한 상황과 유사하다. 이 장면과 함께 <제물>에서 버스터 키튼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버스터 키튼과 존 윅을 동일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채드 스타헬스키는 <존 윅: 리로드>를 통해 찰리 채플린, 해롤드 로이드, 그리고 버스터 키튼과 같은, 무성영화 시대의 ‘액션’ 배우들의 유산을 존 윅이 물려받고 있음을 드러낸다. <존 윅: 파라벨룸>에 와서는 존 윅을 버스터 키튼의 후계자로 직접 지정한다. 버스터 키튼의 ‘스톤 페이스’가 지나가자 등장하는 존 윅의 얼굴은, 물론 버스터 키튼의 얼굴보단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지만, 대체로 무표정하게 금화를 건네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상대방에게 총을 쏘고 있다. 버스터 키튼이 된 존 윅은 <존 윅: 파라벨룸>을 통해 액션 영화의 역사 속을 활보한다. 존재하는 모든 킬러들에게 추격을 받고 있는 신세이지만, 그가 가는 길에는 다양한 장르의 액션들이 펼쳐진다. <존 윅: 리로드> 속 거울의 방 시퀀스나 로마 카타콤에서 펼쳐지는 총격 액션이 각각 이소룡과 하드-바디 액션 영화를 다루는 장면들이었던 것처럼, <존 윅: 파라벨룸>의 각 액션 장면들 또한 액션 영화의 장르 속 다양한 갈래들을 다루고 있다.
<존 윅: 파라벨룸>의 첫 액션 시퀀스는 뉴욕 도서관에서 벌어진다. 도서관에 숨겨둔 물건을 찾으러 간 존 윅은 자신을 추격해 온 장신의 킬러 어니스트와 마주친다. 이미 면식이 있는 둘은 도서관의 책 등을 이용해 격투를 벌인다. 어니스트는 NBA 스타인 보반 마랴노비치가 연기했다. 이 장면은 이소룡의 유작인 <사망유희>의 마지막 격투를 연상시킨다. 마치 게임 스테이지처럼 한층 한층 탑을 올라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시 NBA 스타였던 카림 압둘 자바이다. 2m 20cm의 장신인 그와 이소룡이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 <존 윅: 파라벨룸>에서 키아누 리브스와 보반 마랴노비치의 격투로 재현된 것이다. 전작에서 무성영화 시절의 액션 스타들을 차용하고, <용쟁호투>를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마지막 격투를 치른 것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이소룡의 마지막 영화를 차용하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존 윅: 파라벨룸>은 전편에서 다룬,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쏟아져 나왔고 이후 90년대까지 끊임없이 생산되어 온 이소룡과 하드-바디 액션 영화, 그리고 그 아류작들의 시기가 지난 이후의 액션 영화들을 다루려 한다.
이 지점은 영화의 두 번째 공간인 의사의 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액션이 벌어지는 곳은 아니지만, 이 공간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70~80년대 초반 이후 액션 영화의 중요한 국면에 등장했던 인물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에선 첫 번째 <존 윅>에 등장했던 콘티넨탈 호텔의 의사가 다시 등장한다. 의사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매트릭스: 리로드>에서 키메이커로 등장했던 한국계 배우인 랜달 덕 김이다. <매트릭스> 시리즈에 출연했던 키아누 리브스와, 그의 스턴트 더블이었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영향 덕분에 출연했을 것이라 추측되지만, 20세기와 21세기를 가르는 분기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액션을 보여준 영화 속 배우를 당시와 유사한 이미지로 등장시킨 것은 상당히 의도적이다. <매트릭스>는 당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던 CG 액션과 동아시아의 격권 액션을 적절하게 결합시킨 것으로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다. 물론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엉성한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시리즈 내내 보여준 액션에 모두가 극찬을 보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무술과 할리우드의 CG 및 총기 액션이 결합된 <매트릭스> 시리즈를 <존 윅: 파라벨룸>의 초반부에 배치했다는 것은, 이 영화가 다루려는 액션 영화의 범주에 할리우드 이외의 영화들도 포함된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실제로 <존 윅: 파라벨룸>에서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진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인용과 스타일의 차용, 동아시아 액션 스타들의 출연은 익숙한 할리우드의 스타일에서 다소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존 윅이 의사의 치료를 받은 뒤 자신을 쫓아오는 중국계 킬러들과 격투를 벌이는 골동품점에서 진열된 다양한 종류의 칼을 활용하고 이를 활용한 액션에서 유머를 만들어내는 지점은, 다양한 주변 사물을 활용해 액션을 벌이고 그 자체로 유머를 만들어내는 성룡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존 윅이 일본계 킬러들과 바이크 액션을 벌이는 장면은, 채드 스타헬스키가 직접 언급했듯이, 정병길 감독의 <악녀> 속 바이크 액션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물론 존 윅이 모로코로 도망치고 소피아(할리 베리)를 만나 벌이는 액션은 아시아의 액션 요소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사냥개 두 마리를 활용한 이 장면의 액션은 모든 것이 강아지의 죽음으로 시작된 <존 윅> 시리즈에 대한 자기 패러디에 가깝다. 콘티넨탈 호텔에서 펼쳐지는 총격전 또한 전작의 카타콤 총격 액션과 유사하다. 그럼에도 액션의 과정을 통해 유머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오랜 기간 이 방식을 다양하게 활용해온 성룡의 스타일에 가깝다.
할리우드 배우들 외의 출연 배우의 면면을 살펴보면 채드 스타헬스키의 야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드라이브>를 통해 액션 영화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아시아계 배우 마크 다카스코스가 존 윅을 쫓는 일본계 킬러인 제로 역으로 등장하고, 그의 부하로 등장하는 두 배우는 동남아시아의 액션 걸작 <레이드> 시리즈의 두 편의 영화에서 각각 마지막 적으로 등장했던 야얀 루이한과 세셉 아리프 라흐만이다. 동아시아계 혹은 동아시아 출신의 액션 스타들을 대거 기용하고, 이들이 기존에 보여준 액션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는 액션 시퀀스를 만들어 낸 것은 액션 영화 역사 중 최신의 작품과 배우들에게 헌사를 바치고, 이들을 소개하려는 시도이다. 이들이 (앞서 언급한 대로) 버스터 키튼이 된 존 윅에게 팬이라고 고백하는 대사들은 최신의 액션 트렌드와 자신을 동일화하고 있는 채드 스타헬스키가 자신의 뿌리에게 애정을 고백하는 장면이 된다. 물론 이 때문에 해당 액션 시퀀스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 동아시아의 배우들을 할리우드 감독이 액션 영화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고백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한다는 비판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각자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액션들에 비해 존 윅과 대결하는 장면은 다소 늘어진다. 키아누 리브스가 맨몸 격투에 재능이 있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들을 무리하게 사용했다는 인상도 남는다.
또한 <존 윅> 시리즈 전체의 이야기는 몇몇 동아시아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특히 일본의 야쿠자 영화나 홍콩의 범죄 액션 영화들이 연상된다. <존 윅>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킬러 생활에서 은퇴한 존 윅이 자신의 강아지를 죽이고 자동차를 훔친 철없는 마피아 때문에 타의로 복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은퇴한 경찰, 킬러, 특수부대 요원 등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복귀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물론 할리우드에도 차고 넘친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고 있는 콘티넨탈 호텔과 최고회의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은 야쿠자 영화나 홍콩 범죄 영화 속 조직들, 혹은 무협영화 속 문파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극 안에서 야쿠자나 삼합회가 언급되기도 한다. 또한 ‘파문’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여로모로 무협영화의 세계관을 연상시킨다. <존 윅: 리로드>에 처음 등장한 ‘피의 맹세’나 시리즈 전체에 걸쳐 중요한 아이템인 금화 등은 상당히 유럽적인 요소이지만, 세계관을 움직이는 체계 자체는 동아시아 영화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이 지점에 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야쿠자 영화 <동경 방랑자>를 관람했다. 1966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조직이 해체되면서 야쿠자 생활에서 은퇴한 데츠(와타리 테츠야)가 타의에 의해 복귀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 속 데츠는 여러모로 존 윅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이다. 마치 도시전설처럼 그가 가는 모든 곳의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고, 그를 잘못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타의에 의해 야쿠자 세계에 복귀한 그는 조직의 해체 이후에도 보스를 모시고 있는데, 그의 조언에 따라 잠시 도쿄를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상대 조직이 보낸 킬러들을 계속 마주치고 그들과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영화 후반부에 가면 보스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데츠의 행적은 세 편의 <존 윅>은 물론, <존 윅: 파라벨룸>의 엔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네 번째 <존 윅> 영화 속 존 윅의 행적과 유사하다. 타의에 의한 복귀, 상황을 극복하거나 벗어나기 위한 유랑, 믿었던 이의 배신 등은 데츠에 이어 존 윅이 걷고 있는 그 길이다.
물론 채드 스타헬스키, 그리고 데이빗 레이치가 <존 윅>의 첫 영화를 제작할 때부터 이러한 야망을 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2015년의 <존 윅>은 오로지 액션의 쾌감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자신들이 받은 액션 영화들의 영향을 드러낸다기 보단, MCU의 성공 이후 점점 획일화되고 있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흐름에 반대하는 영화에 가까웠다. 폴 그린그래스의 ‘본 시리즈’가 마무리되고,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제외하면 소위 ‘아날로그 액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들이 사라지는 와중에 등장한 것이 <존 윅>이었다. 블록버스터 밖으로 눈을 돌리면 이런저런 액션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었지만, <테이큰>처럼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몇 편의 영화를 제외하면 <존 윅>처럼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액션 영화는 없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몸집을 키워온 <존 윅> 시리즈는 규모의 액션을 계속 선보이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판도를 옮겨가려는 시도로 작용했다. 데이빗 레이치가 <존 윅> 이후 맨몸 격투 위주의 <아토믹 블론드>, 슈퍼히어로 영화임에도 규모보단 아기자기한 액션에 집중하는 <데드풀 2>, 하드-바디의 재림이라고 할 수 있는 (물론 CG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시리즈이지만) <홉스&쇼>의 연출을 맡은 것과, 채드 스타헬스키가 <존 윅> 시리즈를 이어가며 액션 영화, 특히 육체의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액션 영화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시도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현재를 각자의 방식으로 한 번 정리하는 셈이다.
다만 <존 윅>이 반영하는 액션 영화의 역사가 현재의 할리우드에 얼마만큼 반영되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존 윅: 파라벨룸>이 주목한 동아시아 액션 영화는 더 이상 할리우드의 주류가 아니다. 이소룡과 성룡으로 대표되는 중화권 액션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은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레이드> 시리즈의 배우들은 할리우드에 진출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액션도 없는’ 카메오 출연이나, <스카이라인: 비욘드> 같은 B급 이하 영화에 한정된다. 최근 <레이드> 시리즈의 주연인 이코 우웨이스가 주연을 맡고, 마크 다카스코스 또한 출연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행자객>(Wu Assassin)이 공개됐지만, 아쉬운 완성도는 물론 홍보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 동아시아의 여러 액션 영화, 가령 <악녀>, <레이드>, <악인전> 등이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고, ‘아시안 익스트림’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이것이 할리우드에서의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이러한 영화들을 제작하고, 이들을 기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인정투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급한 영화들에 대한 주목도에 비해 할리우드 내의 입지는 여전히 좁은 것만 같다. <존 윅> 시리즈가 정리한 액션 영화의 역사는 할리우드에서 시작하여 동아시아라는 최전선으로 이어진다. <존 윅: 파라벨룸>의 흥행이 할리우드 영화 속 액션에 이를 반영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반영되어야 할 것인지를 데이빗 레이치와 채드 스타헬스키의 차기작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