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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22. 2019

<미디어펑크: 믿음 소망 사랑> 아르코 미술관

 제목 그대로 우리를 둘러싼 (주로 영상으로 구성된) 이미지들이 형성하는 서사들에 대한 전복(펑크)을 꾀하는 작품들이 모여있는 전시였다. VR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제공하는 환영적 쾌락의 거부(파트타임스위트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이미 존재하는 인물이나 작품을 파편화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성/재제작한 작품(김해민 <두 개의 그림자>, 함정식 <기도(퍼포먼스 버전)>), SNS으로 대표되는 온라인을 떠다니는 이미지와 소리를 채집하여 일종의 가상현실 혹은 가상 서사를 구축하려는 작품(노재운 <보편영화 2019>, 이민휘&최윤 <오염된 혀>),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인화’하면서 중첩되고 쪼개지며 결국 변질되는 것을 드러낸 작품(김융용, <WAKE>). 이 작품들은 작품의 서사 구성 대부분을 관객의 몫으로 떠넘긴다는 점에서, 지금의 미디어환경 속에 내던져진 관람자들의 서사를 대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개별 작품들의 서사를 구축하는데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글리치에 가까운 방식으로 다른 시공간을 끼워 넣거나, 이미지와 사운드를 분리시켜 통일성을 제거하거나, 맥락을 배제한 채 이미지부터 제시하고 보는 작품들 사이에서 관람객은 그저 혼란스럽다. 이는 지금의 미디어환경을 구성하는 기술적 요건에서 오는 혼란들이라기 보단,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성서의 구호가 제시하는 ‘밝은 미래’의 서사가 붕괴된 상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려는 시도들에 가깝다. 때문에 VR이나 필름 사진 이미지의 3D 재구성 등과 같은 최신의 기술들을 활용하는 작품들은 해당 기술의 지향점(환영이나 진실에 가까운 복원 등)을 거부하고 있다. 지금의 믿음, 소망, 사랑이 가리키는 지점은 진실의 누적으로 쌓아 올려진 ‘밝은 미래’가 아닌, 조각난 이미지들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지어진 탈-진실의 사상누각이다. ‘펑크’와 ‘믿음 소망 사랑’을 함께 사용하는 모순적인 전시 제목은 불확정적인 이미지들 사이의 균열들을 더욱 뒤집어 까야한다는 구호로 변화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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