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라나 워쇼스키, 릴리 워쇼스키 1999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 8> 정도를 제외하면 워쇼스키 자매의 최근 작품 행보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편이다. 어쩌면 그 이유는 이들이 1999년에 연출한 <매트릭스>의 너무나도 거대한 성취였을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당시의 <매트릭스>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여전히 밈처럼 쓰이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라는 홍보 전단지의 카피는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으로 시작해 니체와 성서를 경유하는 영화의 철학적 밑바탕, 이소룡과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격권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하고 불렛 타임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촬영을 도입한 액션 시퀀스들, 프로디지와 마릴린 맨슨은 물론,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코믹스, 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대중문화의 풍부한 인용 등은 세기말에 걸맞은 ‘과포화 상태’의 영화 <매트릭스>를 탄생시켰다.
<매트릭스>의 테마는 세기말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2019년은 20년 전보다 더욱 확장된 의미에서 포화상태나 다름없다. 인터넷 상용화의 초창기였던 그때와는 다르게, 인터넷은 이미 일종의 매트릭스로써 기능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온라인이라는 매트릭스 안팎에서 대적하고 있는 것은 기계가 아닌 다른 인간이긴 하지만 말이다. 영화가 인공지능으로 인한 아포칼립스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취하고 있지만, 시뮬라크르라는 가상으로 실제가 뒤덮인 세상이라는 점에서 이는 1999년 당시, 그리고 현재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 세계를 구원할 메시아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존재는 굉장히 판타지적이며, 현실에 없는 존재이다. 이 지점은 그나마 <매트릭스: 리로디드>, <매트릭스: 레볼루션> 등으로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약간 극복된다. 이러한 구원자 서사의 도입은 ‘실재의 사막’과 ‘풍부한 가상’ 사이의 간극을 일깨워주는 이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지젝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매트릭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은 영화가 동시에 드러내는 극복 가능성과 멸망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