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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 오래오래 트럼펫을 놓지 말아주세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새로운 걸작 <마이 리틀 자이언트>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스포일러 주의

모두가 잠든 밤, 고아원에 사는 소피(루비 반힐)는 거대한 손을 목격한다. 그것은 야심한 밤 사람들 몰래 런던을 돌아다니던 거인(마크 라이런스)의 손이었다. 거인을 목격한 소피는 거인나라로 납치당한다. 소피는 무서운 외모의 거인에게 겁을 먹지만, 사실 거인도 자신과 같은 외톨이이며 꿈을 채집해 사람들에게 불어넣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BFG(Big Friendly Giant)라는 애칭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피의 존재가 사람을 잡아먹는 다른 거인들에게 발각되고, 소피와 BFG는 거인들을 막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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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봉명이 요상하지만 동화작가 로얄드 달의 『내 친구 꼬마거인』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디즈니의 첫 합작이기도 하다. <링컨>, <스파이 브릿지> 등의 최근작들 느낌 보단 <ET>, <쥬라기 공원> 등의 어드벤처 영화를 만들던 시절의 느낌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과거 <ET>, <구니스> 등의 여름 어드벤처 영화를 쏟아내던 앰블린 영화사의 로고가 뜨는 순간이 영화의 진짜 오프닝처럼 느껴다. 동시에 스필버그 본인을 BFG에 대입해 만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꿈을 채집해 사람들에게 불어넣어주는 BFG의 모습은 영화를 선사하는 스필버그의 모습이다. 참고로 각본은 <ET>의 각본을 쓴 멜리사 메디슨이 맡았다.

이번 영화를 비롯해, 앰블린 영화사의 어드벤처 영화들의 오프닝들은 전 연령대의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빨아들인다. 런던의 밤, 고아원의 문을 확인한 원장이 지나가고, 원장 몰래 담요를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던 소피기 등장한다. 원장이 잠그지 않은 고아원의 문을 걸어 잠그고, 편지들을 정리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술주정뱅이들을 쫓아낸 뒤 침대에 누워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소피의 동선을 따라가는 동안 관객들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 건데, 그건 아주 멋지고 신나고 아름다운 일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침대 옆에 앉아 이야기를 말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소피에게 책을 읽어주는 BFG처럼, 스필버그도 관객들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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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G는 꿈을 모으는 작은 거인이다. 그리고 그 꿈들은 노골적으로 영화를 상징한다. 그는 트럼펫으로 건물 속 사람들에게 꿈을 불어넣는다. 영화 중반부 BFG가 한 소년에게 꿈을 불어넣는 장면이 나오는데, 창문을 통해 보이는 트럼펫의 모습은 영락없는 극장 영사기의 모습이다. 할리우드를 영화란 꿈을 만드는 꿈의 공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해보면, BFG가 트럼펫으로 불어넣는 꿈들은 모두 영화이다. 소년에게 들어간 꿈은 벽을 스크린 삼아 영사되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는 소년의 꿈은 영국 여왕을 만나는 소피를 통해 실현되기까지 한다. 영화를 통해 상상하고, 언젠가 현실로 만들어 내라는 격려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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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BFG는 꿈들을 담은 병들이 가득한 자신의 집에서 여러 가지 꿈들을 섞어 새로운 꿈을 만들어낸다. 할리우드가 하는 일이 바로 그 것이 아닌가. 영화(꿈)을 섞어 새로운 영화(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70~80년대 꿈의 공장을 이끌었던 스필버그의 모습이 BFG의 모습 위에 오버랩 된다. BFG는 마크 라이런스의 모습을 닮았지만, 묘하게 스필버그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ET>, <미지와의 조우>, <인디아나 존스> 같은 달콤한 꿈부터 악몽 자체였던 <죠스>, 악몽이 뒤섞인 <쉰들러 리스트>와 묵직했던 <링컨>과 <스파이 브릿지>까지, 스필버그는 직접 채집하고 연금술처럼 만들어낸 꿈들을 BFG가 트럼펫으로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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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갈 무렵, 소피는 BFG와 대화하는 중 "곧 꿈에서 깨어나겠죠?"라고 말한다. BFG는 "그렇게 되겠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야."라고 말한다. 소피가 아닌 관객에게 스필버그가 말하는 듯하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은 꿈에서 깨어나겠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안에서는 깨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악몽을 만들기도 하고, 내가 여러분이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 있어도 나는 계속 꿈을 만들 것이다.' 스필버그 옹, 제발 오래오래 트럼펫을 놓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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