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를 보면서 윤가은의 <우리집>이 떠올랐다.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두 영화가 함께 떠오른 것은 순전히 두 감독의 전작 속 주인공들이 카메오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날씨의 아이>에는 <너의 이름은.>의 타키와 미츠하가, <우리집>에는 <우리들>의 보라, 지아, 설이와 그의 가족이 짧게 등장한다. 특정 감독의 출세작이나 오랜 기간 작업을 함께한 배우가 감독의 차기작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같은 캐릭터로 다시 출연하는 것은 어딘가 특별한 일이다. 동일한 캐릭터의 재등장은 전작과 신작이 같은 세계관에 놓에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의 카메오들은 <우리들>의 주인공들이 한, 유진, 유미와 같은 동네의 아이들임을 가볍게 알려주는 정도로 작용한다. 하지만 두 작품 사이의 상이한 태도변화, 특히 아이들의 시점에서 어른을 포괄하는 시점으로의 이동이라는 변화 속에서 이 카메오들은 반가움과위화함을 동반한다. <날씨의 아이>의 경우 이러한 위화감이 배가된다. <우리들>-<우리집>이 보여준 카메라의 시점을 통한 태도변화에 비해 <너의 이름은.>-<날씨의 아이>는 훨씬 거대한 변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도쿄라는 공간을 공유함에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너의 이름은.>의 분리된 타임라인과 타키-미츠하를 통한 접촉의 테마는 <날씨의 아이>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날씨의 아이>를 채우는 것은 '비'를 비롯한 하늘에서 땅으로 하강하는 '날씨'들의 퇴적현상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주인공 호다카의 '기도하는 시점숏'들이다. 다시말해 <날씨의 아이>는 분리된 타임라인 같은 평행우주가 끼어들 틈이 없는, 온전한 단일우주로 구성된 퇴적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타키와 미츠하의 재등장은 연결될 수 없는 두 영화의 상이한 세계관을 (본의 아니게) 접촉시킨다. 이렇게 '팬서비스'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카메오의 등장은 의도와는 다르게 영화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2.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후일담인 넷플릭스 영화 <엘 카미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TV의 1.85:1 화면비에서 시네마스코프의 광활한 화면비이다. 뉴멕시코-멕시코의 광활한 사막을 마치 월터 화이트의 답답함을 표현하려는 듯이 좁은 화면비에 담아내던 드라마와는 달리, <엘 카미노>는 광활한 사막부터 공간을 버드아이 뷰로 조망하는 숏, 후반부 등장하는 알래스카의 설원까지 다양한 공간을 시원한 화면비 속에서 담아낸다. 드라마와 <엘 카미노>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월터 화이트 없이 제로, 혹은 마이너스에서 재출발한 제시 핑크맨의 '길'을 담아내기엔 더없이 알맞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