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엊그제 다녀온 영상비평지 마테리알 창간 기념 북토크 "비평의 비평"에서 약간 아쉬웠던 점: '소신있는 비평의 부재'의 이유 중 하나로 '독립영화계에서의 온정주의'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지금 독립영화계에서 GV가 비평을 대체하고 있는 현상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 단순히 이동진과 정성일의 수많은, 독점적인 '라이브 톡'과 '시네토크'들이 비평을 대체하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싶은건 아니다. 이동진과 정성일에 대해서는 해당 북토크에서 이미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아쉬운 것은 소수의 평론가, 저널리스트, 영화기자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독립영화들의 관습적인 GV들이 '한국독립영화'의 비평을 대체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지 않은 것이다. GV자체가 독립영화의 홍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모더레이터와 감독 및 배우의 말들은 "~피셜"이 되어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모더레이터들은 관객들 대리하여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감독과 배우들이 이에 화답하는 GV의 구도는 다른 의견이 들어올 여지를 크게 남겨두지 않는다. 영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식적/비공식적 지면을 확보한, 다수의 GV를 모더레이터들은 한국독립영화들을 그저 응원하는 글만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한국독립영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갑론을박이 벌어지지 못하고, 미적지근한 호평과 응원만이 남는다. 물론 이것은 애초에 한국독립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기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인지도와 흥행을 지닌 작품들에 대한 갑론을박 마저 GV를 통해 생성되는 여론에 의해 묻히고 만다. 영화 창작자, 그리고 이들과 긴밀한/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모더레이터의 말들이 비평을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마고 로비가 샤론 테이트의 영화를 보는 장면과, <닥터 슬립>에서 잭 토렌스와 웬디 토렌스를 헨리 토마스와 알렉스 에소가 대신 연기하고 있음에도 잭 니콜슨과 설리 듀발이 출연한 <샤이닝>의 장면을 굳이 삽입한 것을 괜히 엮어보고 싶다.
3. "MCU 영화들은 시네마가 아니라 테마파크다"라는 마틴 스콜세지의 발언은 그가 뉴욕타임즈에 장문의 글을 기고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마틴 스콜세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아이리시 맨>의 극장상영과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불현듯 떠오른 극장상영을 겸하는 넷플릭스 제작 및 배급작들에 대한 생각들을 마틴 스콜세지의 의견에 빗대어 풀어보자면, 스콜세지가 '시네마'라고 칭하는 넷플릭스의 제작/배급 영화들은 극장에 걸리지만, 그가 '테마파크'라고 부를 가능성이 높은 작품일수록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공개된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작품이 극장에 배급된 거의 첫 사례는 봉준호의 <옥자>이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의 영화제 진입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된 것도 같은 작품을 통해서이다. <옥자>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시작으로 오스카 작품상까지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을 휩쓸었다. 칸, 베를린, 베니스, 토론토 등의 국제 영화제와 영화제 마켓에서 선보인 많은 작품의 배급권이 넷플릭스의 손에 넘어갔고, 마티 디옵의 <아틀란티크>와 같은 경우 북미에서는 극장에 제한 개봉될 예정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 맨>을 비롯해 데이빗 미코드의 <더 킹: 헨리 5세>, 페르난두 메이렐리스의 <두 교황>, 노아 바움벡의 <결혼 이야기>는 극장개봉과 넷플릭스 공개가 동시에 예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여러 국제영화제를 통해 극장에서 상영되었으며, 여러 평론가와 영화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시네마'의 자격을 취득한다. 한편 수잔 비어의 <버드 박스>처럼 넷플릭스만을 통해 공개되어 큰 흥행을 기록했지만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다. 마이크 플래너건의 <제랄드의 게임>, 줄리어스 오나의 <클로버필드 패러독스>, 수잔 존슨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등 평가와 상관없이 큰 주목을 받았던 다수의 오리지널 제작 및 배급 영화는 극장 상영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넷플릭스는 '시네마'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는 작품들에겐 극장 상영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 반대편인 '테마파크'에 가까운 영화들은 넷플릭스 서비스만을 통해 공개한다. 마틴 스콜세지가 <아이리쉬 맨>의 한정된 극장 개봉의 아쉬움을 가지면서도 넷플릭스를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일종의 선별과정에 대한 넷플릭스와 마틴 스콜세지의 고민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