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5

1. 마틴 스콜세즈의 <아이리시맨>은 영화가 묘사하는 것대로 미국 현대사의 몰락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동시에 (최근 MCU에 대한 발언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 스콜세지가 생각하는 ‘시네마’의 개념이 몰락하고 있는 것과 함께 전개된다. 영화 초반부,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은 자신의 딸 페기를 밀친 상점 주인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이때 로버트 드 니로의 얼굴은 CG를 활용한 디에이징 기술을 통해 70대가 아닌 40대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상점 주인을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그의 손을 짓밟는 프랭크 시런의 몸동작은 어딘가 느리고 둔탁하다. 얼굴은 40대이지만, 그의 몸동작은 로버트 드 니로의 실제 나이를 숨기지 못한다. <아이리시맨>에서 드 니로를 비롯해 알 파치노와 조 패시 또한 디에이징 기술을 통해 다양한 나이대를 직접 연기하며, 걷는 모습을 비롯한 몸동작을 젊었던 시절의 것으로 재현하기 위한 몸동작 코치까지 고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몸동작과 몸매는 70대인 영화 밖 그들의 것이다. 스콜세지는 클로즈업숏으로 그러한 몸동작을 감추는 대신, 풀숏으로 이들의 얼굴 나이와는 다른 ‘나이 든’ 몸동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이리시맨>이 다루는 시기는 2차 대전 이후인 1950년대에서 출발해 프랭크가 요양병원 휠체어에 앉아서 ‘썰을 푸는’ 1990년대까지이다. 이 시기에 ‘시네마’는 TV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서구권에서는 다양한 ‘뉴웨이브’ 운동이 벌어졌으며, 스필버그의 ‘블록버스터’ 이후 거대한 문화산업이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가까워질수록, ‘시네마’는 어떤 동력을 잃어버린다. 이것은 단순히 카메라로 존재하는 것을 촬영한다는, 어떤 투명성과 결부된 것은 아니다. 스콜세지는 CG와 3D를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해온 인물이다. 그는 ‘시네마’의 탄생을 다루는 영화 <휴고>를 3D로 제작했다. 스콜세지는 “MCU는 시네마가 아니다” 발언 이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시네마는 일깨움을 불러일으키는 매체이며, 미학적, 감정적, 그리고 정신적인 것이었으며, 인간의 복잡성과 비이성적인 면모와 모순성에 관련된 것이었으며, 우리가 내면의 자아와 직면하게 되는 그러한 순간들에 대한 성찰과 교훈을 일깨워주는 그러한 매체”라고 이야기한다. MCU를 중심으로 재편된 영화산업은 스콜세지가 이야기하는 저러한 시네마의 조건들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스콜세지의 말처럼, MCU 이후의 상업영화는, 물론 MCU 이전에는 물론 스콜세지가 경배해 마지않는 멜리에스의 영화도 그러하지만, 더더욱 테마파크를 지향하고 있다. 이 테마파크는 누적된 데이터와 이미 성공한 공식, 그리고 거기에 해당하는 이미지들을 추출하고 배열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영화-테마파크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성공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시퀀스 단위로 별점을 매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편집에 관여하는 한국 상업영화들을 떠올려보면, 스콜세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토르: 라그나로크>와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정확히 계산된 상업성의 성공이다. 스콜세지가 이야기하는 시네마의 몰락은 이러한 상황과 결부된다고 손쉽게 정리될 수 있다.

다시 <아이리시맨>으로 돌아오자면, 스콜세지가 말하는 시네마의 몰락은 손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MCU와 같은 계산된 상업영화들의 대두가 만들어낸 계산적 상업영화 시스템은 사실상 언제나 존재해왔다. 멀티플렉스로 인해 공장화 된 극장들이 그 영화들의 산술적 흥행을 가속화하고 있을 뿐이다. 시네마의 몰락은 MCU의 부상보단 시네마의 반자발적인 ‘게토화’와 연관된다고 보는 게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아이리시맨>은 자신의 ‘강력함’을 내세우던 이들이 필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발적으로 처연한 몰락에 다가가는 작품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단함’을 내세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배제하고, 핵심을 도외시하고, 반성 없이 전진한다. 스콜세지는 새로운 얼굴을 달고 노인처럼 움직이는 인물들을 내세움으로써 그러한 ‘시네마’들의 몰락을 다룬다. 시네마의 위치는 멀티플렉스에서 쫓겨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로 옮겨갔다. 혹은 ‘포스트-시네마’로 일컬어지는 미술관으로의 이주를 택한 영화감독들도 대거 존재한다. 최근에 들어서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스트리밍 서비스, 특히 무비(mubi)와 필름스트럭을 이어받은 크라이테리온 채널 등은 디지털-인터넷 시대의 시네마테크로 자리 잡고 있다. ‘시네마’의 어원은 뤼미에르 형제의 카메라/영사기인 ‘시네마토그래프’를 기원으로 삼는다. 때문에 ‘시네마’는 곧 불특정 다수가 상영관에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로 정의되기도 한다. 영화관의 공장화로 인해 시네마테크, 영화제, 미술관, 스트리밍 사이트 (그리고 토렌트) 등으로 시네마는 파편화된다. 뇌졸중을 겪은 이후 절대 교회 문턱을 넘을 것 같지 않았던 러셀(조 패시)은 감옥 내의 교회에 찾아간다. 마틴 스콜세지는 극장 배급 대신 온라인 배급을 다루는 넷플릭스에서 <아이리시맨>을 제작했다. 스콜세지는 자발적으로 게토화의 길로 향한 시네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그리기 위해, 조각난 시네마의 한 파편을 <아이리시맨>으로 붙잡고 놓아주려 하는 것만 같다.


2.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하지만 몇몇 작품은 극장을 통해 공개한다. 이는 2017년 칸 영화제에서 <옥자>가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후 벌어진 논란에서 촉발되었으며, <로마>의 성공 이후 하나의 배급 형태로 자리 잡았다. <로마>는 영화제를 통해 처음 작품을 공개하고, 제한된 극장 상영을 통해 영화를 개봉시킨 뒤, 극장 개봉 2~3주 후에 넷플릭스에 공개하는 방법을 선보였다. 이는 <더 킹: 헨리 5세>,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 등 넷플릭스가 제작과 배급을 도맡은 작품들에도 적용되었다. 북미의 경우, 넷플릭스가 배급권을 획득한 전 세계 주요 영화제 화제작들, 가령 <애틀랜틱스>와 같은 작품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제한개봉과 넷플릭스 공개가 진행되었다. 넷플릭스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지만 극장을 놓지 못한다. 넷플릭스가 폐업 직전의 단관극장을 장기간 임대했다는 최근의 소식이 이를 증명한다. <아이리시맨>이 넷플릭스에 공개되자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를 작은 스마트폰 화면 대신 가능한 큰 화면, 적어도 아이패드를 통해 감상해달라고 당부했다. 레딧과 트위터의 냉소꾼들은 스마트폰은 물론 닌텐도, 노키아, 게임보이, 애플 워치 등 가능한 작은 스크린을 통해 <아이리시맨>을 재생하는, 혹은 재생되는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게시했다. 극장 개봉과 영화제 상영을 한다고는 하지만, ‘제한 상영’이라는 말이 설명해주듯 그것은 지리적/시간적/금전적 여건이 성립되는 제한된 관객에게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스마트폰 세대에겐 40인치 TV도 큰 스크린이다. 극장 스크린의 경험은 어떤 전유물에 가까워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스콜세지의 분류에 따라) ‘시네마’로 분류되는 영화들의 ‘시네마적 경험’을 제한된 범위에서 지키려 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각종 영화제에서의 상영과 오스카라는 명예욕과 마케팅 수단이 내재되어 있지만 말이다.


3. 국내에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쇼 브라더스의 쿵푸 신드롬>은 국내 제목과는 다르게 ‘쇼 브라더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Iron Fists and Kung Fu Kicks>라는 원제처럼 쇼 브라더스를 통해 촉발된 쿵푸 영화가 어떤 영향을 만들어냈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정창화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 워너 브라더스의 실험적인 배급에 의해 대성공을 거두고, 이소룡이 미국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장철과 유가량의 쿵푸 영화들이 어떤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성룡의 쿵푸 코미디가 어떤 문화현상을 만들어내는지를 정리한다. 쿵푸영화의 영향은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쿵푸의 동작은 브레이크 댄스에 영향을 주었고, 쿵푸영화와 무협영화의 세계관이 우탱클랜과 같은 래퍼들의 음악적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음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성룡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파쿠르와 프리러닝의 시작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 또한 영화 안에서 언급된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쿵푸영화의 동작들을 응용한 브레이크 댄스의 동작이 원화평의 <정봉적수>에서 쿵푸스타 견자단에 의해 활용되고, 원화평이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무술감독을 맡으며 쿵푸를 전세계적인 액션 트렌드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영화에 출연한 한 인터뷰이는 쿵푸영화가 다른 영화 및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끝없이 잼을 이어가는 재즈 세션”에 비유한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이후 태국에서는 <옹박>이, 인도네시아에서는 <레이드>가 탄생했다. 토니 자와 이코 우웨이스라는 걸출한 액션 스타이자 무술가를 배출한 두 시리즈는 미국의 그라인드하우스에서 상영되며 수많은 파생작을 낳고 장르로 자리 잡은 70~80년대의 쿵푸영화의 길을 따라간다. <옹박>의 속편에서 쿵푸 동작을 선보이는 토니 자라던가, 쿵푸영화로 시작해 홍콩누아르로 이어지는 홍콩 영화들의 서사구조를 <레이드2>에서 선보인 가렛 에반스의 인터뷰는 각각의 작품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우간다 최초의 액션영화인 <누가 캡틴 알렉스를 죽였는가?>를 제작한 와칼리우드의 나브와나 I.G.G. 감독과, 그 영화에 매료되어 무작정 우간다로 향해 제작자로 활약한 알란이 등장한다. 이들이 만든 작품인 <크레이지 월드>는 쿵푸를 수련하는 아이들이 납치범을 쫓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 영화에는 쿵푸는 물론, <코만도>나 <람보> 같은 할리우드 하드바디 액션 영화를 비롯해 수많은 액션의 하위장르가 뒤섞여 있으며, 이들은 이들이 발명한 독특한 영화형식에 이것들을 모두 녹여낸다. 쿵푸영화가 촉발한 액션영화의 전세계적 순환 속에서, 와칼리우드의 영화는 각 액션 장르들의 동작과 쿵푸영화의 시대정신 등을 끌어온다. 저예산 장르영화는 빠른 제작속도와 소비로 인해 그야말로 ‘트랜스-내셔널’하게 순환한다. <쇼 브라더스의 쿵푸 신드롬>의 후반부는 그러한 상황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아카이브이며, 동시에 쿵푸 신드롬의 시발점인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 홍콩 쿵푸영화의 전성기 시절 활발하게 진행되던 한-홍 합작영화의 하나였다는 점을 비롯해 대만계 감독들의 활약 등을 (인터뷰이들이 이것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와는 관련 없이)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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