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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6. 2019

웃음도 눈물도 얻지 못한 착취

<감쪽같은 그녀> 허인무 2019

 부산에 홀로 사는 말순(나문희)에게, 오래전 집을 나간 딸의 딸인 공주(김수안)가 갓난아이인 동생을 등에 업고 나타난다. 말순의 딸이 세상을 떠나자 갈 곳이 없어진 공주가 말순의 집에 살게 된다. 말순과 공주는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티격태격하면서 생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이 된다. 그러던 중 말순에게 치매가 찾아오고, 이들의 생활은 이제 앞을 알 수 없게 된다. 허인무 감독의 <감쪽같은 그녀>는 나문희와 김수안, 두 배우를 내세운 코미디이자 눈물을 짜내려는 신파극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같은 장르의 영화들이 해온 길을 고스란히 걸어간다.

 영화의 초중반은 웃음을 유발하려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학교에 간 공주의 옆자리 남자아이의 대사나 그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행동, 공주를 말순에게 데려다준 사회복지사 동강(고규필)이 공주의 담임선생님 박 선생(천우희)을 짝사랑하며 벌어지는 일들, 공주와 말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사건들이 이를 채우고 있다. 이러한 코미디 장면들은 굉장히 익숙하고 지루하다. 동강과 박 선생 사이의 서브플롯은 그저 웃음을 주기 위해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데, 웃음을 유도한 장면들이 웃음보다는 남성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는 상황이 자아내는 불쾌함을 더욱 유발한다는 점에서 실패적이다. 공주의 동급생들이 등장하는 장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애어른’으로 성장한 공주의 주변에 정말로 ‘아이 같은’ 아이들이 가득하다는 설정부터 진부하며, 연애감정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들은 동강과 박 선생 사이의 코미디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웃음보다 불쾌함이 먼저 다가온다. 영화 중반 학부모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경우 웃음을 유도했다 한들 용납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유치하고 여성혐오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말순이 그 학부모 캐릭터에게 ‘화냥년’이라 하는 장면을 보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한 코미디를 가치로 내세우는 작품임에도, 이 영화가 코미디를 표방하며 내세우는 것들은 2019년의 것들이라 보기 어렵다.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 또한 아쉽기만 하다. 치매, 난치병, 입양, 요양병원과 같은 소재들은 영화 제작 단계에서 그것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 소재들은 비현실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오로지 스토리 전개의 편의를 위해 등장했다 퇴장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났다 다시 감춰지며, 별다른 인과성도 지니지 못한다.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영화는 신파로 향한다. 이를 위해 갓난아기인 진주는 ‘아기’라기보단 사물처럼 다뤄지고, 치매 노인 또한 어떤 대상으로만 다뤄진다. 영화의 후반부는 그 절정이다. 만약 할머니를 모시고 극장을 찾는 손자 손녀가 있다면, 영화의 후반부에서 불효자 불효녀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감쪽같은 그녀>는 그만큼 영화 속 인물들을 착취하여 웃음과 눈물을 얻어내려 한다. 영화는 마치, 감독이 상상한 그림에 나문희와 김수안이 있기를 감독이 바랬던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는 배우가 개입할 여지보단 감독이 클리셰와 소재뿐인 소재들에 나문희, 김수안이라는 좋은 배우들이 놓여 있는 것만 같다. 두 배우의 연기를 즐기기에도,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연기를 즐길 순간을 좀처럼 주지 못한다. 너무나도 감쪽같이 두 배우의 순간들을 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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