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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8. 2019

유효한 것들을 적절히 취한 장르영화의 개운함

<크롤> 알렉상드르 아야 2019

 수영선수인 헤일리(카야 스코델라리오)는 연습경기를 끝내고 아빠 데이브(베리 페파)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는다. 마침 이들이 사는 플로리다에 대형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고, 대피령이 내려진 상황. 헤일리는 연락이 되지 않는 데이브를 찾아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간다. 집 앞에 데이브의 차는 있지만 데이브는 없고, 자하실에서는 라디오 소리가 들려온다. 지하실로 향한 헤일리는 무엇인가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기절한 데이브를 발견하고 지하실 밖으로 나오려 하지만, 그 순간 데이브를 공격했던 악어가 나타난다. 허리케인으로 인해 물이 범람하자 인근에 있던 악어농장의 악어들이 탈출한 것. 헤일리와 데이브는 생존을 위해 악어와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힐즈 아이즈>, <피라냐> 등의 잔혹한 슬래셔와 <혼스>처럼 괴이한 영화를 만들어온 알렉상드르 아야의 신작 <크롤>은 상어나 뱀과 같은 거대한 식인 동물이 등장하는 호러들의 전형을 따라가지만, 전형 속에서 개운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87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물속에서 헤일리를 바라보는 시점숏이 수차례 등장한다. 이 시점숏들은 정말로 물속에 숨어 있는 악어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누구의 시점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악어는 물 밖에서 나는 소리는 잘 듣지 못하지만 물속에서의 소리에는 민감하고, 어두운 공간이나 물속에서는 인간보다 시야가 밝다. 헤일리와 데이브를 노려보는 수많은 ‘가짜’ 시점숏들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악어들의 습격을 영화 내내 기다리게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부터 아야의 전작인 <피라냐>까지 수중생물의 시점숏을 통해 긴장과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법은 흔히 사용되었다. <크롤>은 그 수법을 따라 하면서도, 수많은 ‘가짜’ 시점숏들을 뿌려 악어가 사람을 덮치는 순간의 파괴적인 쾌감보다 협소하고 폐쇄된 공간의 공포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지하실 위에 있는 데이브의 반려견 슈가가 짓는 소리를 통해 지하실 위의 공간을 예측하게 한다. 또한 구조를 위해 집에 찾아온 이들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슈가의 짓는 소리가 사용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반려견을 활용하는 것 또한 <크롤>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영화 후반부 제방이 무너져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물의 표현이나, 스마트폰, 비상용 손전등, 쥐덫, 건설업자인 데이브의 연장 등이 활용되는 등의 디테일도 적절히 활용되고 있다.

  어린 시절 헤일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코치를 맡았던 데이브와 헤일리 사이의 과거가 이야기되는 장면들은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지만, 생사가 걸린 위기의 상황에서 주고받지 못할 이야기들은 아니다. 또한 이들의 부녀관계는 가부장적인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둘 사이의 유대관계와 어떤 믿음이 이들의 생존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를 적당히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다. 영화의 오프닝 쇼트는 연습경기를 하는 헤일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피라냐>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의 몸을 스펙터클로 활용했던 알렉상드르 아야이지만, <크롤>의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여성 수영선수들의 몸은 성적인 스펙터클이 아닌 신체적 강인함의 스펙터클로써 카메라에 담긴다. 수영선수인 헤일리와 그의 코치였던 데이브가 악어에 대적하는 모습,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스스로 해내는 모습들은 이러한 과거의 언급들과 연관되어 제시된다. <크롤>의 마지막 장면이 지나가고 개운함만이 남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쌓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크롤>은 <죠스>로 시작되어 <피라냐>와 <아나콘다> 등 거대 식인 동물을 재난으로 삼는 일련의 호러 영화들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유효한 요소들을 얼마나 잘 추려내느냐는 소위 ‘팝콘 무비’로 불리는 장르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크롤>은 그 미덕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아주 개운한 장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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