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지옥이 뭐가 나빠>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원제: 地獄でなぜ悪い
감독: 소노 시온
출연: 쿠니무라 준, 츠츠미 신이치, 토모치카, 니카이도 후미, 하세가와 히로키, 호시노 겐
제작연도: 2013

최근 <신주쿠 스완 2>(2016)이나 <도쿄 흡혈 호텔>(2017),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사랑 없는 숲>(2019) 등으로 꾸준히 내리막을 걷고 있지만, <차가운 열대어>(2010), <두더지>(2011), <배드 필름>(2012) 등을 연달아 선보인 2010년대 초반의 소노 시온은 혈기왕성한 감독이었다. 물론 <소곤소곤 별>(2014), <러브 앤 피스>(2014), <안티 포르노>(2016)처럼 나름의 지지를 얻은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으나, <자살 클럽>(2002)나 <러브 익스포저>(2008)처럼 임팩트 있는 작품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30여년 동안 30편 가까운 영화를 연출했으니, 그만큼 망한 영화도 많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4년에는 무려 4편의 장편을 연출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의 오랜 침체기 직전에 제작된 <지옥이 뭐가 나빠>는 소노 시온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야쿠자 보스가 배우 지망생인 자신의 딸이 출연할 영화를 찍기 위해 영화광들인 '퍽 봄버스(Fuck Bombers)'을 반강제로 끌어들이고, 리얼리티에 집착한 이들이 실제 야쿠자 전쟁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촬영한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최근 일본에서 깜짝 흥행한 우에다 신이치로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2017) 같은 영화가 생각나기도 하고, <시네마 천국>(1988)의 정반대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떠오른다. 다다미와 미닫이문으로 사방이 둘러 쌓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야쿠자들의 싸움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Vol.1>(2003)의 청엽정 액션 시퀀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소노 시온은 익숙한 시네필 감독들, 가령 구로사와 기요시나 오시이 마모루,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감독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동시에 미이케 다카시와 같은 B무비 감독들과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미이케 다카시와 같은 감독들은 스튜디오의 고용감독으로써 대부분의 작품이 만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소설 등의 원작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직접 각본을 쓰는 일도 드물다. 반면 기요시, 마모루, 류스케 같은 소위 '시네필 출신' 감독들은 스스로 각본을 쓰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영화에서 구축해나간다.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에 스타일이 있다면, 시네필 출신 감독들에겐 세계관이 있다. 소노 시온은 그 중간에 위치해 있다. <신주쿠 스완> 시리즈를 제외하면 모든 작품은 그가 직접 각본을 썼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각본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제작하는 일종의 장인, 미이케 다카시와 같은 고용감독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참여한 작품은 <신주쿠 스완> 시리즈 두 편 뿐이지만, 많게는 1년에 4편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하는 그의 속도는 여러 B무비 감독들의 속도를 능가하기도 한다.

<지옥이 뭐가 나빠>는 후쿠사쿠 긴지나 스즈키 세이준의 야쿠자 영화, 그리고 <킬빌>처럼 그런 영화들을 인용한 할리우드 영화, <시네마 천국>처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시네필적 취향, 로망포르노와 B무비(를 표방한 Z무비)를 거쳐 아키하바라 오타쿠 문화에 이르는 소노 시온의 취향이 뒤석인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크게 길지 않은 러닝타임을 지닌 작품인만큼, 영화는 그의 취향으로 가득차 있다. 야쿠자에게 납치당했던 실제 경험이 뒤섞인 것은 물론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소노 시온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정수가 압축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두 야쿠자 조직이 맞붙게 되고 그 난장판 속에서 영화가 촬영되는 피칠갑의 후반부를 보고 있자면 소노 시온이 꾸며낸 지옥의 세계로 잠시 빠져 드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