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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02. 2020

믿어짐으로써 얻는 믿음

<문신을 한 신부님> 얀 코마사 2019

 소년원에서 출소한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은 소년원 토마시 신부(루카즈 시므라트)의 도움으로 목공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목공소에 도착한 그는 왠지 목공소에서 일하기 싫어져 인근 마을로 향한다. 마을 성당에 들어간 그는 기도를 드리던 소녀 엘리자(엘리자 미쳄벨)를 만나고, 그에게 자신이 새로 온 신부라고 장난을 친다. 때마침 가방 안에는 소년원에서 훔쳐온 사제복도 있었다. 엘리자는 곧바로 성당을 관리하는 어머니 리디아(알렉산드라 코니에츠나)에게 그를 신부라고 소개하고, 다니엘은 얼떨결에 건강 상의 이유로 교구를 비워야 하는 주임 신부를 대행하게 된다. 토마시의 이름을 빌려 신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얼마 전 마을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사고가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성체축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최근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제 막 소년원을 출소한 청년이 신부 대행을 하게 된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천주교라는 종교를 소재로 삼지만, 믿음과 표상이라는 종교적이면서도 조금 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엘리자와 리디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사제복을 입은 다니엘이 신부임을 너무나도 쉽게 믿는다. 심지어 주임 신부는 다니엘이 출신 신학교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넘겼음에도 그를 새로 온 신부라고 믿는다. 그들이 믿는 것은 다니엘이 아닌 다니엘이 훔쳐 온 사제복이다. 

 마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1년 전 있었던 대형 교통사고는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두가 사망한 사고였지만, 사망자 중 한 명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트라우마를 경유한 비난의 화살은 사망자의 아내를 향한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미적지근한 해결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을 수 있는 것을 필요하게 만들었고, 때맞춰 다니엘이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믿을 것이 필요했던 마을 사람들은 사제복을 입은 낯선 청년을 믿는다. 토마시 신부의 설교를 적당히 변형한 다니엘의 설교는 마을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다니엘은 신부 대행 역할에 점점 심취한다. 신부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다니엘의 모습은 영화에 담겨 있지 않다. 다니엘은 마을에서 사고의 해결이 옳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을 고민한다. 다니엘은 믿을 것이 사라진 사람들 앞에 나타난 믿을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표상이다. 그리고 그 표상인 다니엘은 자신이 껍데기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옳다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실수였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여 소년원에 들어간 다니엘은 자신의 사제복이 껍데기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제복 안에는 문신이 덕지덕지 그려진 과거가 놓여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는 사복을 입고 술 담배를 즐기며 시끄러운 EDM을 틀고 춤을 춘다. 신부로서의 다니엘이 행하는 것은 그가 소년원에서 보고 배운 것일 뿐, 성경을 해석하거나 신학 공부를 해서 알게 된 것들이 아니다. 그는 그저 표상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설령 그것이 가짜일지라도,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표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표상이 옳은 곳으로 향했을 때 그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 비록 다니엘은 사제복을 벗고 문신을 드러내며 자신이 왔던 소년원으로 되돌아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종교적 권한이 없는 그가 마을에 내린 축복은 그렇게 믿어짐으로써 축복이 되었다. 다소 갑작스러운 엔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 주제를 확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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