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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3. 2016

2016년 해외영화 Best 10

Best 10. <마이 리틀 자이언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마크 라이런스, 루비 반힐

 스티븐 스필버그가 디즈니와 손 잡고 로얄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디지털 시대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태도와, 계속해서 변화하는 영화 시장 속에서 끝까지 영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스필버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BFG라는 캐릭터에 스필버그 자신을 투영하고, 꿈을 모으고 결합해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는 모습과 트럼펫처럼 생긴 도구를 통해 꿈을 영사하는 장면은 영화를 사랑하고, 스필버그의 영화를 지켜봐온 관객들에게 선물같은 장면이다.

Best 9. <데드풀>
감독: 팀 밀러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올해 여러 편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왔지만, 그 중 최고의 영화는 단연 <데드풀>이다. 코믹스 팬들과 더불어 라이언 레이놀즈의 꿈과도 같았던 <데드풀>이 오랜 노력 끝에 영화로 제작되었고, 완성된 영화는 모두가 열광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서사 자체는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오리진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지만, 비선형적 구조의 전개방식과 끝없는 유머와 패러디,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스토리의 단조로움을 압도한다. 데드풀이라는 캐릭터로 만들 수 있는 영화의 최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산의 한계를 아이디어로 극복한 좋은 예시가 또 한 편 추가되었다.

Best 8. <무스탕: 랄리의 여름>
감독: 데니즈 겜즈 에르구벤
출연: 구네스 센소이, 도가 제이넵 도구슬루, 툭바 선구로글루, 일라이다 아크도간, 에릿 이스켄

 올 한 해 페미니즘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이슈였다. 지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무스탕: 랄리의 여름>은 터키의 한 지방에서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에 희생되는 다섯 자매의 이야기이다. 방학하던 날, 학교의 남학생들과 물놀이를 했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폭언을 듣고, 집에 갇혀 강제로 신부수업을 듣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막내 랄리의 시선으로 97분의 러닝타임을 이끌어가고, 네 언니들은 각각의 선택을 한다. 순응하며 결혼을 택하거나, 그 곳에서 저항하거나, 일탈을 즐기고 그 곳을 탈주한다. 결혼식장에서 폭죽 대신 총을 쏴대는 남자들이 있는 곳, 그 곳의 모습을 고발한 수작이다.

Best 7. <아쿠아리우스>
감독: 클레버 멘돈사 필로
출연: 소냐 브라가

 브라질에서 날아온 영화 <아쿠아리우스>는 국내 개봉작은 아니고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만난 작품이다. 주인공 클라라는 '아쿠아리우스'라는 아파트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 아파트를 어느 건설회사가 재개발하려 하고, 클라라는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이사가지 않는다. 그러자 집 앞 해안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여전히 클래식한 LP로 음악을 듣기를 즐기는 클라라의 일상에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영화는 공간이 기억을 저장하는 법을 보여주며 그녀의 삶 곳곳을 관객들이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클라라의 삶이 곧 투쟁의 무기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 145분의 짧지 않는 러닝타임 동안 클라라에게 감정이입하도록 영화를 이끌어 가다가 관객의 입장을 뒤집어버리는 엔딩의 강렬함이 인상적이었다.

Best 6.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독: 켄 로치
출연: 데이브 존스, 헤일리 스콰이어

 살아있는 행동하는 양심 켄 로치 감독이 은퇴선언을 번복하고 연출한 작품으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수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개인적으로는 결과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상을 준 이유가 납득이 간다. 영화가 케이트(헤일리 스콰이어)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과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를 다루는 방식에서 보여지는 차이 등의 단점이 눈에 보이지만, 현재 노인복지기관에서 사회복무 중인 입장으로써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주는 울림은 강렬했다. 복지제도라는 것이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지, 복지 대상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스템을 고발하는 거장의 냉소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Best 5. <토니 에드만>
감독: 마렌 아데
출연: 산드라 휠러, 피터 시모니세크

 코미디 장르로써는 이례적으로 긴 162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코미디 영화로써의 호흡을 잃지 않고 부녀관계,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과 이해를 담아낸다. 기르던 개가 죽자 인생이 무료해진 빈프리트(피터 시모니세크)는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딸을 찾아가지만, 커리어를 쌓기에 바쁜 딸은 아버지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 이에 빈프리트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토니 에드만이 되어 인생 최대의 장난을 시작한다. 시종일관 웃음을 놓을 수 없는 영화임과 동시에, 웃음과 함께 찾아오는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Best 4. <헤이트풀 8>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사무엘 L. 잭슨, 커트 러셀, 제니퍼 제이슨 리, 월튼 고긴스, 팀 로스, 마이클 매드슨, 브루스 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장편영화는 지금까지 그의 영화에 등장했던 악인들을 밀실에 밀어 넣은 실험극처럼 느껴진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부터 이어지는 그의 역사의식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헤이트풀8>에선 남북전쟁 직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존 카펜터의 걸작 <더 씽>에서 모티브를 따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타란티노의 서부극은 "저수지의 장고"라는 김혜리 기자의 평 이상으로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라는 이름을 내걸고, 수다와 유머, 서스펜스와 피칠갑을 장착한 타란티노의 게임은 불가항력적으로 발걸음이 극장으로 향하게 만든다. 

Best 3. <자객 섭은낭>
감독: 허우 샤오시엔
출연: 서기,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무협영화를 만들었다. 먹물을 듬뿍 찍은 붓처럼 카메라를 사용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무협영화는 <자객 섭은낭>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카메라가 담아낸 움직임 하나하나가 서예가가 쓰는 글자의 혼을 담은 한 획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화면 밑에 깔리는 감정은 새로운 영화적 체험으로 다가온다. 극장에서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영화다.

Best 2. <캐롤>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루니 마라, 케이트 블란쳇

 <캐롤>은 멜로드라마 장르가 쌓아온 미의 정수처럼 느껴진다.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라는 포스터의 카피는 영화의 내용을 정확히 요약한다. 테레즈(루니 마라)가 캐롤(케이트 블란쳇)을 카메라로 찍는 행위는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을 시각화한다. 캐롤의 자동차 안에서 테레즈의 시선으로 캐롤의 손부터 얼굴까지 비추는 장면은 그 자체로 감정이 되어 관객의 가슴으로 다가온다. 그 어느 영화보다 절절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감정에 매혹됐다. 동시에 여성이기에 받아온 억압의 맥락을 벗어나 캐롤의 자동차를 타고 떠나가는 여정까지 그려낸다. <캐롤>이 빼어난 퀴어 멜로드라마이자 여성영화인 이유이다.

Best 1. <라라랜드>
감독: 데미언 셔젤
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꿈의 공장의 마법은 계속된다. 작년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있었다면 올해는 <라라랜드>이다. 데미언 셔젤의 세 번째 장편영화 <라라랜드>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게 영화지!'라는 답변으로 내놓을 수 있는 영화다. 'Another Day Of Sun'이 흘러나오며 시작되는 오프닝 뮤지컬 시퀀스가 끝나면 상영관에서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이다.  영화가 부리는 마법, 영화를 왜 꿈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답이 영화 초중반부와, 그것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만약에'라는 키워드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후반부의 위력에 압도당했다. 50~60년대 고전 뮤지컬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바치면서도, 전형적인 뮤지컬 영화의 공식을 후반부에서 깨버리며 새로운 뮤지컬 영화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저 아름다운, 계속해서 보고 싶어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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