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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3. 2016

2016년 한국영화 Best 10

Best 10. <부산행>
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마동석, 김의성, 정유미, 김수안, 최우식, 안소희

전형적인 한국 상업영화 공식을 따라간 영화지만, 기차와 좀비의 결합이란 아이디어는 한국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좀비라는 소재는 KTX라는 익숙한 공간과 더불어, 뛰어난 액션 설계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파워풀한 마동석의 캐릭터는 영화에 힘을 실어줬다. 좀비와 승객들이 뒤엉킨 KTX 속 지옥도를 잡아낸 촬영은 그간 좀비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준다. <월드워 Z>가 롱 숏으로 좀비 아포칼립스를 그려냈다면, <부산행>은 여기에 카메라를 조금 더 들이댄다.

Best 9. <최악의 하루>
감독: 김종관
출연: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 이희준

 <최악의 하루>는 배우 한예리에 대한 영화처럼 보인다. 주인공 은희는 한예리처럼 무용을 전공한 배우이다. 거짓말을 통해 살아가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으로 료헤이(이와세 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은희의 하루에서는, 만나는 남자에 따라 목소리 톤, 표정, 말투가 모두 달라진다. 김종관 감독의 카메라는 영화마다 무대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를 보듯 은희를 바라본다. 밤의 남산에서 맞이하는 산뜻한 엔딩은 배우의 거짓말, 그러니까 그들의 연기를 언제나 반겨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Best 8. <그림자들의 섬>
감독: 김정근
출연: 김진숙, 박성호

 2016년은 유독 주목할만한 한국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왔다고 기억된다. 고희영 감독의 <물숨>, 박소현 감독의 <야근 대신 뜨개질>, 이소현 감독 <할머니의 먼 집>등의 다큐멘터리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한진중공업의 30년 투쟁사를 담은  김정근 감독의 <그림자들의 섬>이다. 지금의 시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이유를 다시 깨닫게 해주는 다큐멘터리랄까? 김진숙, 박성호 등 한진중공업의 노조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투쟁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형식을 취하는 영화의 방식은, 투쟁을 기록하는 것 또한 투쟁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Best 7. <비밀은 없다> 
감독: 이경미
출연: 손예진, 김주혁, 신지훈, 최유화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문제작이 아닐까?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정치 스릴러처럼 보인 영화는 미스터리 장르의 외피를 쓰고 모녀관계라는 특수한 인간관계에 집중한 영화였다.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전개 방식과 시놉시스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라는 클리셰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는 한국 상업영화 속에서 감독의 개성이 신선함을 줄 수 있음을 다시금 증명한다. 또한 여성혐오나 지역감정, 청소년혐오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한 영화에 담아낸다. 때문에 <내부자들> 같은 영화보다 <비밀은 없다>가 한국의 현실을 더더욱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느껴진다.

Best 6. <죽여주는 여자>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안아주

 <죽여주는 여자>의 등장인물들은 한국 사회의 마이너들이다. 박카스 할머니, 코피노 소년, 의족을 착용하는 장애인, 트랜스젠더가 한 집에 모여 살게 되는 풍경을 다룬다. 소재에 비해 담백하게 느껴지는 연출은 마이너들의 자연스러운 연대를 보여준다. 그들이 모여사는 티나(안아주)의 집에서의 카메라가 유독 매끄럽게 흘러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윤여정의 표정 속에서 근현대사 속에서 희생된 한국 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Best 5. <노후 대책 없다>
감독: 이동우
출연: 파인 더 스팟, 스컴레이드

 이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다. 한국 펑크 씬의 밴드 스컴레이드와 파인 더 스팟가 일본에서 열리는 펑크 페스티벌에 초청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낸다. 저항의 음악이자 평화의 음악이며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인 펑크가 무엇인지를 담아내는 음악 다큐멘터리라기 보단, 한국 펑크들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담아내는 영화이다. 유머를 섞어가며 담아낸 <노후 대책 없다>는 제목 그대로 노후 대책 없는 한국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왜 돈을 못 버는지, 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지, 왜 나라는 국민들이 죽어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에 대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존나게 공부하고 존나게 스펙쌓고 존나게 취직하고 존나게 죽어"라는 파인 더 스팟의 가사는 노후 대책 없는 한국의 초상이다. 2016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고, 스컴레이드의 베이시스트 이동우가 직접 연출했다.

Best 4. <연애담>
감독: 이현주
출연: 이상희, 류선영

 올해 영화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여성 퀴어영화가 쏟아졌다. 페미니즘 이슈와 맞물리고 SNS를 통해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여러 영화들이 흥행으로도 이어졌다. <캐롤>이 한 해를 시작하는 작품이었다면, <연애담>은 올해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윤주(이상희)와 지수(류선영)의 현실적인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퀴어의 위치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하고 살아가는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어느샌가 침대 없이 매트리스만 놓고 사는 풍경이 익숙해진 한국 청년들은 이렇게 연애한다.

Best 3.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감독: 홍상수
출연: 이유영, 김주혁, 김의성, 권해효, 유준상

 올해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홍상수는 역시 홍상수이다. 홍상수 월드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유영과 김주혁이라는 얼굴이 불어넣는 생기와, 항상 타지로 인물을 보내면서 시작했던 기존의 영화들과는 달리 인물들의 생활공간인 연남동을 배경으로 했다는 신선함은 홍상수는 여전히 변화하는 시네아티스트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부터 점점 부드러워지고 유머가 늘어가는 홍상수의 영화가 반갑다. 

Best 2. <우리들>
감독: 윤가은
출연: 최수인, 설혜인

 올해 가장 놀라운 데뷔작이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연출력부터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와 사회를 말하는 이야기까지 첫 장편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완성도를 보여준다. 관객의 어린 시절을 스크린에 투사하듯 진행되는 <우리들>은, 제목처럼 영화를 관람하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면서 지금의 모습이다. 영화를 열고 닫는 운동장에서의 피구는 선을 긋고 너네와 우리를 구분하는 사람들, 선 밖으로 아웃된 사람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Best 1. <아가씨>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사실 처음 관람했을 땐 이 영화를 극장에서 4번이나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엄청난 화력의 팬덤을 통해 개봉 3개월 만에 확장판이 개봉했던, 말 그대로 반년 동안 상영된 영화이다. 백작(하정우)과 코우즈키(조진웅)의 캐릭터로 대변되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남자들의 여성혐오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영화의 에너지에 빠진 것일까? 스크린 속 김민희, 김태리 두 배우는 자기 자신이 본래 히데코와 숙희였던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고, 뛰어난 미술, 촬영, 음악 등은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김태리라는 배우를 알게 해주어 고마운 작품이다.






그 외 인상적이었던 영화들
<동주> (이준익 연출 / 박정민 강하늘 출연)
<문영> (김소연 연출 / 김태리 정현 출연)
<미씽: 사라진 여자> (이언희 연출 / 엄지원 공효진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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