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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21. 2020

<퍼스트 카우> 켈리 라이카트 2019

 서부개척시대의 오리건 주 어딘가, 덫 사냥꾼들과 함께 이동 중인 요리사 쿠키(존 마가로)는 얼떨결이 살인을 저지른 중국인 킹 루(오리온 리)를 우연히 마주친다. 하룻밤 동안 그를 돌봐 준 쿠키는 그와 갈라져 어느 정착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킹 루와 재회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떠올리다가 정착지의 권력자 팩터(토비 존스)의 젖소에게서 우유를 짜내어 비스킷을 만들어 팔기로 한다. 실력 있는 요리사인 쿠키의 빵은 큰 인기를 끌고, 결국 팩터의 귀에도 그 소문이 들어가며 그가 그들을 찾아온다.

 켈리 라이카트의 7번째 장편영화인 <퍼스트 카우>는 우정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를 인용하며 시작된다.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다르다. 쿠키는 소심하다. 식재료를 제대로 구해오지 못한다고 다른 이들에게 구박받으면서도 제대로 화를 내지 못하고, 돈을 벌 수 있지만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일에 쉽게 뛰어들지 못한다. 걷고 달리는 그의 모습도 어딘가 느릿하다. 반면 킹 루는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말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어렸을 적 무역선에 올라 유럽과 아프리카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기도 한다. 다소 판이한 성격의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났고, 우연히 재회한다. 이들이 재회했을 때 킹 루에겐 거처가 있다. 조악한 오두막이지만 두 사람이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다. 편안히 있으라고 말한 뒤 장작을 패러 간 킹 루를 보며 쿠키는 빗자루를 들어 바닥의 낙엽을 쓸어낸다. 두 사람은 다르고, 닮았다.

 여기서부터 두 사람이 이런저런 잡일을 처리하며 대화하는 장면이 10여분 정도 이어진다. 쿠키가 빨래를 하고 있으면 킹 루는 가사도구를 정비한다. 쿠키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킹 루는 옷을 기운다. 두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해야 할 공통의 일을 각자 나누어하면서 살아간다. 비스킷을 만들어 팔자는 이야기는 이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라이카트의 카메라는 그러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팩터와 같은 권력자들이 유럽에서의 패션 유행을 이야기하고, 세계 무역과 돈에 대해, 정치와 전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들은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호텔을 세우겠다는 몽상을 떠올리며 살아간다. 생활의 아름다움, 어딘가 더럽고 불편해 보이며 번거로울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서부개척시대의 생활, 그 생활을 위한 손동작. 정착지에 오는 동안 짝을 잃은 젖소에게 말을 걸며 젖을 짜는 쿠키의 손과 나무 위에 올라 망을 보는 킹 루의 모습이 교차되는 순간은 생활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언제라도 박살 낼 수 있는 존재를 주시하는 것의 숏-리버스 숏이다. 

 두 사람이 맞이할 엔딩은 영화 초반에 이미 제시된다. 오프닝 시퀀스의 시공간이 현대의 오리건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화물선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그것을 지켜볼 수 있는 강가를 떠도는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개는 땅을 판다. 한 소년이 개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그곳에 묻혀 있던 것을 본다. 땅을 파헤치자 두 사람의 해골이 드러난다. 영화는 이 순간 과거로 이동해 숲에서 버섯을 채집하는 쿠키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개와 소년이 발견한 해골이 쿠키와 킹 루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의 엔딩은 두 사람이 해골과 같은 자세로 누워 죽어가는 장면일 것이다. 라이카트는 두 사람이 결국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퍼스트 카우>는 그 죽음을 천천히 다가가는, 우정과 사랑으로 충만하고 생활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다. 죽음의 흔적에서 출발한 영화는 가장 충만한 형태의 삶을 경유해 죽음으로 되돌아간다. <퍼스트 카우>는 그 순환을 채우는 두 사람의 궤적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을 찍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영화는 아름다운 것을 포착한다. 우정은 아름답다. 때문에 영화는 그 우정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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