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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30. 2020

<테슬라> 마이클 알메레이다 2020

 <밀그램 프로젝트>,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등으로 알려진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의 신작 <테슬라>는 제목 그대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다. 영화는 테슬라(에단 호크)가 에디슨(카일 맥라클란)의 밑에서 잠시 일했던 19세기 말엽의 시간부터, 그가 당대 최고의 자본가 J. P. 모건(도니 케샤워츠)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때, 그리고 J. P. 모건의 딸 앤 모건(이브 휴슨)과 함께 한 시간들, 그리고 그의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다. 다만 영화는 익숙한 전기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다. 당시의 사진이나 테슬라가 설계한 기계의 도면 등이 등장하는 것은 발명가의 전기영화라는 측면에서 익숙한 연출이지만, 마이클 알메레이다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세트장 배경 부분에 거대한 배경 사진을 프린팅하거나 영사한 채 테슬라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 시작된 앤의 내레이션은 테슬라의 삶을 설명해주는 듯하더니 직접 화면에 등장해 4의 벽을 깨고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더군다나 앤이 테슬라의 삶을 설명해주는 장면에서, 그가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인물임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앤은 맥북을 열고 프로젝터에 연결해 테슬라와 에디슨의 이름을 구글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쯤 되니 테슬라와 에디슨이 각각 교류와 직류에 대해 논쟁하며 맥도날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는 장면은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갔기에 (심지어 카일 맥라클란이 나오는 줄도 몰랐다) 이러한 연출이 다소 당혹스러웠다. 특히 테슬라가 Tears For Fears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를 부르는 영화 후반부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연출은 테슬라가 당시에 머물며 더 많은 돈과 특허를 갈구한 사람이 아니라, 에너지, 빛, 전기를 통해 세계 전체를 연결하려는 야망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영화 속 설명에 의해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 우리는 내레이터로 등장한 앤처럼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구글링하고, 그렇게 찾을 수 있는 4,400만 개의 정보 중에서 테슬라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뽑아낸다. 알메레이다가 이 영화의 각본을 쓰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테슬라에 대해 조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테슬라>가 테슬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가 발명한 형광등과 네온등, 테슬라코일 등은 테슬라의 업적이나 발명품보단 미래를 내다보고자 했던 그의 삶에 대한 오브제와 같다. 그가 자력으로 도달할 수 없었던 세계, 그가 죽은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 얼추 구현된 그가 바라던 이상적 세계는 영화 내에서 그의 주변부에 놓이지만 그가 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가 발명한 것들은 당장 내 머리 위에 놓여 있는 형광등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이상주의자인 테슬라는 당연하게도 그가 꿈꾸던 이상에 닿지 못한다. “이상주의는 자본주의에 가로막힌다”는 앤의 말처럼, 빚더미에 앉은 테슬라는 이상을 향해 다가가지 못한 채 이룰 수 없는 이상에 파묻혀 버린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테슬라의 삶을 그려내는 것에 과연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간 독특한 형식을 취한 전기영화들은 많았다. 밥 딜런의 생애를 여러 자아로 분열시켜 6명의 다른 배우가 각기 다른 자아를 연기한 <아임 낫 데어>, 관객에게 말을 걸고 실재 푸티지를 뒤섞는 방식의 <바이스>,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세 배우가 인물의 각기 다른 시간대를 연기하고 이를 하나의 굿판으로 엮어낸 김금화 만신에 대한 영화 <만신> 등등. 이러한 영화들은 각 인물에 생애나 그들의 직업적, 예술적 활동 및 성취에 알맞은 영화적 형식을 선보인다. 다만 <테슬라>는 영화의 형식적 욕심이 그것을 앞서 나간다는 인상이 강하다. 앞서 언급한 테슬라가 갑자기 80년대의 팝송을 노래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테슬라의 불안정한 뒷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자신의 미완성의 삶을 노래하는 테슬라의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의 시작과 끝 사이의 간극은, 알메레이다 감독이 취한 방식으로 채워지지 못한 채 겉돌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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