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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0. 2020

<도굴> 박정배 2020

 최동훈이 <범죄의 재구성>, <타짜>, <도둑들>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한국 상업영화에는 일종의 범죄영화 붐이 일었다. 물론 이는 류승완의 <부당거래>와 박훈정의 <신세계> 등이 만들어낸 조폭-검사-경찰 범죄영화는 궤를 달리한다. 사기든 도박이든 도둑질이든, 한 분야의 ‘꾼’들이 모여 서로를 속고 속이는 도돌이표 같은 서사. 이는 최동훈이 <전우치>나 <암살> 같은 시대극을 연출하고 SF인 <외계인>을 준비하는 동안, <타짜>의 속편들과 더불어 수많은 한국 상업영화들이 반복한 이야기다. 어딘가 껄렁껄렁하고 허세 가득한 남자 주인공, 미모와 지식 혹은 기술을 겸비한 여자 주인공, 각기 다른 기술을 하나씩 지닌 조연들, 갑자기 등장한 남자 주인공의 과거 플래시백과 함께 시동이 걸리는 복수의 서사, 결국 도박이든 도둑질이든 무엇 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나는 영화. <도굴>은 이 전형을 정확히 따라간다. 단지 소재가 ‘도굴’일뿐이다.

 영화는 도굴꾼 강동구(이제훈)가 어느 절의 불상을 훔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화재들을 몰래 사들이던 호텔 재벌 상길(송영창)은 그것을 탐내고, 자신의 오른팔 격인 윤세희(신혜선)를 통해 동구에게 일을 맡긴다. 동구는 벽화 전문 도굴꾼 존스 박사(조우진), 전설의 삽질 달인 삽다리(임원희) 등을 섭외해 큰 건수를 하나 시작한다. 그러던 중 동구와 세희는 각기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 영화는 초반에 동구가 무엇인가 복수할 것이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초반에 상길이 보유한 거대한 수장고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결말은? 아마 영화를 보는 모두가 같은 결말을 생각했을 것 같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선릉을 도굴한다는 컨셉에서 뽑아낼 수 있는 상상력이라곤 그저 조폭을 동원해 선릉 인근의 룸살롱을 매입하고 거기서부터 굴을 판다는 정도다. 허세 넘치는 남자 주인공, 예쁘지만 어딘가 재수 없게 묘사되는 여자 주인공, 되지도 않는 코미디를 시도하는 조연들, 거기에 조선족 출신 조폭과 성소수자 혐오적인 농담까지, <도굴>이 예상을 벗어나는 지점은 러닝타임을 채우고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이 정도로까지 쓸모없는 장면들을 욱여넣었구나 싶은 장면의 향연뿐이다. 거기엔 스펙터클도, 서스펜스도, 놀라운 반전이나 리듬감 넘치는 편집도, 복수의 쾌감이나 하이스트의 스릴도, 하다못해 ‘도굴’이라는 소재가 지닌 ‘민족주의’도 없다. 단지 최동훈 같은 영화를 찍고 싶었던 누군가의 욕망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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