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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3. 2020

<웰컴 투 X-월드> 한태의 2019

 영화는 한태의 감독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의 집에는 세 명이 산다. 감독, 엄마, 할아버지. 여기서 할아버지는 감독의 친할아버지, 즉 엄마의 시아버지다. 엄마는 아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시아버지의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엄마는 고생해왔다. 동시에 따로 사는 시어머니와는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교 영상과에 들어간 감독은 엄마와 함께 공모전에 낼 영상을 촬영하며 친구처럼 지낸다. 엄마도 영상을 촬영하고 거기에 출연하는 것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 <웰컴 투 X-월드>는 그렇게 촬영된 무수한 일상의 영상 속에서 시작된다. 

 제목의 X는 미지수 X다. 영화의 중반 이후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분가할 것을 요청하고, 엄마는 망설이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한태의 감독의 카메라는 그 과정을 따라간다. 감독은 엄마가 지난 20여 년 동안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그 때문에 결혼을 싫어한다. 먼 친척의 결혼식장을 돌아다니는 엄마를 종종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가 결혼하는 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구로에서 익산까지 내려가 참석한 결혼식장의 풍경을 보며, 감독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지닌 모종의 소속감을 깨닫는다. 그 미묘한 소속감은 결혼생활을 ‘견뎌온’ 여성들이 공유하는 모종의 유대감일 수도, 가부장제가 제시한 속박된 생활에 적응한 결과일 수도, 그 밖에 다른 어떤 감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가 그러한 틀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틀은 그것이 제공하는 감정적인 것 외에도 제사와 명절 노동, 부양과 돌봄 노동,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의) 생계유지 등을 떠맡는다.

 여기서 엄마와 엄마를 지켜보던 감독이 미묘한 소속감을 느낀 장소가 결혼식장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곳에서 엄마는 자신을 만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재회한 이들은 온종일 덕담을 나눈다. 결혼하는 이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던 엄마는 결혼식 사진 속에 속함으로써 미묘한 소속감을 굳건한 감정으로 변환하고 딸의 카메라를 향해 V자 제스처를 보낸다. 하지만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장에서 친척과 재회하는 것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명절보다 더욱 큰 거리감을 동반한다. 큰 틀에서 가족이라는 범주화는 모종의 소속감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상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에 가깝다. 엄마가 돌아오는 곳은 어쨌든 시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집이다. 

 물론 시아버지와 엄마의 사이의 격한 갈등이 영화에 등장하진 않는다. (영화에 실리지 않은 영상 중에 그런 장면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결혼식장에서 느낀 소속감엔 익산까지 친척들을 만나러 갔다는 능동성에 투영되지만, 단 세명이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집이라는 공간에서의 소속감은 의무나 굴레, 속박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을 소속감으로 내면화하여 며느리의 의무를 지키는 것과, 거기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 중에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분가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시아버지의 제안에 엄마는 갈등하고, 집을 알아볼 때도 무의식적으로 시아버지가 남을 구로동 인근의 집을 알아본다. 딸이 원래 집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진 집들을 제안하지만, 결국 결정된 것은 원래 집에서 5분 거리의 집을 매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5분의 거리감’이 주는 해방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달랑 5분가량 걸으면 시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되돌아올 수 있지만, 엄마는 몇 분, 몇 시간, 며칠 뒤가 아닌 몇 개월 뒤에나 시아버지를 볼 것이라 말한다. 겨우 5분 정도의 거리감이지만, 그것은 드디어 ‘시월드’의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하는 날, 원래 집에서 쓰던 냉장고는 버려진다. 어딘가 이상한 성격의 시아버지가 라면을 보관하고, 엄마가 시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라면을 끓이기 위해 매일 같이 열던 그 냉장고는 누구의 집에도 머물지 않는다. 혈연관계도, 엄마가 원한다면 더 이상 인척 관계도 아닐 시아버지와의 관계는 냉장고라는 상징을 통해 정리된다. ‘시월드’를 빠져나올 미지수 X-월드가 어떤 것일지는 엄마도 감독도 관객도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일궈내고, 그 이후를 꿈꿀 수 있는 것에 필요한 것은 단지 ‘5분의 거리감’이었음을 엄마와 감독은 깨닫는다. 다음 명절에 엄마와 시아버지의 재회는 먼 친척과의 재회처럼 반가울까? 그것 또한 미지수이지만, 그 가능성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점에서 영화 속 모녀는 개척자가 된다. 그 세계에 발을 들인 모녀가 그곳에 관객들을 초대하는 것이 <웰컴 투 X-월드>의 목표였다면, 그 지점에 대해 이 영화는 성공을 거둔다.


*영화 후반부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모녀가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는 장면에서 모녀는 물론 주변 행인들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작년 영화제 상영 때도 이 장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면이 영화제 공개 이후 추가 촬영된 장면이라면 올해 한국에 개봉한 작품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19 팬데믹의 흔적을 본 것이 되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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