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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2. 2020

2020년의 한국영화 10편

 올해는 영화인들에게나 영화관객들에게나 최악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극장 관객수를 책임지는 텐트폴 영화들은 개봉을 연기하거나 넷플릭스 등의 OTT서비스로 향했고, <반도>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이 400만 가량의 관객을 끌어모으긴 했으나 다섯 편의 천만영화가 등장한 작년과 비교하면 관객수가 대폭 줄어든 한 해였다. 3월에서 5월로 개최를 연기한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온라인상영 및 장기상영회로 전략을 바꾼 전주국제영화제를 필두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이 일정을 연기하거나 온/오프라인 병행, 상영규모 축소 등을 택했다. 온라인 상영 등을 통해 관객이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넓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동시에 여러 이유로 온라인상영을 택하지 않은 영화들은 그만큼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창구를 잃어버린 셈이다. 또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나 <애비규환> 등의 작품이 대형 영화가 사라진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약간이라도 얻어내며 기존보다 큰 규모로 상영되기도 하였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상영의 확대가 흥행으로 직결되진 못했다. 게다가 확산과 감소를 반복하는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의 극장은 한번도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다. 물론 극장은 안전한 공간이었다. 극장을 통한 코로나 19 전파사례는 없으며, 팝콘 등의 음식을 먹지 않는 이상 극장에서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눌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로 대형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한국 멀티플렉스의 생태계는 코로나 19로 인해 거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멀티플렉스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장기간 휴관한 끝에 영화사업부가 사실상의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상상마당시네마의 사례처럼, 전국의 작은 영화관들이 입은 타격은 멀티플렉스가 입은 피해보다 지표적으로는 적어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영화들은 있었다. 모두의 뇌리에 박힐만한 흥행을 기록한 영화는 없었지만, 코로나 19가 감소세를 보이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당히 완화되었던 여름에는 세 편의 텐트폴 영화들이 개봉하였고, 몇 편은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큰 영화가 사라진 틈을 타 <소리도 없이>, <내가 죽던 날>, <디바>, <삼진그룹영어토익반> 등 여성 감독 또는 여성 주연의 소규모 상업영화 데뷔작들이 줄지어 개봉했고, 몇몇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도 했다. 홍상수와 장률과 같은 노장들의 신작도 극장에 개봉했고, 다양한 독립영화들 또한 계속 개봉했다. 특히 온라인상영의 확대를 통해 다양한 단편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올해의 수확이다. 단편영화는 보통 영화제 등에서 3~5편 정도가 묶여 상영되는데, 때문에 보고싶은 작품만 관람하긴 어렵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온라인상영으로 진행된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등의 영화제에서 OTT를 통해 개별작품들을 결재하여 관람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여러 단편영화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물론 전주국제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진행된 묶음 상영이나, 인디포럼 월례비행과 같은 기획전을 통해서도 꾸준히 좋은 단편영화들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규모를 축소하면서 해외초청작이나 특별전 및 기획전이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는데, 그것들의 빈 자리를 단편영화들로 채운 한 해였다. 


 집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집중력도 떨어지고, 영상이나 사운드의 질이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장이 영화를 독점하는, 극장체험이 영화적 체험의 본질과 직결되는 시간은 점점 과거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 19는 그것을 급격하게 가속화 시켰고, 어쩌면 그 때문에 놓치고 말았을 여러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좋은 영화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티켓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CGV와 메가박스에 돈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듯, 우리는 넷플릭스와 왓챠에 돈을 지불하고 영화를 본다. 어쨌거나 계속 본다. 올해도 계속 무엇인가를 봤다. 아래는 올해의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한국영화 10편이다. 순위는 없으며, 단편과 장편을 구분하지 않았고, 극장개봉 및 영화제나 기획전 등에서 첫선을 보인 신작들로 꼽았다.


1.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정여름 2020

 올해 가장 대담한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정여름의 계원예대 졸업전시에서 무빙이미지 설치작업의 형태로 처음 공개되었던 이 영화는 영화제 상영용으로 재편집되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영화는 용산 해방촌에 거주하는 감독이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를 플레이하다 우연히 미군기지 내의 포켓스탑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용산기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세계의 미군기지는 미군 혹은 미국인이 아니라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게다가 그곳은 타국에 있지만 미국의 영토와 유사한 지위를 갖고 있는 곳으로써, 치외법권임과 동시에 미국을 복제하고 있는 가상의 미국이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은 그러한 미군기지의 비가시적이며 가상적인 모습을 단순히 폭로하는 것이 아닌, [포켓몬 고]를 비롯해 유튜브, SNS, 뉴스 등 온라인 가상공간에 흩뿌려진 미군기지의 이미지를 통해 가상으로써의 미군기지를 재구성한다. 이 영화는 어떤 것도 촬영하지 않았다. 영화에 사용된 푸티지들은 선전영화나 뉴스, 브이로그 등 다른 영상물을 위해 촬영된 것이거나, SNS나 게임 화면을 녹화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온라인 가상공간에 업로드된 것들을 녹화하고 캡쳐하는 것 또한 촬영의 일종이라 생각할 때 이 영화가 촬영하고 있는 것은 온라인 가상공간인 셈이다. 용산 미군기지가 현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거대한 가상이라면, 이 영화 또한 그러한 가상의 공간에 흩뿌려진 이미지들을 통해 가상 자체를 응시하는 눈(그라이아이)를 구축한다. 

2.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2020

 이 영화는 1999년 넥슨이 개발하고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게임 [일랜시아]의 '고인물' 유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윤진 감독이 이미 10여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이자 길드마스터이고, 영화는 그가 길드원 및 [일랜시아]의 다른 유저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일랜시아]를 어떤 유토피아와 같은 공간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높은 자유도를 통해 각광받았던 게임은 운영진이 떠나가고 버그와 메크로가 판을 치는 공간이 되었다. 이곳을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곳은 현실과 다르게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한 만큼 능력치가 오르고 돈을 벌 수 있는 규칙이 모두에게 공정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만 그러할 것이다. 인터넷이 새로운 민주주의적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인터넷 초기의 열망이 그릇된 것으로 판명나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랜시아]를 비롯한 게임 또한 마찬가지다. 게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제공할 것만 같지만, 그곳은 점차 현실의 차별과 규칙을 수용해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공간으로 변해간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그럼에도 게임을 떠나지 못하는 90년대 생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왜 [일랜시아]를 떠나지 못하는가? 그곳은 더이상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는 고정된 공간으로써, 언제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2003년의 [메이플스토리]는 2020년의 [메이플스토리]와 같은 공간이 아니지만, [일랜시아]는 어느 순간부터 고정되어 있다. 때문에 이 영화는 그러한 고정된 공간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이야기하고, 고정된 공간이 지닌 모종의 쓸모를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쓸모란, 게임의 가상공간이 단순히 현실의 대체물이나 도피처, 혹은 거울상으로 존재하는 대신, 폐허의 노스텔지어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스리슬쩍 내비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3. <여름날> 오정석 2019

 이 영화는 성실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향 거제도로 내려온 승희의 며칠을 담아낸 이 영화는 별다른 사건이나 갈등이 벌어지지 않는다. 승희가 낚시터에서 우연히 알게 된 거제 청년과 함께 거제도의 곳곳들 돌아다니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그렇다고 그가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거제에 내려왔다거나,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만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즉, 그는 자신을 비우려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승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는 피서객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자며 권하고, 삼촌을 비롯한 이들은 언제 서울로 돌아갈 것인지를 자꾸만 물어본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낚시터에서 오지 않을 입질을 기다리는 시간, 폐왕성에 올라 거제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시간, 즉 유배지를 자유롭게 배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가 되고 싶은 그는 혼자가 되지 못한다. 영화의 카메라는 승희와 다른 인물들을 분리한다. 가령 화면의 전경과 후경, 오른쪽과 왼쪽 등에서 승희와 다른 이들은 분리된다. 화면 내에서 승희와 동등한 위치 및 깊이를 차지하는 인물은 이름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한 청년 뿐이다. 두 사람은 화면 속에 함께 존재하지만, 동시에 '혼자'라는 동등한 지위로써 존재한다. 두 사람은 영향을 주고 받고 어떤 감정을 나누는 이들이 아니다. 혼자가 되길 바라는, 그리고 혼자가 되는 시간을 얻어내기 위해 유배지를 떠도는 이들이다. <여름날>은 어떠한 욕심도 없이 이들을 성실하고 덤덤하게 담아낼 뿐이다. 

4. <그녀를 지우는 시간> 홍성윤 2020

 올해 가장 재밌게 본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이 영화다. 뽀샤시한 화면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는 얼핏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단편영화 내지는 웹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갑작스레 프레임에 침입한 귀신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관객을 프레임 밖으로 튕겨낸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영화 속 영화를 편집하는 감독과 편집기사의 목소리다. 감독은 열심히 촬영한 영화의 OK컷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며, 죽은 영화도 살린다는 편집기사를 찾아온다. 편집기사는 이런저런 해결책을 내놓지만,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무언가가 삭제되는 것에 자꾸만 반대한다. 영화는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데스크탑 필름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39분의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영화 속 영화를 편집하는 프리미어 화면으로 대체되고, 촬영된 영화를 살펴보는 편집기사와 감독의 대화로 영화가 구성된다. 어떻게든 영화를 살려보려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와중에 "이렇게 영화를 찍으면 안 된다"는 규칙을 읊는 것 마냥 편집기사는 영화감독을 타박한다. "인서트숏이 없어요", "촬영을 아주 개떡같이 했네", "다른 테이크는 없어요? B컷은요?" 이런 대화들이 오가며 영화는 점점 어처구니 없어져 간다. 사실 영화감독이 가져온 OK컷들은 싸구려 웹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정말로 구린 숏들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 숏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의도와 이유를 묻는 편집기사에게 영화감독은 되려 "편집기사님 영화 많이 안 보시죠?"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편집이 막힐 때마다 스탭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는 감독의 전화는, 무응답과 욕설로 되돌아온다. 오로지 감독만 만족하는 OK컷들에 끼어든 귀신은 영화를 오로지 자신 혼자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감독에게 내린 스탭들의 저주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극 중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의 클로즈업 숏을 보는 감독의 반응은 감독이 그 배우를 사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캐스팅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영화는 이를 대사를 통해 신랄하게 까대고, 데스크탑 필름이라는 형식을 통해 영화제작 과정 자체를 영화에 내재시키며 주제를 강조한다.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한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이라는 문구는 영화 중반 "이거 영진위 지원작이죠?"라는 편집기사의 물음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심지어 영화의 엔드크레딧에서 홍성윤 감독은 '도움을 준 사람'의 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뿐, 엔드크레딧은 영화 속 영화의 엔드크레딧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따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다면 크레딧의 어떤 부분이 <그녀를 지우는 시간>의 진짜 크레딧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서치>나 <언프렌디드>처럼 장르영화의 외피를 입은 데스크탑 필름 영화들이 화상통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것을 비해,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영화 속 영화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형식으로써 이를 사용한다. 이 지점에서 주제는 물론, 코미디를 유발하는 방식까지 형식과 철저하게 혼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5. <재춘언니> 이수정 2020

 영화는 콜트콜텍의 정리해고로 인해 30여년 간 일하던 기타공장에서 나와 복직투쟁을 이어가는 임재춘의 이야기다. 제목이 알려주듯, <재춘언니>는 '복직투쟁'보다는 '임재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복직투쟁 과정을 다룬 작품이기에, 이 영화는 투쟁과 연대를 다룬다. 하지만 그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깃발, 창공, 파티>, <보라보라>, <그림자들의 섬>처럼 투쟁과정에 동참하고 역사를 재구성하는 영화들과 다른 방식을 취한다. <재춘언니>는 차라리 <패터슨>에 가까운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 등장한 임재춘의 모습은 연극 [햄릿]을 공연하기 위해 오필리아 분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무대에서 대사를 읊고, 무대 뒤의 스크린에는 투쟁하는 임재춘과 동지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13년, 4464일 동안 이어진 임재춘과 동지들의 투쟁은 어느 순간 예술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임재춘은 연극도 하고, 글도 쓰고, 음악도 연주하고, 낭독도 하고, 예술 퍼포먼스에 참여하기도 한다. <패터슨>이 어느 노동자의 일상 속 예술을 발견하는 영화라면, <재춘언니>는 노동을 잃어버린 노동자의 투쟁과정,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투쟁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임재춘의 투쟁은 예술의 재료가 아닌, 그의 삶에서 상호공존하는 무언가가 된다. <재춘언니>는 그 무언가를 담아낸다.

6. <도망친 여자> 홍상수 2020

 홍상수의 24번째 장편영화 <도망친 여자>는 그간 홍상수가 지속해온 형실실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다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나 <다른나라에서>처럼 '차이와 반복'을 중심에 두고 있다기 보단(물론 그러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만 <도망친 여자>를 보는 것은 재미없을 것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강변호텔>이 보여준 복수화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게 더욱 흥미로운 해석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 편의 전작들이 하나의 시간선 위에서 각기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듯한 인물들의 이합집산을 담아내고 있다면, <도망친 여자>는 제목이 지시하고 있는 듯한 감희가 서로 다른 세 명의 여성 친구들을 만나는 모습을 담아낸다. 여기서 감희가 세 사람을 만나는 양상은 꽤나 유사한데, 감희는 그들의 집이나 일터에서 그들을 만나고 어떤 남성이 한명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이들이 나누는 대화도 꽤나 유사하다. 공간에 대한 얘기(풍경, 집값, 3층과 지하 등), 결혼 5년차이지만 처음 남편과 떨어져 지내 본다는 감희의 말, 어떤 스크린(CCTV, 인터폰, 극장)을 응시하는 감희의 모습이 반복된다. 그리고 감희가 세 사람을 영화가 보여주는 순서대로 만나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이 순서는 달라져도 크게 상관 없다. 산의 이미지들을 통해 갑작스레 연결되는 공간 사이의 이동은 감희가 찾는 세 공간을 동일선상에 위치시킬 뿐, 그것의 시간을 지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감희가 세 사람을 만나는 사건은 사실상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홍상수 영화에 으레 등장하곤 했던 바다나 강이 아니라 산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바다는 감희가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 속 바다(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 장면)만 등장한다. 바다라는 유동적인 이미지, 종종 인물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던 바다는 이번 영화에 없다. 대신 감희를 비롯한 인물들이 그 속으로 다가가지 않은 채 카메라만이 응시하는 고정된 덩어리 같은 산의 이미지가 <도망친 여자>를 채운다. 그리고 그 고정된 이미지는, 바다가 함부르크와 강릉을 이어주고(<밤의 해변에서 혼자>) 얼어붙은 강이 한 프레임 안에 포섭되지 않는 두 세계를 접합시키는 것(<강변호텔>)과 달리, 그저 복수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지시할 뿐이다. <도망친 여자>가 아름답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유사하지만 다른 복수의 세계를 투명하고 고정된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7. <깃발, 창공, 파티> 장윤미 2019

 장윤미 감독을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경향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명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첫 장편영화 <공사의 희로애락>은 건설 노동자 아버지의 이야기였고, <콘크리트의 불안>이나 최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공개된 <고양이는 자는 척을 할까>에 이르는 다큐멘터리/에세이 필름들 또한 자신의 삶, 생활, 경험에서 출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깃발, 창공, 파티>는 장윤미 감독 자신이나 그의 가족들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구미공단에 위치한 KEC의 임금 단체협약 과정을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의 시점에서 담아낸다. 약 1년 가량의 시간을 담아내는 이 영화는 KEC지회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드러난다. 영화는 그 중에서도 '희'에 집중한다. 영화의 후반부, 한 인물은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웃는 일도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하지만 관객은 그들의 웃는 모습을 반복해서 본다. 이들의 웃음이 점유하는 곳은, 물론 MT를 통해 찾은 계곡과 같은 공간도 있지만, 집이나 자가용 같은 사적 공간이 아닌 노조 사무실이다. 이는 이들이 노동하는 회사와 노조 사무실이 이들의 사적인 삶과 분리된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임과 동시에 생활공간으로써의 사적 영역임을 드러낸다. 물론 단순히 공적 영역인 회사가 사적 영역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KEC지회의 지난한 투쟁 과정 속에서 이들이 모임을 갖는 사무실을 비롯한 공간들은 이들이 먹고 자고 씻고 노는 공간이 된다. 영화의 제목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어지는 지회 모임 장면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모두가 웃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지회의 첫 여성 지회장이 된 이의 생일을 축하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이 대가족의 모임처럼 느껴지는 순간 노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투쟁가가 들려오고 이들은 투쟁을 진행 중인, 혹은 언제라도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로 정체화된다. 이들과 이들의 웃음이 점유한 공간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걸쳐 있다. 그곳은 생활공간임과 동시에 노동 공간이고, 그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동계약이나 임금이 아닌 투쟁이다. 본래 두 공간을 이어줬어야 할 매개체를 되찾기 위한 투쟁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 그 자체가 매개체가 되었다. 영화는 투쟁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매개하게 된 시간을 보여준다.

8. <셀프-포트레이트 2020> 이동우 2020

 <노후대책없다>의 유쾌함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꽤나 고생할 것이다. 영화는 20년 전 연출한 단편영화 <자화상 2000>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까지 초청되었던 노숙인 이성열 감독을 우연히 만난 이동우 감독이, 그의 모습을 자신의 미래라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동우는 카메라를 들고 이성열을 찍는다. 영화는 2017년 말 둘의 첫만남부터 2020년 4월까지의 시간을 담아내고, 그 중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의 촬영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사이사이 이성열의 영화 <자화상 2000>과 그가 해외 영화제에 가서 촬영한 영화제 현장 영상이 등장한다. 다만 영화는 이성열과 다른 노숙인들을 카메라에 담아낸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엔 몇몇 순간의 날짜를 명시하는 자막이 등장하지만, 대화의 주제와 내용, 혹은 상황에 따라 자막이 명시한 시간대는 무시된다. 이성열은 이동우의 응원에 힘입어 새로운 '자화상' 시리즈를 계획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무엇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가 날짜를 명시함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시간대를 뒤섞어 버리는 것은 무엇도 진행되지 않는/못한 상황 자체와 공명한다. 영화는 대낮부터 술에 취한 이성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성열은 대부분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기도 하고, 새 영화를 찍을 생각에 들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으로 인해 노숙인 커뮤니티 속에서도 점차 멀어지는 모습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의 원인임과 동시에 결과다. 자활을 목적으로 기초수급자에게 현금을 제공하지만 막상 일을 구하면 수급이 끊기는 상황과, 새 영화를 찍고 싶은 이성열의 마음은 모순 속으로 블랙홀처럼 사람을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공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 조각나 담긴 이성열의 <자화상 2000>과 중첩된다. 이동우가 이성열의 모습을 자화상처럼 느낀 것처럼,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자화상 2000>의 다시 그린 자화상과도 같다. 영화의 엔딩크레딧 이후엔 <자화상 2000>의 엔딩크레딧이 등장하고, 영화제 상영 이후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15분 짜리 자화상에 대한 168분의 응답. 이성열이 다른 노숙인이 손거울을 들이대자 "반사"라며 자신도 손거울을 꺼내 든 것처럼, 두 영화는 서로의 상을 그 속에서 무한히 복제하며 내파하는 이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9. <작은 빛> 조민재 2020

 뇌수술을 앞둔 진무는 수술 수 기억상실증을 겪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캠코더를 들고 가족들을 찾는다. 복잡한 가족관계를 지닌 진무는 오랜만에 어머니, 누나, 형, 작은아버지 등을 만난다. 진무의 캠코더에는 진무와 이들의 만남이 기록된다. <작은 빛>은 아버지라는 과거와의 화해나 가족들의 봉합을 테마로 삼은 작품이 아니다. 이미 흩어진 가족은 다시금 재결합될 수 없다. 미봉책에 가까운 봉합 대신 영화가 선택한 길은 청산이다. 영화 후반부, 드디어 모두 모인 가족은 아버지의 무덤을 파내 이장하려 한다. 관을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와 함께, 그 뿌리에 뒤섞인 것 마냥 20여 년의 세월 동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시신이 드러난다. 시신을 보고 인부들은 손사래를 치며 산 밑으로 내려가지만, 진무는 덤덤하게 시신을 수습하고 상자에 담아 옮긴다. 아버지를 뿌리에서 분리해 다른 곳으로, 축축한 땅에서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는 이 과정은 아버지에 대한 긍정이나 화해의 순간이 아닌 청산의 순간이다. 가정폭력을 일삼다가 일찍 죽어버린 아버지는 그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그가 가족을 형성하는 것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 찝찝한 근원을 회피하거나 방치하는 대신, 그것을 파내고 청산한다. 진무는 캠코더로 촬영한 내용을 가족들과 함께 본다. 캠코더를 열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작은 빛으로 과거를 보는 것은, 형상이 남아 있는 시신을 파내어 밝은 곳으로 들고 간 뒤 다시 파묻는 이장의 행위와 유사하다. 진무는 과거를 붙잡아 현재에 머물게 하려고 캠코더를 든다. 그 과정 속에서 이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붙잡을 수 없는 과거를 청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과거는 진무의 캠코더에 담긴 아버지의 카메라 속 사진들 정도만으로도 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얼굴들이라는 희미한 형상들을 비추는 작은 빛 말이다.

10. <69세> 임선애 2019

 영화는 제목처럼 69세의 노년 여성의 이야기다. 간병인으로 일하던 효정은 어께 통증으로 인해 입원한 병원에서 29세의 남성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효정은 동거인인 동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지만, 경찰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29세 남성이 69세 노인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더불어 효정이 치매가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69세>는 단순히 노년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공권력이 해결해주지 않는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는 아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노년 여성(들)의 모습이다.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흔히 노인의 삶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를 벗어나는 관계들을 보여준다. 아내와 사별한 뒤 효정과의 동거를 택한 동인과, 효정의 피해사실을 듣고 그를 믿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동인의 모습(물론 그는 너무 나대기도, 어느 순간 믿음을 놓기도 한다) 등은 그간의 한국영화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노인의 모습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영화는 한국에 만연한 노인혐오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확장한다. 효정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이후 찾아오는 것은 그가 여성이자 노인이기에 찾아오는 교차적인 혐오다. 그는 여성이기에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노인이기에 그것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며, 둘 모두이기에 의심받는다. 이 과정이 결국 사적복수라는 방법을 향하는 것은 다소 진부하고 아쉽지만, <69세>는 두 노인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고 보여줌으로써 아쉬움을 상쇄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혐오로 인해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며, <스포트라이트> 와 같은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그 과정에서 성폭력과 혐오의 피해자 고통 속에 몰아넣는 대신 배우의 단단한 연기를 믿고 나아간다. 그 지점에서 <69세>는 기억할만한 영화다.


+그밖에 기억에 남는 영화들

<실> 조민재, 이나연 2020

<갓스피드> 박세영 2020

<사라진 시간> 정진영 2019

<애비규환> 최하나 2020

<소리도 없이> 홍의정 2020

<서정시작법> 윤혜인 2020

<이별유예> 조혜영 2020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2020

<에듀케이션> 김덕중 2019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미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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