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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3. 2020

2020년의 해외영화 10편

 2020년은 블록버스터 전멸의 해였다. 때문에 아래의 리스트에도 블록버스터 영화는 없다. 올해 전세계에 와이드 릴리즈된 블록버스터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이 유일하다. 디즈니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과 <뮬란>도 몇몇 국가에서 개봉하긴 했으니, 북미시장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디즈니+를 통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원더우먼 1984>가 개봉했으니, 팬데믹 직전에 개봉했던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을 제외하면 이 영화까지 단 두편의 블록버스터만이 올해 와이드 릴리즈 된 블록버스터인 셈이다. The Verge에서는 12년 만에 마블영화가 단 한편도 개봉하지 못한 첫 해라 말하며 팝컬쳐의 침체기가 찾아왔다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그 지표가 마블영화인 것은 다소 의아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블영화를 비롯해 <분노의 질주>, <007>, <킹스맨>, <콩 vs 고질라> 등의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영화들은 물론, <컨져링 3>와 같은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영화들까지 개봉을 연기했다. 그 자리를 채운건 역시 OTT서비스들이다.


 2018년 <로마>의 성공에 힘입어 작년에도 <결혼 이야기>, <아이리시맨>, <두 교황> 등을 제작하고 배급했던 넷플릭스는 <6 언더그라운드>의 성공에 힘입어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작 및 배급했다. 최근의 <더 프롬>, <힐빌리의 노래>, <미드나이트 스카이> 등 처럼 한정적인 극장개봉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넷플릭스에 공개된 <익스트랙션>와 <올드 가드>는 꽤나 큰 흥행을 기록했고,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영화를 블록버스터 규모로 제작하는 것에 긍정적인 지표를 보여주었다. 그와 동시에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등 할리우드의 재능있는 감독 및 배우를 대거 끌어들인 영화들을 공개했으나, 이들 작품에 대한 반응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디즈니+의 경우, 아직 한국에 서비스되지 않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스타워즈 스핀오프 드라마인 <더 만달로리안>의 시즌2 등이 히트했고, 극장개봉을 포기한 여러 영화들이 공개되는 창구가 되었다. 폭스 인수 이후 끝없이 표류하던 <뉴 뮤턴트>가 극장개봉한 것이 다행인 상황이랄까. 이 사정은 워너브라더스의 영화들이 선보여지는 HBO MAX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아예 2021년의 모든 개봉작을 극장과 OTT에서 동시에 공개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애초에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미국 대선과 맞물린 시점에 <보랏 2>를 공개해 쏠쏠한 수익을 얻었다. 이러한 거대 OTT 업체들과 더불어 언급해야 할 것은 미국의 호러/스릴러 전문 OTT 업체인 셔더(Shudder)의 오리지널 영화 <호스트: 접속금지>다. 국내엔 내년 1월 공개예정인 이 영화는 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화상회의 서비스 줌(ZOOM)을 통해 심령의식을 치른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물론 <언프렌디드>처럼 화상채팅을 활용한 데스크탑 필름 형식의 호러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나, 올해 급부상한 줌을 활용하고 실제 촬영도 줌을 통해서 이루어진 점, 감독과 배우, 스탭들이 각자의 집에서 촬영을 진행한 것, 줌의 무료이용시간인 40분을 고려한 러닝타임 등을 생각하면 이 영화의 성공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넷플릭스 등에서도 자가격리를 소재로 한 시리즈를 내놓았고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원격 대작전>을 연출하기도 했으나, 가장 인상깊은 자가격리 영화는 <호스트: 접속금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장황하게 OTT 서비스의 영화들을 언급한 것은 올해 많은 해외영화들을 OTT를 통해서 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당연하게도 국내에 정식수입되어 공개되지 않은 영화들도 포함된다. 3월 팬데믹이 선언된 뒤 수많은 영화제들은 일정을 연기하거나 개최를 취소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온라인 개최를 택한 영화제들이 등장했다. 국내에선 전주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여러 영화제들이 온라인상영을 택했고, 해외에선 여러 영화제와 유튜브가 연합하여 기존 상영작들을 유튜브를 통해 상영하는 "We Are One: A Global Film Festival"을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여러 개인창작자들이나 시네마테크, 아카이브, 미술관과 박물관 등이 유튜브와 비메오 등의 서비스를 통해 자신들이 지닌 아카이브를 온라인에 무료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은 한글자막이 없고 종종 지역락이 걸려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영화들을 모두 챙겨보기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대부분이 과거의 영화였지만, 누군가는 신작을 선보이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KMDB VOD를 통핸 온라인 기획전을 기존보다 더욱 활성화하며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기회를 넓혀주었다. 그야말로 쏟아지는 영화들의 리스트 속에 파묻혀 집콕했던 한 해였다.


 물론 그럼에도 몇몇 영화제들은 오프라인으로 개최되었다. 관객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큰 영화들을 극장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운 한 해였지만, 그럼에도 좋은 영화들은 여전히 영화제를 통해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올해도 여러 영화제들에 발품을 팔며 여러 영화들을 만났다. 예년만큼 많이 극장을 찾진 못했지만, 규모를 축소하면서라도 개최된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영화들을 보았고, 극장을 찾지 못한만큼 집에서도 열심히 영화들을 찾아 다녔다. 어쩌면 길이 막힌 만큼 더 많은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된 한 해였던 것 같다. 아래는 올해의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해외영화 10편이다. 순위는 없으며, 단편과 장편을 구분하지 않았고, 극장개봉 및 영화제나 기획전 등에서 첫선을 보인 신작들로 꼽았다.


1. <사마에게>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2019

 <사마에게>는 처음 보는 종류의 영화였다. 감독이자 영화의 화자인 와드 알-카팁은 의사인 남편과 함께 내전 중인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살아간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사르 알아사드 정부는 2011년 ‘아랍의 봄’ 시기 내내 이어지던 평화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로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한 차례 휴전을 거쳐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알레포는 시리아 뿐 아니라 주변 중동 국가들은 물론,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의 강대국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관여하고 있는 이 전쟁의 최대 격전지다. <라스트 맨 인 알레포>, <알레포 함락>,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처럼 내전을 직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뿐 아니라 <시멘트의 맛>처럼 알레포를 떠나 레바논 등 주변 국가로 향할 수밖에 없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꾸준히 알레포와 시리아 내전의 상황이 논픽션 영화로 제작되으며, <사마에게>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다만 이 영화는 앞선 영화들과는 형식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내전 중인 알레포에서 살아가며 그곳의 실상을 촬영해 알레포 밖으로 전달하는 것이 와드 알-카팁의 방식이며, 영화의 푸티지들은 그렇게 촬영된 영상들을 바탕으로 한다. 동시에 이 영화는 시리아 내전의 참상 속에서 태어난 감독의 딸 '사마'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마에게>는 내전의 참상을 담은 액티비즘 다큐멘터리면서, 딸 사마에게 보내는 편지의 꼴을 갖춘 에세이 영화이면서, 그들의 생활을 담아낸 브이로그의 경향을 띠는 영화들의 계보 속에도 집어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파괴와 죽음, 피와 파편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알레포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시리아 내전이 끝나고 군부독재가 사라지길 원하며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열망과 희망 또한 가득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와드 알-카팁과 그의 가족이 살아서 알레포를 빠져나왔기에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감독과 가족은 수년간 촬영한 영상들이 담긴 외장하드를 몰래 챙겨 런던으로 망명한다. 영화는 그 과정까지를 담아낸다. 다시 말해, <사마에게>의 완성은 이들의 생존을 바탕으로 한다. 누군가의 생존의 지표로써 존재하는 영화, 나는 이런 영화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2. <언컷 젬스> 조쉬 샤프디, 베니 샤프디 2019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다.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영화를 집에서 볼 때 한 두번 끊어서 보았다.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하워드의 행적을 쫓는 것은 정말 숨가쁜 일이다. 아예 극장 의자에 결박되어 영화 전체를 이어 보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좋은 관람법이 아닐까 싶다. 보석상 하워드는 도박사다. 그는 번 돈을 모두 스포츠 도박에 쏟아 붓는다. 심지어 그는 브로커인 드마니가 맡겨둔 시계들 마저 전당포에 맡기는 등의 방식을 통해 돈을 만들어 도박에 돈을 쏟아 붓는다. 그러한 그의 입에선 거짓말이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언컷 젬스> 속 여러 거짓말의 진위여부는 금세 판명된다. 하워드는 돈을 갚지 않을 것이고, 그가 100만 달러라 말한 원석의 감정가는 실제로 15만에서 22만 달러 정도였으며, KG가 경매에서 무조건 원석을 구매할 것이라는 말도 거짓이다. 하워드는 자신이 내지른 거짓말에서 도주한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픽션에서 탈주하길 염원한다. 탈주의 수단은 도박이다. 자신이 원석에 부여한 가상에서 탈주하려는 하워드의 시도는 결국 공허하고, 동질적인 시간을 반복한다. 이는 샤프디 형제의 전작 <해븐 노우즈 왓>의 할리나 <굿타임>의 코니가 끊임없이 이동하고 달림에도 결국 뉴욕이 아닌 다른 공간 밖에 도달하는 것에 실패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하워드의 도박은 항상 승리한다는 점이 할리나 코니와 하워드를 가른다. 할리는 결별에 실패하고 코니는 강도질과 동생을 구하는 것에 실패한다. 반면 하워드의 도박은 매번 적중한다. 그리고 하워드는 도박에서 승리했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도박으로 번 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을 갚겠다”는 하워드의 거짓말은 필을 경유해 하워드에게 돌아온다. 하워드는 결국 자신의 거짓말이 만들어낸 픽션 밖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되돌아온다. 여기서 그가 거짓말과 도박을 다시금 반복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거의 유일한 진실 때문이다. <언컷 젬스>는 하워드의 거짓말이 만들어낸 픽션의 소우주, 그리고 그가 거짓말할 수 있게 하는 그의 신체를 카메라가 총알처럼 관통하는 영화다. 탈주할 수 없는 <언컷 젬스>의 소우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라는 것을, 샤프디 형제는 하워드의 몸을 관통하는 카메라로 보여준다. 올해 영상자료원에서 샤프디 형제 기획전을 열어 주어 이들의 전작들까지 챙겨볼 수 있었던 한 해였던 만큼, <언컷 젬스>는 올해의 영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3.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미야케 쇼 2018

 극 중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나’는 서점에서 일한다. 그는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 시즈오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서점에서 함께 일하는 사치코와 연애를 시작한다. 사치코와 시즈오, 그리고 ‘나’는 함께 여름을 보낸다.이 영화는 홋카이도의 바다 마을 하코다테에서 살아가는 세 명의 청춘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영화에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이라 할 만한 일은 ‘나’와 ‘사치코’가 연애를 시작한다는 것 정도뿐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세 사람이 노는 모습을 담고 있다. 세 사람은 밤새 술을 마시고, 대화하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새벽 길거리를 걷고, 당구나 다트를 즐긴다. 미야케 쇼는 직접적인 대사나 행동으로 세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지 않는다.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표정들의 교차, 말하는 사람보단 듣는 사람을 보여주는 카메라,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의 조명이 세 캐릭터를 각기 표현하는 것처럼 등장하여 이들이 함께 있을 때 뒤섞이는 모습은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드라마성을 덜어내고 (혹은 더 나아가 폴리아모리의 가능성 또한 내포하며)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은 여름의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여기서 여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대신 ‘유지한다’고 쓴 것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홋카이도의 여름이 짧기 때문임과 동시에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듯 휘발되는 몸짓과 대화들을 가능한 붙잡아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존재는 각자의 존재를 지탱하고, 끝이 있는 여름과 새벽은 예정된 끝을 맞이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증거로써의 잔상을 남긴다. 영화의 후반부가 그렇다. 시즈오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치코의 말에, ‘나’는 사치코와 처음 번호를 주고받았을 때처럼 120까지 숫자를 세며 기다리지만 결국 숫자를 다 세지 못하고 뛰쳐나간다. 그리고 사치코의 표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 사람의 관계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될 것임을 지시한다. 이건 세 사람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 논리적으로 유추되는 결론이라기보단, 세 사람의 여름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관객의 직관에 가깝다.

4. <반쪽의 이야기> 엘리스 우 2020

 넷플릭스는 이제 극장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하는 로맨틱 코미디 혹은 하이틴 로맨스 영화들을 여럿 성공시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일 것이다. 엘리스 우의 두번째 영화 <반쪽의 이야기>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제작될 수 있었던 작품일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 엘리는 가난한 모범생이며, 다른 학생들의 과제를 대신 해주는 것으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학교 운동선수 폴이 러브레터를 대필해줄 것을 부탁한다. 따따블에 그것을 수락한 엘리는 학교의 퀸카 애스터를 향한 폴의 러브레터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엘리는 애스터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 <반쪽의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하이틴 로맨스의 전통을 따라 이 기묘한 삼각관계를 발전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클리셰를 단순히 따라가는 대신 그것들을 징검다리 삼아 도약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반쪽의 이야기>는 클리셰를 쫓아 가다가 그것이 엘리의 앞을 가로막는 바위인 것 마냥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쳐버리거나 배반한다. 그렇게 도약한 영화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처럼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껍데기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향연]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자녀이자 퀴어라는 엘리의 정체성, 운동부 백인 남성이자 대를 이어 소시지 가게를 해온 집의 아들이라는 폴의 정체성, 학교의 퀸카임과 동시에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애스터의 정체성, 그밖에 박사학위까지 있지만 언어장벽으로 인해 철도관리인으로 일하는 엘리의 아버지 등등 여러 캐릭터들의 정체성은 서로의 반쪽을 이룬다. 엘리와 폴이 애스터를 두고 대립한다고 두 사람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이 영화의 방향성이 아니다.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로맨스가 아닌 관계까지 포섭하는 이야기, 서로가 서로의 정체성을 구성해준다는 이야기, <반쪽의 이야기>는 클리셰의 늪에 빠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있던 시라노가 드디어 벽장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5.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엘리자 하트먼 2020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의 제목은 설문조사의 응답 항목이다. 뉴욕의 임신중절 클리닉을 찾은 어텀은 수술을 받기 전 구두로 진행되는 설문조사 과정을 거친다. 이는 17살 미성년자인 어텀의 임신이 폭력에 의한 것인지, 혹은 다른 사연에 의한 것인지 등을 조사한다. 다분히 사무적이지만 점점 격해지는 어텀의 감정에 따라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하는 상담가의 말은 어텀이 펜실베니아에서 듣지 못했던 종류의 말이다. 이는 그와 동행한 스카일라 또한 해내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그러한 종류의 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라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무적인 단어들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암컷 반려견을 ‘Bitch’라 부르는 가부장의 언어로 가득한 펜실베니아에서 접할 수 없었던 종류의 언어다. 때문에 뉴욕을 찍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오는 어텀의 여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 줄 최소한의 언어와 만나는 여정이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만약 이 여정이 어텀의 이야기만으로 끝나는 것이었다면 스카일라는 등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텀의 여정에 스카일라가 동행했듯, 어텀은 스카일라에게 손을 내민다.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와 의료적 조치를 위해 떠난 어텀의 여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펜실베니아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받으며 한층 불안이 가신 어텀의 표정에서 환하게 드러난다.

6. <허니랜드> 타마라 코테브스카, 루보미르 스테파노브 2019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봉업을 하는 50대 여성이 살아가는 마을에 한 유목민 가족이 도착한다. 유목민의 가부장은 자기도 양봉업을 해보겠다며 나서지만 그의 모든 선택은 실패한다. 양봉은 단순히 벌을 키우고 꿀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다. 소, 돼지, 닭, 양을 기르는 것 또한 어렵지만, 벌은 사람이 가축화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지역 생태계에서 벌을 분리해내 꿀을 얻는다는 발상은 불가능에 가깝다. 유목민 가족의 가부장은 불가능한 발상을 실현하려 한다. 그의 모든 시도는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의 선택 하나하나는 타자을 자신의 발 밑에 두려는 탐욕의 발현이다. 여기서 타자는 벌을 비롯한 자연 뿐 아니라 그의 자식들, 그가 정착한 마케도니아의 작은 마을 등 그의 주변에 놓인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환대를 붕괴시키는 탐욕, 원치 않는 돈을 벌기 위한 선택. <허니랜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선택들을 가장 우회적이면서도 직설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EIDF에서 TV방영 및 온라인으로만 상영되었는데, 언젠가 큰 스크린에서 한번 접하고 싶은 작품이디.

7. <레이와 시대의 반란> 하라 카즈오 2019

 영화는 2019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의 선거과정을 따라간다. 배우 출신 정치인 야마모토 타로가 창당한 레이와 신센구미는 2019년 선거를 통해 2명의 비례대표 당선인을 배출하면서 정식 정당 요건을 채우게 되었다. 영화는 선거에 출마한 레이와 신센구미의 10명의 후보자들을 쫓아간다. 그 중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도쿄대 인문사회학부 교수인 야스토미 아유미이다. 그는 트랜스여성이며, "아이들을 지키자"를 자신의 정치의 근본으로 내세우고 있다. 2016년 시장선거에도 출마했던 그는 당시 말을 타고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선거 유세를 치뤘던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영화에는 그 외에도 창가학회 기반의 정당인 공명당에 반대하는 창가학회 신도 노하라 요시마사, 루게릭 환자이며 기타리스트인 후나고 야스히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키무라 에이코, 노숙인이었던 파견 노동자이자 싱글맘인 와타나베 테루코, 그 밖에 부당하게 퇴출된 편의점 점주, 환경운동가, 원전 노동자, 전 은행원 등이 후보자로 나섰다. 이들의 의제와 성격은 하나로 묶이지 않는다. 야마모토 타로는 창당 3개월만에 이들을 모아 선거운동에 나섰고, 200만표가 넘는 득표를 기록해 후나고 야스히코와 키무라 에이코, 두 사람이 당선되었다. 하라 카즈오는 약 한 달 정도의 선거운동과 그 이후의 짤막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248분이라는 방대한 러닝타임을 겪으며 떠올린 영화는 다소 뜬금없게도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였다. <더 포스트>는 트럼프 당선 이후 기획부터 개봉까지 단 9개월만에 완료된 작품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첫 촬영일은 2019년 6월 말이며, 영화가 촬영된 마지막 날짜는 9월이다. 이 영화는 2019년 10월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스필버그는 미국 대선 직후, 하라 카즈오는 일본 참의원 선거 직후 영화를 내놓았다. 각각의 방식과 정치적 입장, 관점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누구나 읽어낼 수 있는 소수자 의제를 내세운 영화들을 만들었고, 정치적인 입장을 전면에 내세운 채 정치적인 독해를 불러일으키는 시기에 영화를 공개했다. 스필버그가 고전적 품위를 선보이는 정치영화를 만들었다면, 하라 카즈오는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 등 그가 그간 선보인 여러 영화들처럼 액티비즘적 성격이 두드러진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도쿄는 물론 오사카, 홋카이도, 교토, 오키나와 등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는 야스토미 아유미를 담아낸다. 그는 학생의 자유를 탄압하는 교토대 앞에서 수업을 하고,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대담을 나누는 자리에선 아이들이 자유롭게 악기를 연주하고, 말을 타고 시내 한 복판을 다니며 도시 한가운데 놓인 말의 존재에 대한 상반된 반응을 사람들에게 되돌려준다. 물론 그의 행동과 말 모두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모든 모습은 정치는 무엇을 향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인간조차 도시의 기호화에서 생략되고 있다”는 그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8. <콘라드 바이트> 마크 라파포트 2019

 영상자료원 온라인 기획전을 통해 소개된 마크 라파포트의 작업은 유튜브 등지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비디오 에세이의 형식을 띤다. 가령 <빈 스크린: 영화의 형이상학>은 영화의 스크린 또한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고, <지난해 다하우에서>는 알랭 레네의 조감독이었던 폴커 쉴렌도르프와 델핀 세리그의 인터뷰 및 그들이 촬영한/된 푸티지, 그리고 <지난해 마리망바드에서>의 이미지를 레네의 다른 영화인 <밤과 안개>, 더 나아가 큐브릭의 <영광의 길>까지 끌어온다. 즉, 그의 작업은 하나의 테마 하에 여러 영화 푸티지들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콘라드 바이트>는 기획전에서 소개된 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더욱 극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무성영화 시기 독일의 위대한 배우 콘라드 바이트의 전기영화다. 그리고 그의 전기는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푸티지와, 그를 화자로 삼은 내레이션을 통해 기록된다. 마치 콘라드 바이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풀어내는 인터뷰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나 <웃는 남자>와 같은 무성영화 시기 대표작부터 <카사블랑카>, <바그다드의 도둑>에 이르는 수십편의 영화 속 푸티지가 등장하고, 그의 캐릭터에서 영향을 받은 현대의 캐릭터(조커나 <알라딘>의 자파)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겯들여진다. 유대인과 결혼한 후 나치를 피해 독일을 떠난 것, 이후 할리우드 영화들에 출연한 것, <드라큐라>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불발된 것 등 그의 기록된 역사들은 그의 당시 모습이 담긴 영화 푸티지로 설명된다. 즉, 마크 라파포트의 <콘라드 바이트>는 영화 속 콘라드 바이트의 모습으로 영화 밖 콘라드 바이트의 삶을 극화해낸 영화다. 이런 방식의 영화배우의 전기영화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9. <퍼스트 카우> 켈리 라이카트 2019

 켈리 라이카트의 7번째 장편영화인 <퍼스트 카우>는 우정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를 인용하며 시작된다.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다르다. 쿠키는 소심하다. 식재료를 제대로 구해오지 못한다고 다른 이들에게 구박받으면서도 제대로 화를 내지 못하고, 돈을 벌 수 있지만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일에 쉽게 뛰어들지 못한다. 걷고 달리는 그의 모습도 어딘가 느릿하다. 반면 킹 루는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말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어렸을 적 무역선에 올라 유럽과 아프리카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기도 한다. 다소 판이한 성격의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났고, 우연히 재회한다. 이들이 재회했을 때 킹 루에겐 거처가 있다. 조악한 오두막이지만 두 사람이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다. 편안히 있으라고 말한 뒤 장작을 패러 간 킹 루를 보며 쿠키는 빗자루를 들어 바닥의 낙엽을 쓸어낸다. 두 사람은 다르고, 닮았다. 두 사람이 맞이할 엔딩은 영화 초반에 이미 제시된다. 오프닝 시퀀스의 시공간이 현대의 오리건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화물선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그것을 지켜볼 수 있는 강가를 떠도는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개는 땅을 판다. 한 소년이 개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그곳에 묻혀 있던 것을 본다. 땅을 파헤치자 두 사람의 해골이 드러난다. 영화는 이 순간 과거로 이동해 숲에서 버섯을 채집하는 쿠키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개와 소년이 발견한 해골이 쿠키와 킹 루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의 엔딩은 두 사람이 해골과 같은 자세로 누워 죽어가는 장면일 것이다. 라이카트는 두 사람이 결국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퍼스트 카우>는 그 죽음을 천천히 다가가는, 우정과 사랑으로 충만하고 생활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다. 죽음의 흔적에서 출발한 영화는 가장 충만한 형태의 삶을 경유해 죽음으로 되돌아간다. <퍼스트 카우>는 그 순환을 채우는 두 사람의 궤적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을 찍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영화는 아름다운 것을 포착한다. 우정은 아름답다. 때문에 영화는 그 우정을 포착한다.

10. <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기요시 2020

 구로사와 기요시가 하마구치 류스케, 노하라 타다시와 함께 각본을 쓴 TV영화이자, 그의 첫 시대극이다. 영화는 1940년의 일본 고베를 배경으로, 무역상인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가 만주를 여행하던 중 관동군의 생체실험을 목격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일을 진행하던 중, 그것을 알게 된 그의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가 동참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이 <스파이의 아내>인만큼 영화는 사토코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의 카메라는 만주로 가지 않는다. 대신 유사쿠가 복제해 온 기록영상이 관동군의 만행을 보여줄 뿐이다. 유사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던 사토코는 우연히 그 영상을 보고 동참을 결심한다. 여기서 두 가지 관계가 교차한다. 코스모폴리탄으로서 국적과 상관없이 관동군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려던 유사쿠의 정의와, 유사쿠와의 관계를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며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정의라 생각했던 사코토, 두 정의는 공교롭게도 영화에 등장한 두 편의 8mm 필름을 통해 교차된다. 하나는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기록영상이고, 하나는 유사쿠와 사코토가 함께 찍은 홈메이드 영화이다. 기요시의 말대로라면 예산부족으로 인해 세트장을 운용하면서 창 밖 풍경을 날리기 위해 조명을 쎄게 친 것이겠지만, 흔히 영화 속에서 스크린의 비유로 사용되는 창문이 <스파이의 아내>에서는 빛과 같은 흰 색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유사쿠와 사토코의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은 그 밖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거실에 설치된 스크린에 영사되는 8mm 필름의 이미지가 외부를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두 가지 외부 중 어느 것이 낭만적 거짓이고 어느 것이 참혹한 진실인지 이분법적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두 영상은 만주의 풍경을 담은 동일한 인서트 숏으로 시작된다. 태평양전쟁 직전의 일본이라는 불안정한 공기, 필름을 통해 전해진 관동군의 만행, 만주의 길거리를 담은 인서트 숏 다음엔 사토코가 주연을 맡은 픽션이 상영되어도, 만주의 참상을 담은 기록영상이 상영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때문에 유사쿠가 국제사회를 향해 떠나가고 홀로 남게 된 사토코는 기록영상 대신 자신이 출연한 픽션이 상영된 스크린 너머를 보려는 듯이 돌진한다. 결국 <스파이의 아내>는 스크린에 영사되는 무언가를 대면하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영화다.



+그밖에 기억에 남는 영화들

<월드 오브 투모로우 에피소드 3: 엡센트 데스티네이션스 오브 데이비드 프라임> 돈 헤르츠펠트 2020

<윌콕스> 드니 코테 2019

<마틴 에덴> 피에트로 마르첼로 2019

<천 명 중의 단 한 사람> 클라리사 나바스 2020

<미끼> 마크 젠킨 2019

<여기가 천국> 일레이 슐레이만 2019

<소년시절의 너> 증국상 2019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며> 크리스 브린가스 2019

<운디네> 크리스티안 팻졸트 2020

<퍼스트 러브> 미이케 다카시 2019

<퀸 앤 슬림> 멜리나 맷소카츠 2019

<다크 워터스> 토드 헤인즈 2019

<리차드 쥬얼> 클린트 이스트우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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