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5. 2021

2021년의 한국영화 10편

 올해의 한국영화는 작년보다 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장시간 지속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텐트폴 영화 대부분이 개봉하지 못했다. <모가디슈>, <싱크홀>, <방법: 재차의> 정도가 기존의 텐트폴 영화라 부를 수 있는 개봉작이었으며, <인질>, <자산어보> 같은 조금 작은 규모의 작품들이 뒤를 따랐다. 물론 <승리호>나 <서복>, <낙원의 밤>처럼 OTT 단독공개 혹은 극장 동시공개를 진행한 작품들도 있긴 했지만, 하지만 소위 '상업영화'라 묶을 수 있는 한국영화 개봉작이 한없이 줄어든 한 해였다. 심지어 이는 작년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강철비 2: 정상회담>이 연달아 개봉했던 작년 여름 시즌보다 아쉬운 상황이다. 올해 개봉 예정이었던 <킹메이커>, <비상선언>, <영웅>, <해적 2: 도깨비 깃발> 등의 작품이 내년으로 연기된 것도 타격이 크다. 그렇다고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가 극장에 많이 걸린 것도 아니다. 대형 영화가 사라진 자리를 저예산, 독립영화가 가져가며 (물론 흥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상상하기 어려운 스크린 수를 갖고 개봉했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독립영화에게 충분한 스크린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다시금 개봉을 재개하며 벌어진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제들은 여전히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관객을 찾았다. 작년엔 일반관객을 받지 못한 채 제한적인 형태를 택했던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을 택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등은 작년과 같이 온라인 상영을 병행했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 등은 온라인 상영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포스트핀에서 서비스하는 온피프엔(ONFIFN)과 여성영화 전문 OTT 플랫폼 퍼플레이를 통해 춘천국제SF영화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청주국제단편영화제, 카라동물영화제, 한국퀴어영화제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백신접종이 시작된 이후 해외 게스트를 초청하기도 했던 부산국제영화제, 대부분의 행사를 기존대로 진행한 서울독립영화제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쉽지 않은 시기에 고군분투하는 영화제들을 통해 많은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처음 '영화평론가' 딱지를 달게 된 첫 해이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것에 미묘한 변화들이 생겨난 것 같다. 더군다나 독립영화비평상에 당선된 것이다보니, 독립영화를 챙겨봐야 한다는 모종의 의무감마저 생겨난 기분이다. 물론 (일로 봐야했던 영화들을 제외하면) 관람한 작품의 숫자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올해는 인디포럼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참여하기도 했고, 처음으로 극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무대인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팟캐스트도 참여했다. 물론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에 글을 쓰고, 상영회도 진행했다. 전시 도록에 글을 써본 것도 처음이다. 올해 진행한 활동들은 나중에 정리해볼 생각이다. 어쨌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극장에서, 집에서, 또 다른 곳에서 영화들을 봤다. 올해 본 한국영화 중 좋았던 10편을 꼽아보았다. 순위는 없으며, 단편과 장편을 구분하지 않았고, 극장개봉 및 영화제나 기획전 등에서 첫선을 보인 신작들로 꼽았다. 가나다순으로 나열했다.

1.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김희주, 정주희 2020

 올해 관람한 한국 다큐멘터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영화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 권나영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동안 길고양이를 다룬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종종 등장하고, 생각보다 많은 수가 개봉했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는 길고양이가 아닌 길고양이와 함께 하는 인물을 중심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다소 다른 위치를 점유한다. 권나영씨는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으며, 신장질환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투석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포함하는 기간 동안 촬영된 이 영화는 권나영씨가 지팡이를 짚고 동물병원을 찾아 구조한 고양이를 만나거나, 휠체어를 타고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권나영과 길고양이는 도시에 부합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다. 아니, 휠체어를 타고 느릿하게 이동하는 사람과 비인간 존재인 길고양이에 도시는 부합하지 않는다. 도시라는 공간이 표방하고 있는 정상성 사이를 유유히 오가며 공존하는 권나영과 길고양이의 모습은, 도시에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생각을 감각적으로 재고하게끔 한다.

2. <너에게 가는 길> 변규리 2020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일종의 불법적, 탈법적 행위가 되어갔다. 사람들이 모이면 감염된다. 펜데믹 시대가 제공한 중요한 아이디어다. 감염되는 것은 질병 뿐만이 아니다. 눈물과 웃음, 긍정과 슬픔의 정동도 감염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너에게 가는 길>을 보는 경험은 그 사실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는 물론 전주국제영화제가 아닌 다른 영화제, 개봉 이후 진행된 여러 행사와 상영에서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열 번째 작품이다. <플레이 온>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던 변규리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다. 연분홍치마는 그 동안 FTM 트랜스젠더, 게이 커뮤니티, 레즈비언 정치인, 용산참사와 그 유가족, 쌍용차 복직투쟁 등을 다뤄왔다. 이번 영화는 성소수자 보모모임에서 활동 중인 두 어머니를 다룬다. 각각 비비안과 나비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두 사람은 게이와 젠더퀴어 자녀를 두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자녀가 커밍아웃 했던 순간의 기억부터 함께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모습, 자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성 고정관념과 가족이라는 사회적 구성 자체를 재고하는 모습,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연달아 등장한다. 그 과정이 담긴 기록을 보면서 계속 울었다. <너에게 가는 길>은 다큐멘터리 작업에 있어 새로운 형식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지금 필요하기에 존재하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의 초반부 어딘가를 가는 두 젊은 퀴어의 모습과 출근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이어져 등장한다. 퀴어들의 용기는 그들의 부모님을 변화시켰고, 부모님의 용기는 같은 세대의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영화 후반부 언급되는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 사건(과 더불어 올해 초 있었던 죽음들을 떠올렸을 때)은 혐오와 차별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세상을 퀴어로서, 퀴어의 부모라는 다른 방식의 퀴어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너에게 가는 길>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눈물을 흘린다.

3. <다신, 태어나, 다시> 전규리 2019

 <다신, 태어나, 다시>는 백말띠의 해인 1990년 한국에서 벌어진 선택적 여아 낙태의 생존자인 감독이 역시 백말띠의 해였던 “1930년에 태어났다 일찍 죽은, 1990년에 태어나지 못한, 2050년에 드디어 다시 태어난 여성을 상상”하는 작업이다. 60년 마다 돌아오는 백말띠의 해는, 국가적(동아시아로 범주를 넓힌다면 범-동아시아적)인 미신으로써 여성들을 태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혹은, ‘백말띠’라는 낙인 아닌 낙인을 통해 그렇게 태어난 여성들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로 살아오게 하였다. 여성혐오적 미신과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국가차원의 규제(낙태죄)가 교차되는 상황 속에서, 태어나지도 못한, 태어나도 태어난 것이 아닌 여성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다신, 태어나, 다시>는 그것이 교차되는 상황 속에서 이미 태어나버린 자신의 상황을 영어의 현재완료 시제에 빗댄다. “‘태어나지 않음’, (un)borness는 물리적으로 태어났지만, 사회가 원하는 대로는 태어나지 못한 상태에 대한 시적 표현”이라는 연출의도의 문장은 생물학적으로 태어나지 못하는 것과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중의적인 표현속에서, 미신과 제도 사이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공부하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감독 자신의 모습과 함께 낙태죄 폐지 운동을 벌이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다신, 태어나, 다시>가 제작된 2019년 한국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자기낙태죄'와 형법 제270조 제1항 '의사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영화는 헌법불합치 결정에 환호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1930년, 1990년, 2050년은 각기 다른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닌 계속 진행되는 현재로서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수렴된다. 1990년에 태어난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백말띠에 태어난, 태어나지 못한, 태어날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지난 12월 24일, 낙태죄로 인해 처벌받은 여성들이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되었다. <다신, 태어나, 다시>는 그렇게 한걸음씩 2050년의 백말띠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세상을 상상한다.

4. <메이•제주•데이> 강희진 2021

 영화는 제주 4.3 사건 생존자들의 증언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다. 이제는 노인이 된 생존자들은 당시엔 어린 아이였다. 대한민국 현대사 속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 중에서 제주 4.3 사건은 기록이 불충분한 사건에 가깝다. 때문에 생존자들의 증언은 그들의 말을 통해서만, 말을 통해 표현된 기억을 통해서만 증언될 수 있다. 강희진은 생존자들이 당시를 회상하는 그림을 그리게끔 한다. 각기 다른 그림체의 그림들은 감독의 작업을 통해 움직인다. 애니메이션이 된 생존자들의 그림 위로 그들의 증언이 담긴 인터뷰가 이어진다.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생존자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 제주 4.3사건을 기리는 위령제 등을 연달아 보여준다.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사건 당시로 되돌아가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야에 담기는 거의 모든 것을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시기는 자신의 증언을 그림으로 그리는 생존자를,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 진행하는 위령제를 기록한다. 카메라가 향하지 못하는 과거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재연이 아니다. 사진적 이미지로 존재할 수 없는 기억과 증언을 현재를 담은 영상과 함께 놓기 위해서는, 무빙-이미지가 아닌 생존자들의 그림을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사진적 이미지로서의 영화가 운동의 지속을 기록하는 것이라면, 애니메이션은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것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메이•제주•데이>는 움직임을 부여함으로써 생존자들의 증언을 현재와 만나게끔 한다.

5. <보이스> 김곡, 김선 2021

 <보이스>는 김곡, 김선 감독이 상업영화의 영역에서 만든 작품 중 가장 그들의 예전 작업과 결이 비슷한 영화다. 변요한, 김무열, 김희원 등의 스타 배우와 보이스피싱이라는 소재, 종종 등장하는 처절한 액션 등은 시즌을 노리고 개봉하는 익숙한 한국 상업영화의 맥락을 떠올리게 하지만, <보이스>는 그 기대를 벗어나고야 만다. <보이스>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곽 프로를 비롯한 기획실이 취준생, 건설노동자, 아파트 분양 신청자 등 다양한 타겟에 맞춰 대본을 쓰면, 콜센터의 직원들이 대본에 맞춰 전화를 돌린다. 이들의 전화번호는 ‘변작기’를 통해 추적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형된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절박함과 공포감을 자극해 대본에 공감시킨 뒤 돈을 입금하도록 유도한다. 입금된 돈은 그 즉시 인출되고, 환전소에서 돈세탁을 거친다. 여러 단계를 거쳐 현금으로 인출된 돈은 조직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서준은 이 과정을 역으로 쫓는다. 한국에서 돈세탁과 변작기를 담당하는 박 실장를 통해 선양으로 향해야 함을 알아내고, 선양에 도착해서는 곽 프로의 눈에 띄어 기획실에 들어가려 한다. 그의 역추적 과정은 빠르게,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109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은 서준을 따라 보이스피싱 조직의 작동과정을 쫓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흘러간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카메라, 빠르게 교차되는 피해자와 사기꾼들의 이미지는 리듬감을 지닌 숏들의 몽타주 대신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영화 중반에 경찰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브리핑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작동방식이 그려진 PPT를 스크린에 띄우고 설명을 이어가지만, 피해자들은 그 수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조직의 작동방식이 복잡할뿐더러, 피해자들의 절박함은 그것을 이해할 시간적, 심적 여유를 초과해버린다. 다시 말해, <보이스>는 보이스피싱이 작동하는 방식을, 그것을 뒤쫓는 주인공의 심정으로 관객 앞에 일종의 충격으로 제시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을 세세하게 묘사하지만, 영화는 관객이 마치 경찰의 PPT를 보는 피해자들처럼 그것을 하나하나 이해하기 바라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논리적으로 공부하여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대신, 하나의 충격으로 만들어 제시한다. 그 때문에라도 <보이스>는 경직된 기획들이 판을 치는 한국 상업영화 속에서 새로운 박력을 선보인다.

6. <인트로덕션> 홍상수 2020

 <인트로덕션>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작 <도망친 여자>의 3부 구성이 순서를 바꿔도 큰 무리가 없었던 것과 다르게, <인트로덕션>의 3부 구성은 비교적 명확한 시간선을 유지한다. 그것을 채우는 이야기는 소개, 입문, 서문, 도입으로 채워진다. 가령 1부는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다시 삶 속으로 ‘도입’하려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2부는 엄마가 딸을 독일에 사는 친구에게 소개해주는 이야기다. 3부 또한 엄마가 아들을 연극배우에게 소개하는 자리다. 하지만 이러한 도입과 소개는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 대신 오랜만에 만난 간호사와 포옹한다. 딸은 자신에게 거처를 내어준 엄마의 친구 대신 갑자기 독일로 찾아온 남자친구(1, 3부의 아들)과 포옹한다. 아들은 엄마가 소개해준 연극배우와 화합하는 대신 바다로 뛰어들고, 겨울바다의 추위에 떠는 그를 그의 친구가 끌어안는다. 이들의 포옹은 새로운 대상 대신 사랑, 기억, 고향, 우정 등 과거의 성격을 지닌 것과 이루어진다. 포옹으로 이어지지 못한 ‘인트로덕션’들은 영화의 다음 부분에서 그것이 이어졌다는 암시를 통해 확인된다. 영화에서 가시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인트로덕션’들은 과거의 것으로 다뤄질 때만 성사된다. 영화의 프레임 속에서 벌어지는 ‘인트로덕션’은 도리어 단절과 파열을 초래한다. 한의원에서 연극배우와 다른 환자를 가리고 있던 진료실의 커튼, 엄마와 딸이 바라보던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뒤늦게 저화질의 이미지로 등장한 쇼트, 아들이 배우의 꿈을 접은 이유를 듣고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는 연극배우를 잡은 자꾸만 포커스 아웃되는 카메라.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여백들이 존재한다. 아들과 간호사가 포옹하는 장면에서 노출을 높게 잡아 새하얗게 보이는 배경, 노출이 높아 그저 새하얗게 보일뿐인 창밖 풍경들. 그리고 아들이 뛰어드는 바다의 새하얀 파도에 이르러 영화 내내 존재하던 여백들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인트로덕션’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일렁이는 여백들로 아들은 들어간다. 매서운 겨울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는 두 남성의 모습. 이 모습이 어떤 방식의 새로운 것이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서로를 지탱하는 것으로서의 포옹이라는 점에서, 1부와 2부에서의 포옹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스크린에 등장했다는 것만은 충분히 감각할 수 있다.

7. <성덕> 오세연 2021

 '정준영 바라기'로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유명한 정준영의 '성덕'이었던 감독이, 2019년 3월 버닝썬 게이트 이후 생겨난 '덕질'에 관한 감정들을 풀어 놓는 작품이다. 감독은 비슷한 사정을 지닌 주변 친구들을 찾아간다. 같은 정준영의 팬부터, 승리, 온유, 용준형, 최종훈, 박유천, 강인 등의 아이돌 스타의 팬, 가을방학의 전 멤버 정바비의 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팬들이 등장한다. 감독은 성범죄, 음주운전, 폭행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을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지지하는 팬들의 존재를 발견한다. 그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진 않지만, 자신과 주변 '덕후'들의 의견을 모아 그 이유를 탐색한다. 여전히 그 사람을 믿어서? 그 사람은 우상적 존재라서? 그런 짓을 할 수 없는 순수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연쇄적이로 따라 붙는 질문 속에서 감독은 답을 찾지 못한다. '성덕'이었던 감독은 이제 그의 팬이었다는 것을 말하기도 애매한 위치가 되었다. 하지만 분노로 시작한 <성덕>은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분노는 남아있지만, 감독은 지난 7년 간의 덕질이 분노로 귀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건 이후 자신이 느끼는 것의 정체를 찾기 위한 감독의 여정은 굿즈 장례식을 치르고, 2016년 정준영의 성범죄를 처음 보도했던 기자를 찾아가 당시 팬들의 악플에 관해 사과하고, 헌정사상 첫 탄핵된 대통령인 박근혜의 지지자들을 만나는 등으로 이어진다. 그 여정을 쫓으며 알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사실 하나는 "덕질은 비합리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그 비합리적인 행위를 위해 팬들은 돈과 마음과 시간을 쏟아 붓는다. 덕질의 결과는 기억이다. 정준영의 사인이 담긴 종이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감독은 그것이 기억을 담고 있기에 쉽게 버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돈과 마음과 시간을 쏟아 부었던 때. 덕질이 남긴 것은 그 시간에 대한 기억과 함께 덕질했던 사람들이다. 덕질의 대상이 범죄자가 되었다고 해서, 덕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말미에 등장한, 성범죄 폭로 이후 자살해버린 배우 조민기의 팬이었던 감독의 엄마는 덕질의 대상이 연예인이었을 뿐이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마음을 쓰며 성장한 것은 똑같지 않느냐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수차례 기차를 탄다. 그는 정준영 만나러 가기 위해 처음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고 한다. 수없이 반복할 행위를 처음 하도록 만드는 대상, 감독이 '성덕'이었을지라도 자신의 지역을 떠나보지 않은 채 덕질을 했다면 거침없이 전국을 오가는 지금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성덕>은 그러한 처음을 가능케 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수많은 '덕후'들, 무엇인가를 열렬히 좋아해본 적 있는 사람들, 지금은 <성덕>을 덕질하는 관객들까지, <성덕>은 이들이 각자 품어오던 마음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크나큰 계기가 되어준다.

8. <종착역> 권민표, 서한솔 2020

 <종착역>은 전학생, 여름, 방학숙제, 기차여행 등 익숙한 청소년 성장영화의 키워드들을 듬뿍 함유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전형적인 성장영화의 길을 가지 않는다. 얼떨결에 1박 2일의 여정이 되어버린 네 친구의 여름방학 여행을 담은 이 영화는 방학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을 택한 네 친구의 발걸음에 조용히 동참할 뿐이다. 영화 종종 여행 중 네 친구가 촬영한 사진들이 등장한다.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나간 상황에서 이들이 자신의 여행을 증명할 방법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여행 중 만난 존재들을 찍는 것뿐이다. 현대화된 신식 신창역 역사에 실망하고, 주변에 논 뿐인 (구)신창역 역사에 허무함을 느끼던 이들에게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숙제의 목표는 어느새 사라진다. 지하철로 되돌아갈 택시비조차 없는 중학생들에겐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은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는 시골이지만, “갑자기 땅이 뚝 끊긴” 세상의 끝이란 없음을 새삼 깨닫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들은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의 끝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별 다른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시골에서 맞이한 밤의 어두움은 이들의 이동을 막을 뿐이지, 영화 속에서 어떤 공포의 장치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세상의 끝이라 여기던 시골마을은 이들을 맞이해주려는 듯 텅 빈 마을회관을 제공해준다. 이 과정에서 성장이라 할만한 것은 없다. 아이들은 여기서 어떤 인격적, 교양적 성장을 얻지 않는다. 그럴 만한 사건도, 갈등도, 고난도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다. <종착역>은 성장보단 우정이 쌓여가는 과정, 함께 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맞이하는 시간, 새로운 공간을 함께 찾아가는 것의 희열을 담아낸다. 물론 그것도 일종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 초반 서로의 눈에 콘택트렌즈를 끼워주며 장난치던 모습과 영화 후반부에서의 모습은 전혀 다르지 않다. 우정을 찍는 카메라, 각자 스마트폰 대신 쥐고 있는 필름 카메라 속 사진들은 이들의 방학이 끝난 뒤에야 현상될 것이다. 우정은 함께한 시간을 뒤늦게 기억하는 것에서 지속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9. <Trans-Continental-Railway> 정재훈 2021

 밴드 유기농맥주가 작년 발표한 동명 앨범의 뮤직비디오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극장에서의 상영만을 목표로 제작'되었다. 영화제 홈페이지에 공개된 시놉시스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1897년 최초로 운행했다. 영화가 아직 기계 장치라면 여전히 관객의 몸은 영화를 통해 멀리까지 갈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은 영화관의 공간을 보고 운송수단 차량의 내부구조를 상기시킨다며, “오늘날에 영화가 상영 장소 없이 존재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장소들이 과연 영화 없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폴 비릴리오의 주장을 상기시킨다. 비릴리오는 시각기계인 카메라와 운송수단을 동일시하는데, 정재훈 감독의 이번 영화는 그러한 동일시에 바탕을 둔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관객을 운송하는 공간이 대륙횡단열차가 지나치는 그곳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물가, 황무지, 풀숲 등이 한국인지 시베리아인지는 (영화만 보고 나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관객의 시선은 영화의 카메라라 머무른 시간 만큼 그 장소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확한 사실이다. 재밌는 것은 영화의 제목과 다르게 구체적인 열차의 이미지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장에서의 상영'만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만이 영화관=운동수단의 등식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관객은 영화가 보여주는 장소에 대해, 그것이 카메라에 담겨 있기에 그곳이 실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열차가 그러하듯 영화를 통해 그 장소에 대한 공간적 경험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정도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영화는 구체성이 사라진 이미지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음악의 역동과 관계없이 풍경을 보여줄 뿐인 것과 같았던 영화는, 어느새 달리는 열차에서 바깥을 촬영한 듯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어떤 형상들을 보여주다가, 화소가 다 드러날 정도로 확대된 디지털 스크린의 평면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정재훈 감독의 영화관=운송수단은 열차가 갈 수 있는 풍경-장소들을 지나 영화가 갈 수 있는 스크린-풍경으로 향한다. 이 순간에서 드러나는,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디지털 스크린에서는 상영되지 않는다는 역설은 '영화의 죽음'이라는 케케묵은 담론 속에서 모종의 생존전략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다가온다. 정재훈의 전작들은 소멸해가는, 혹은 소멸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저화질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복원하려 하였다. 전작의 대상들이 노동, 자연, 풍경 등의 것이었다면, 이번 작품의 대상은 영화관을 염두에 둔 것만 같다.

10. <1021> 노영미

 노영미의 <1021>은 온갖 공적인, 혹은 공개된 기록들의 집합으로서 존재한다. <I am not yours, I am you>부터 <파슬리 소녀>, <하녀들>, <KIM>, <ZOO>에 이르는 노영미 감독의 작업들은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이미지들을 잔뜩 끌어온다. 이 이미지들은 이탈리아의 민담이나 그림형제의 동화로 구성되기도 하고, 실제와 조작 사이에서 명멸하는 것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1021>은 노영미 감독이 지난 몇 년간 반복해온 작업의 집대성과도 같다. ‘하이마’와 ‘옥토버’라는 이름을 가진 두 인물의 일대기인 이 이야기는 “'10월 21일' 키워드 검색을 통해 발견된 백 년간의 신문 기사, Wikipedia, SNS 그리고 기타 인터넷 자료”로 만들어졌다. 가령 ‘하이마’는 2016년 일본에 상륙한 태풍의 이름이다. 영화는 1920년 10월 21일의 청산리전투부터 1996년의 성수대교 참사, 2012년의 정의당 창당과 같은 연관 없어 보이는 사건들, 알프레드 노벨, 어슐러 K. 르 귄, 리브 울만, 캐리 피셔, 와타나베 켄, 킴 카다시안 등 10월 21일 출생자들과 잭 케루악, 프랑소와 트뤼포, 엘리엇 스미스 등 10월 21일의 사망자, 10월 21일자 오늘의 운세까지, ‘10월 21일’을 키워드로 한 많은 자료들을 재료로 끌어온다. 이 모든 사건, 인명, 운세, 텍스트와 이미지는 <1021>이라는 픽션으로 재가공된다. 자료들은 무차별적으로 기록되고, 인터넷은 그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서로 관련 없는, 일종의 점묘화로 열화된 이미지들은 두 주인공의 일대기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성좌로서 <1021>에 등장한다. 수많은 기록에 접근 가능한 세계라면, 우리는 그것들과 항상 관계 맺고 살 수밖에 없다. 엔드크레딧에 자신의 역할을 “Story Weaver(이야기 방직공)”로 표기한 노영미 감독은, 뒤엉켜 있는 사건들을 정리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직조해낸다. 흩어져 있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자기 자신을 지시하는 ‘기록’임과 동시에, <1021>이라는 재구성을 통해 기록을 열람하는 이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밖에 기억에 남는 영화들

<당신얼굴 앞에서> 홍상수 2021

<자산어보> 이준익 2021

<긴 복도> 정여름 2021

<들랑날랑 혼삿길> 홍민키 2021

<그대 너머에> 박홍민 2020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2021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2020

<애프터 미투>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2021

<우리집> 이오은 2021

<흐르다> 김현정 2021

<신시> 장은주 2020

<농몽> 권순현 2020

<유산> 남순아 2021

<206: 사라지지 않는> 허철녕

<반도투어> 김보용 2020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의 해외영화 10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