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김시은)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그는 결혼과 남편의 죽음으로 5년 동안 떠나 있던 공장에 복직한다. 같은 공장 사내식당에서 일하는 영남(염혜란)의 남편은 교통사고로 2년째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희주의 남편과 영남의 남편은 같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우연히 영남을 마주친 희주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러는 와중에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이 희주의 주변을 떠돈다.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염혜란 배우에게 배우상을 안긴 <빛과 철>은 두 남편이 휘말린 교통사고를 둘러싸고 당시의 진실 파헤치려는 희주와 그것을 더는 언급하지 않으려는 영남이 부딪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은영을 비롯해 회사 동료, 희주의 친오빠, 사건 담당 경찰 등이 교통사고에 대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며 두 주인공의 주변을 맴돈다.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어두운 시골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조수석의 시점을 보여준다. 어두운 도로 위에 교통사고를 당해 널브러진 두 대의 차가 있다. 교통사고 직후의 순간을 보여준 영화는 바로 공장으로 돌아오는 희주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이후부터 영화는 교통사고 시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갑자기 2년 뒤의 시간으로 넘어가 관객에게도 희주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당시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로 돌입한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가서도 당시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교통사고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 가령 “무사고 1000일”이라는 현수막을 자랑스레 달고 있는 공장에서 3년 전에 벌어진 사고와 그로 인해 드러난 원청-하청 관계에 끼어버린 노동자, 희주와 희주의 남편 사이의 관계 등이 이어질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미 벌어진 교통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들은 희주가 찾고 싶은, 영남이 덮어버리고 싶은 진실과 연관이 없다. 아니, 아주 미약하고 느슨한 연관 속에서 사고를 당해 죽거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 이들이나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을 끝없는 죄책감의 늪에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다. <빛과 철>이 다루려는 것은 교통사고의 진실보단 그것을 둘러싼 이들이 겪는 감정적 상태에 집중한다. 하지만 영화의 표면은 진실을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동분서주하는 희주와 영남의 이야기다. 즉, 교통사고가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누구의 책임이냐는 서사가 영화를 추동하지만, 영화 내적으로는 그것이 크게 필요치 않은 내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의 두 결은 서로 충돌하고, 영화를 보는 나는 둘 중 어느 것을 따라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빛과 철>의 많은 부분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희주, 영남, 은영과 두 남편의 과거사는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소화하지 못한다. <빛과 철>은 진실을 추적해 나아가는 추리극도, 원청-하청 관계 사이에 끼인 노동자의 이야기도, 돌봄노동에 지쳐버린 사람의 이야기도, 끝없는 죄책감의 늪에 계속해서 빠져들어가는 사람들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도 되지 못한다. 때문에 영화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도 같은 결말부의 사건 이후엔, 영화 내내 어질러진 사건들을 갑작스레 마무리할 제의적 성격의 마지막 숏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시놉시스대로 빛과 빛, 철과 철이 부딪힘으로써 시작된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선, 빛과 철로 이루어진 자동차를 멈출 제의적 존재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간단한 해법 앞에서 어떤 허탈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