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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1. 2021

<프라미싱 영 우먼> 에머랄드 펜넬 2020

  캐시(캐리 멀리건)는 7년 전 의대를 중퇴하고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니나가 그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캐시는 주말마다 클럽을 찾아 여성들을 성적인 먹잇감으로 여기는 남자들을 사냥한다. 그러던 중 캐시는 우연히 자신이 일하는 카페를 찾은 의대 동창 라이언(보 번햄)을 만난다. 그는 라이언을 통해 7년 전 사건의 당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캐시는 오랜 시간 계획해온 친구의 복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의대 동창인 매디슨(알리슨 브리), 의대 학과장과 당시 사건 담당 변호사, 가해자인 알(크리스 로웰) 찾아간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킬링 이브>의 각본과 제작을 맡았으며 <더 크라운> 등에서 배우로도 활약한 에머랄드 펜넬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미투 운동 이후에도 만연한 여성에 대한 성적 물화와 2차 가해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캐시는 독특한 캐릭터다. 사건 이후 친구를 보살피기 위해 함께 대학을 중퇴한 그는 친구의 죽음 이후 그를 대신해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남자 사냥’은 그것의 예행연습인 것처럼 등장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메시지는 전달된다. 캐시의 사냥 대상이 된 남성들은 자신이 하룻밤을 함께 보내려던 여성의 직업도, 사는 곳도, 취미도, 심지어 이름도 모른다. 그러한 남성들의 입장에서 상대 여성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 단순히 성적인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칭하지만,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캐시에게 접근하는 순간부터 그들이 착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는 캐시의 ‘남자 사냥’을 통해 메시지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라이언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     

 캐시의 복수 대상이 되는 네 사람은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충분히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른 기억으로 덮어둔 채 살아간다. 이들의 변명은 이러하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이미 7년 전의 이야기니까, 매주 그러한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가해자는 창창한 미래를 가질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은 사건의 피해자인 니나 또한 어렸으며, 창창한 미래를 가진 청년이었음을, 그리고 니나 및 캐시가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7년의 시간을 빼앗겼음을 망각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캐시의 말 몇 마디에 앞서 언급했던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참회 비슷한 것을 수행하는 이는 니나의 사건과 유사한 수많은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가 (아마도 자신의 신변과 관련한 이유 때문에) 캐시의 손을 부여잡고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다. 영화는 그렇게 직접적인 가해자 혹은 2차 가해자인 자신의 과거를 여러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변명만을 늘어놓는 이들을 관객과 대면시킨다. 영화는 그들의 한심함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되돌아올 그들의 범죄를 드러낸다. 미투 운동이 증명했든, 그들의 범죄는 비록 오랜 시차를 두고 있더라도 되돌아온다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가 보여준다.     

 다만 영화가 복수를 보여주는 과정이 다소 손쉽게, 그리고 낮은 밀도로 진행된다는 점이 아쉽다. 캐시가 벌이는 복수의 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짧은 대화 장면으로 마무리되며, 그 안에서 드러나는 맥락은 풍부할지언정 거칠게 끝맺음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에 뜬금없이 자막을 집어넣는 방식 대신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세분화하여 각 이야기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TV시리즈에 조금 더 적합한 구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장면은 여성 복수극 서사의 전통적인 결함, 즉 여성의 복수를 보여주기 위해 피해를 입는 여성을 지나치게 길게 보여주는 것을 피해 가지 못한다. 롱테이크가 많지 않은 영화 내에서 몇 안 되는 롱테이크가 그러한 장면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낡은 방식으로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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