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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30. 2021

<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기요시 2020

 태평양 전쟁 직전인 1940년,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남편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와 함께 살고 있다. 유사쿠는 세상이 더 어지러워지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며 조카 후미오(반도 료타)와 만주를 다녀온다. 사토코의 고향 친구이자 헌병인 타이지(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전쟁을 앞두고 국민복 착용을 거부한 채 서양의 복식과 생활방식을 따르는 사토코 부부를 미심쩍어한다. 만주에서 돌아온 유사쿠는 무엇인가를 숨긴다. 함께 돌아온 후미오는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며 유사쿠의 회사를 그만둔다. 유사쿠가 무엇인가를 숨긴다고 의심하는 사토코는, 그가 만주에서 목격한 관동군의 만행을 알게 된다. <스파이의 아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첫 시대극이지만, <해안가로의 여행>(2015)이나 <산책하는 침략자>(2017) 등의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요시의 특징들이 드러난다. 또한 각본에 참여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전작 <아사코>(2018)에서와 같은 관계에서의 불안정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스파이의 아내>의 전반부는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우경화되어가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은 유사쿠와 거래하던 외국인 사업가가 헌병에게 끌려가는 장면이다. 이 당시 일본에선 국민복 착용령이 시행되고, 서양 술을 마시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된다. 유사쿠의 무역회사와 집을 찾은 타이지는 국민복 대신 양복을 입고, 서양 위스키를 마시며, 사업을 명목으로 외국인들과 교류가 잦은 유사쿠와 사토코 부부에게 “앞으로 비난이 쏟아질 것”이라며 경고성의 말을 건넨다. 유사쿠가 만주로 떠나는 장면에서, 모든 행인이 자리에 멈춰 선 채 불심검문 임무를 시작하려는 군인의 모습을 지켜본다. 행인들과 함께 멈춰있던 카메라는 군인들의 경례가 끝나자마자 유사쿠 일행이 있는 곳으로 트래킹하고, 마치 나무 뒤에 숨어 이들과 군인을 한 번에 지켜보는 것과 같은 구도에서 멈추어 선다. 아직 무엇도 벌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카메라는 불심검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 혹은 군인처럼 일본 제국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이들과 동일시된 것처럼 움직인다. <스파이의 아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사토코의 시점이지만 영화의 카메라는 사토코와 유사쿠 부부를 미행하는 사람의 시점처럼 이들을 관찰한다.     

 유사쿠가 만주에서 목격한 것은 관동군의 만행이다. 유사쿠는 이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고, 사토코는 안온한 일상에 찾아온 균열의 조짐 앞에서 불안해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카메라는 만주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사토코와 함께 홈메이드 영화를 찍던 유사쿠의 카메라가 만주로 향한다. 유사쿠의 카메라 또한 관동군의 만행을 직접 찍지 못한다. 관동군의 만행이 담긴 누군가가 촬영한 영상을 다시 찍어 일본으로 가져왔을 뿐이다. 유사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던 사토코는 우연히 그 영상을 보고 동참을 결심한다. 여기서 두 가지 관계가 교차한다. 코스모폴리탄으로서 국적과 상관없이 관동군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려던 유사쿠, 유사쿠와의 관계를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며 그와 함께 하는 것만을 바라던 사토코. 두 관계는 공교롭게도 영화에 등장한 두 편의 8mm 필름을 통해 교차한다. 하나는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기록영상이고, 하나는 유사쿠와 사토코가 함께 찍은 홈메이드 영화이다. 두 영상은 만주의 풍경을 담은 동일한 인서트 쇼트로 시작된다. 태평양 전쟁 직전의 일본이라는 불안정한 공기, 필름을 통해 전해진 관동군의 만행, 만주의 길거리를 담은 인서트 쇼트 다음엔 사토코가 주연을 맡은 홈메이드 영화가 상영되어도, 만주의 참상을 담은 기록영상이 상영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흔히 영화 속에서 스크린의 비유로 사용되는 창문은 <스파이의 아내>에서는 새하얀 빛과 같은 흰색으로 처리된다. 특히 사토코와 유사쿠의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은 그 밖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거실에 설치된 스크린에 영사되는 8mm 필름의 이미지가 외부를 보여준다. 사토코는 만주에 가지 않았고, 유사쿠가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보지도 못했다. 사토코가 보지 못한 외부는 오로지 유사쿠가 가져온 필름에 기록된 영상에만 담겨있다. 사토코는 유사쿠가 가져온 두 영상 앞에서 반응하고 행동해야 한다. 동일한 인서트 숏으로 시작한 두 영상 중 하나는 ‘배우’ 사토코가 등장하는 낭만화된 거짓이 등장하고, 다른 하나에 담긴 참혹한 진실은 사토코를 ‘스파이의 아내’로 만든다.      

 사코토의 상황은 멀게는 <오명>(1946)을 비롯한 히치콕 영화 속에서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며 선택의 갈림길에 섰던 여성 캐릭터부터, 기요시의 전작 <산책하는 침략자>나 공동각본가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커다란 정의 앞에서 무엇인가 선택해야 하는 여성들, 그 선택의 중심에 사랑을 위치시키는 사람들. 사토코가 원한 것은 유사쿠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스파이의 아내’가 된다는 사토코의 선택은 오로지 유사쿠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난 스파이가 아냐. 내 의지로 움직이니 스파이와 전혀 달라."라는 유사쿠의 말 앞에서, 사토코는 “당신이 스파이라면 스파이의 아내가 될게요.”라고 대답한다. 사토코는 유사쿠가 가져온 필름 속 진실을 믿는다. 유사쿠가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하던, 사토코는 자신이 정의하는 유사쿠가 있으며 그것을 지키려 한다. 유사쿠가 찍은 것이 진실이라면, <스파이의 아내>는 진실을 경유해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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