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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05. 2021

2020-05-05

0. 이래저래 일정이 바빠서 3일간 밀린 것을 이제 모아 올린다  



1. 전주영화제 4일차. 오늘은  편의 영화를 봤다.

<말을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36가지 방법은 없다> 니콜라스 수케르펠드 2020

 영화는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라울 월시의 영화 속에서 말을 타거나 문이 열리는 장면들을 모은 몽타주, 그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 결론. 영화의 두번재 챕터는 감독 니콜라스 수케르펠드가 아는 어느 영화과 교수가 강의 중 "말을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36가지 방법은 없다"라는 라울 월시의 말을 인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교수는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인용구가 정확한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던 그는 라울 월시가 어디서 그 말을 했는지 찾기 시작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방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는 라울 월시의 말이다. 교수는 자신이 기억하는 인용구가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가를 추적하기 위해 문헌을 뒤지고 주변의 영화평론가, 교수, 영화연구가,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한다. 영화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인용구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교수의 열정에 화답하여 준다. 교수는 자신이 그 인용문을 처음 접한, [그리피스의 연속성]을 쓴 평론가에게 답장을 받는다. 그 또한 인용구의 본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해답을 추신으로 덧붙인다. 인용구를 파악하기 위해 문헌을 뒤지고 연락을 돌리는 대신 영화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 영화는 라울 월시가 말한 "방에 들어오는 것을 찍는 방식은 단 하나밖에 없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찍는 것이다."라는 말을 고스란히 보여주려는 듯, 디지털 파일로 구할 수 있는 라울 월시의 모든 영화 속 말을 타는 장면, 말에서 내리는 장면, 문을 열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면을 첫 챕터에 모아 보여준다. 이미 해답을 구한 채 추리과정을 보여주는 이 이상한 탐정영화는, 라울 월시라는 거장이 영화를 찍는 방식에 대한 아주 독특한 강의가 된다.

<첫 54년-약식 군사 메뉴얼> 아비 모그라비 2021

 꾸준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온 아비 모그라비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약식 군사 메뉴얼'이라는 가상의 군사 점령 메뉴얼을 감독이 직접 프레젠이션하는 장면과, 그것의 내용을 증언하는 전 이스라엘 군인들의 증언과 당시의 아카이브 푸티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점령한지 54년의 시간이 지났기에 점령의 '첫 54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정리하는 작업인 셈이다. 크게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방식이지만, 이스라엘군의 군사 점령 방식을 일종의 메뉴얼로 제작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반인권적, 반인륜적, 가학적 행위들이 객관적이고 명확한 톤으로 정리된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비 모그라비의 작업은 여전히 벌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군사 점령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비 모그라비의 작업은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어떤 대안이나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는 상황 자체를 다루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때문에 이번 영화 역시 그의 이전 작업들에 대한 동어반복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분석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아가는 데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전주영화제 5일차. 오늘은 체칠리아 만지니의 영화들과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단편을 봤다.

<오페라의 밤> 세르게히 로즈니차 2020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다큐멘터리 작업들은 아카이브 푸티지들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극영화였던 <젠틀 크리처> 정도를 제외하면, 스탈린의 장례식을 기록한 <스테이트 퓨너럴>과 같은 전작은 기존에 존재하는 푸티지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맥락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오페라의 밤>은 1950~6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오페라 갈라 쇼 당시를 기록한 푸티지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레이스 켈리, 브리짓 바르도, 엘리자베스 여왕, 샤를 드골, 장 콕토 등 익숙한 배우, 정치인 영화감독의 얼굴이 영화에 등장한다. 다만 이 영화가 그것들을 재구성함으로써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유럽 최상류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려던 것일까? 팬데믹 시대엔 불가능한 인파와 오페라 극장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이야기하려던 것일까? 그것 뿐이라면 이 영화가 담아내는 풍경과 노스탤지어의 감각은 유튜브 알고리즘과 다를 게 뭘까?

<두 개의 잊혀진 상자> 체칠리아 만지니, 파올로 피자넬리 2020

 전후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으며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체칠리아 만지니 감독의 유작이다. 영화는 1965~66년 사이 만지니 감독이 남편인 리노 델 프라와 함께 영화를 찍기 위해 배트남을 찾았던 시기의 사진이 남긴 두 개의 상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두 개의 상자에는 베트남전 당시의 사진들이 들어있다. 전쟁 속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 일상생활 속에 섞여 있는 총, 박격포, 고사포 등의 전쟁 이미지들, 그리고 체칠리아 만지니의 기억들. 체칠리아 만지니는 공동연출을 맡은 파올로 피자넬리의 도움을 받아, 노쇠하여 기억을 잃어가고 있던 자신의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의 공개 이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체칠리아 만지니는 “나는 서서히 기억을 잃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제게 어떤 기억을 상기시키곤 하지요. 나는 이 두 개의 상자를 기억 못 했어요. 상자를 열고, 사진을 고르면서 내가 이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것들이 다시 내게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시간을 재발견하게 하고, 공간을 복구하고, 감각을 회복해서, 모든 것을 소생시키기 때문입니다.”라고 영화의 주제를 말한다. 사진, 그리고 사진으로 인해 존재할 수 있게 된 영화라는 매체의 핵심적인 본질인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노장 감독은 마지막까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체칠리아 만지니 단편> 체칠리아 만지니 1958~72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섹션인 '인디펜던트 우먼'을 통해 소개된 체칠리아 만지니의 단편 6편이다. 그의 첫 영화인 <미지의 도시>(1958)부터 <마리아와 나날들>(1960), <스텐달리(스틸플레이)>(1960), <습지의 노래>(1961), <여자-되기>(1965), <목의 굴레>(1972) 등이 상영되었다. 뒤의 두 편을 제외한 네 편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사이에 위치한다. 특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내레이션을 맡거나 쓴 <미지의 도시>, <스텐달리(스틸플레이)>, <습지의 노래>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파졸리니의 내레이션을 통해 어린 소년들, 청년들이 전후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전쟁 직후반큼 폐허는 아니더라도 척박하고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사라져가는 이탈리아 남부의 전통적인 장례방식이 영화에 기록되기도 한다. <마리아와 나날들>, <여자-되기>, <목의 굴레>는 사회주의자로서 만지니의 모습이 드러난다. 광고 포스터나 화보 속 여성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작되는 <여자-되기>는 흑백 화면에 담긴 60년대 이탈리아 여성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들이 '여자'가 되기 위해 요구받는 것은 광고나 화보 속 화려하게 꾸민 여성 이미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공적공간에서의 노동과 사적공간에서의 가사/육아노동 모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럼에도 생계유지를 위한 돈이 부족하고 여가를 즐기거나 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즉 당대의 '여자-되기'를 그들에게 요구되는 노동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작품이다. <마리아와 나날들>은 그러한 틀 속에서 살아온 노년 여성의 모습을 기록하는 작품이며, <목의 굴레>는 각종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과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핑계로 육아에서 벗어난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이 가정 및 공적 영역(학교)의 케어를 받지 못할 때 어떤 아이로 자라나는지를 관찰한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 체칠리아 만지니의 여섯(유작까지 일곱)편의 작품은, 그의 작품세계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간 접근이 어려웠던 체칠리아 만니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3. 전주영화제 6일차. 마지막 날이며 드니 코테의 <공중보건>을 관람했다.

<공중보건> 드니 코테 2021

 2005년부터 연출한 거의 모든 영화를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드니 코테의 신작이다. 작년에도 <윌콕스>라는 영화로 전주를 (온라인으로) 찾았었다. 이번 영화는 연극과 같은 톤으로 제작되었다. 배우들의 대사는 옛 희곡의 말투이며 연기 또한 연극대사를 읊는 것처럼 과장된 투이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것 마냥 배우들은 서로 몇 미터 가량 떨어진 채 자신의 자리에 서서 연기한다. 거의 유일한 남성 인물인 앙토냉과 영화 중간중간 모습을 비추다 후반부에서야 대사가 주어지는 오로르를 제외하면 배우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영화는 여행객 등의 돈을 훔쳐 살아가는 불량배 앙토냉이 누나와 아내 등에게 비난당하고 카시오페라는 여성에게 구애하는 상황을 담아낸다.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에서 화면의 어느 쪽이 흐릿해지는데, 이는 카메라 렌즈에 바세린을 바른 것이다. 화면의 흐릿한 부분은 관객의 눈이 우두커니 서서 대사를 뱉는 인물들만을 바라보며 지루해하지 않는, 다시 말해 눈을 화면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다가 다시금 배우들에게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앙토냉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온 바람둥이 남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희극에 대해 도덕적인 악인이 아닌 우스꽝스러운 악인을 모방해야 한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찌질하고,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서 자신을 '시네아스트'라 부르는 사람. 앙토냉과 오로르를 제외한 인물들이 현대가 아닌 과거의 복식을 입고 나오지만, 대사 중간중간 폭스바겐, 페이스북, 노트북 등의 명사가 언급되는 것을 떠올려보면, <공중보건>은 고대 그리스의 희극과 현대의 희극적 상황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려는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중보건'이라는 제목은 무엇일까? 기왕 고대 그리스 이야기를 꺼낸 김에 그 당시로 향해보자. 플라톤은 [향연]에서 인간이 두 사람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을 갈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신화에서 찾는다. 인간은 본래 팔다리가 8개인 것이었다가, 이들이 신에게 도전하자 제우스가 둘로 갈라버려 팔다리가 4개인 지금의 인간이 되었으며, 여성-여성, 남성-남성, 여성-남성의 3가지 성으로 존재했던 인간은 각자가 갈라진대로 레즈비언, 게이, 헤테로가 되었다는 것이 대강의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것은 근본적인 분리, 즉 거리두기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만나는 앙토냉과 오로르는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다. 남성과 여성, 절도범과 피해자, 악인과 선인 등등.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상당히 이분법적으로 구별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거리두기를 할 수 밖에 없을 때, 다시말해 플라톤이 말한 근본적인 합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팬데믹을 언급하지 않지만, 서로 대립되는 두 캐릭터를 합일할 수 없는 대상으로 상정한 채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은 음성으로 구성된 대화 뿐이며, 그것은 서로의 간극을 재확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팬데믹 시대의 '공중보건'은 거리두기다", "혹은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거리두기다"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만 같다.


4. 온라인으로도 몇 편을 관람했다. <May.JEJU.Day>가 국내 단편 중에는 눈에 띄는 영화였고, 대만의 좀비영화 <겟 더 헬 아웃>은 충분히 즐거운 영화였다. 자파르 파나히의 <숨겨진>은 <세 개의 얼굴들>의 후속작으로써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화를 이어나가는 그의 태도를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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