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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31. 2021

2021-05-31

1.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와 <크루엘라> 리뷰를 쓰지 않은 것은 딱히 할 말이 없어서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여전히 어처구니 없는 액션과 실없는 유머로 나름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였지만, 드웨인 존슨을 대체하기에 존 시나는 어딘가 부족해보였다. '레슬러' 존 시나 같은 입담을 어느 정도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고, 루다크리스와 타이리스의 만담은 이제 시효를 다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쿠키영상 속 제이슨 스타뎀의 짧은 입담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크루엘라>는 눈이 즐거운 작품이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등등에서 인상적인 의상을 선보인 제니 비반의 의상과 2억 달러의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의 (당연한) 호연도 즐거웠고, 원작 팬들을 위한 요소들도 디즈니답게 알차게 들어 있었다. 다만 꽤나 긴 러닝타임(134분)이 지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최근의 디즈니 '라이브 액션 필름' 영화들 중 즐겁게 본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럽지는 않은 영화였다.


2. 잭 스나이더의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실망스러웠다. 내 또래라면 대부분 처음 관람한 좀비영화가 그의 <새벽의 주저> 아니면 <28일 후> 시리즈일텐데, <아미 오브 더 데드>는 그 당시의 좀비 영화들보다도 지루하기만 했다. 잭 스나이더는 이제 2시간 미만의 영화는 만들지 못하는 걸까? 아니, 러닝타임은 둘째치고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조지 A. 로메로의 <죽음의 날>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애매한 좀비 설정이라던가, 그렇다고 제대로 캐릭터화된 좀비를 선보이지도 못한다는 문제라던가, 작년에 <반도>를 통해 이미 좀비와 하이스트 장르의 결합을 경험한 이후임에도 자신만만하게 좀비와 하이스트 장르의 결합을 내세우는 모습이라던가(사실 <반도>는 좀비+하이스트라기보단 좀비 버전의 <뉴욕탈출>에 가깝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물론 영화가 좋았다는건 아니고), <존 윅>의 근접 총기 액션을 느린 좀비들 앞에서 선보인다던가, <레이드> 시리즈 같은 근접격투를 육중한 몸을 지닌 바티스타가 시도한다던가... 라스베가스가 디비지는 초반부의 스펙터클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잭 스나이더의 DCEU 작품들은 꽤나 괜찮은 것들이었구나 싶어지는 시간이랄까. 


3. 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하는 GAME X CINEMA 기획전에서 안 본 영화들을 최대한 챙겨보려고 호기롭게 시간표를 짰으나... 첫날 <슈퍼마리오>와 <전자오락의 마법사>만 겨우 보고 다시 못 가고 있다. 두 편을 본 것만으로도 다행이랄까. 두 편을 보고 집에 돌아와 NES 에뮬레이터를 받은 뒤 [슈퍼마리오 3]를 좀 하다가 역시나 어려운 게임이라 생각하고 2주 째 다시 안 켜고 있다. <슈퍼마리오>는 생각보다 멀쩡한 이야기의 영화였는데, 물론 '슈퍼마리오'라는 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렇다는 의미다. 배관공인 주인공 형제가 얼떨결에 랩틸리언이 지배하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이세계에 떨어져 벌어는 좌충우돌 모험기라 생각하면 80~90년대에 몇 번쯤 만들어졌을 이야기에 몇몇 설정만 '슈퍼마리오'의 특징들을 끼얹은 것만 같은 작품이다. 문제는 '슈퍼마리오'를 끼얹었다는 것인데, 요리 유튜버 승우아빠가 100시간 넘게 조리한 식재료마냥 대충 그게 원래 그거였구나 정도만을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의 것만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버섯이었던 굼바는 퇴화한 랩틸리언이라는 이상한 설정 때문에 소두 파충류가 되어버렸고, 쿠파는 데니스 호퍼가 연기하는 랩틸리언으로 변해버렸으며, 피치 공주 대신 원작 게임에서도 마이너한 데이지 공주가 여성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요시는 <쥬라기 공원>에나 나올 법한 애니메트로닉스로 구현되어 있다. [슈퍼마리오 2]에 나왔던 걷는 폭탄이 그나마 원작에 가장 가깝게 구현되었는데, 그마저도 어처구니없는 리복의 PPL이 되어 있었다. 폭탄이 대체 왜 리복 로고를 발바닥에 달고 있는 것일까.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은 [슈퍼마리오]의 핵심인 '점프'가 이상한 신발로 대체되었고 마리오 형제는 점프 대신 총으로 악당과 싸운다는 부분이다. 나름 원작에서 꽃을 먹으면 불꽃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을 구현하려 한 것 같지만, 결과물은 그냥 화염방사기였다. 어쨌든 영화와 게임 사이의 어처구니 없는 간극과 이걸 35mm로 극장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전자오락의 마법사>는 듣던대로 대규모의 닌텐도 PPL이었으며, 그만큼 무난한 가족영화였다. 극장의 대형스크린으로 [슈퍼마리오 3]를 처음 접했을 당시 북미 어린이-청소년들의 심정이 문득 궁금해졌다. 못 본 작품 중엔 <위험한 게임>, <최후의 스타화이터>, <스트리트 파이터>, <모탈 컴뱃>과 다큐멘터리들이 보고 싶지만, 현생에 치여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4. GAME X CINEMA 기획전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섹션인 'MACHINIMA, AN INTRODUCTION'의 작품들은 모두 관람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작품이 유튜브 등에 이미 공개되어 있지만, 한글자막은 소중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닉 로빈슨의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는 모두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AVGN이야 한글자막이 달린 영상이 유튜브 곳곳에 퍼져 있고, 다른 작품들 또한 어렵지 않은 영어를 사용하기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물론 어려운 용어들이 넘치는 영상은 아니지만) 이참에 보는 것이 정말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이 작품 외에는 <페더폴>이랑 얼마 전에 처음 플레이해본 '노 러시안' 미션에 대한 단편 <모던 워페어>, 글리치를 사용한 <슈퍼마리오 무비>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5.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을 보고 크리스토피 밀러&필 로드 콤비의 제작사가 이제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솔로>의 연출직을 박탈당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비롯해 꾸준히 (제작이지만) 활동하고 있어 반가울 뿐이다. 다만 그들(과 제작사)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안정됨에 따라 점차 지루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텐데, 이들이라면 나름대로 재밌는 작품을 선보이며 슬럼프를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6. 이란희의 <휴가>는 기대만큼 좋진 않았지만 좋은 영화였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사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작품은 투쟁현장으로부터의 휴가를 맞이한 사람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지만 두 딸은 아빠를 냉랭하게 대하고, 대학입학을 앞둔 큰딸의 등록금도 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주인공은 휴가중임에도 고향친구의 목공소에서 알바를 시작한다. 그는 말주변이 없다. 오랜 시간 투쟁해왔으나 자신이 알고 있는 노동과 노동법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전달한 언어를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가 지닌 언어는 노동(이는 생업과 가사를 포함한다)이다. 투쟁현장에서도 요리를 맡았던 그는 집에 와서 가장 먼저 막힌 싱크대를 뚫고 저녁을 차린다. 요리를 하고 식탁을 차리는 제스처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언어다. 다만 그것은 그의 언어이지 모두의 언어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언어를 수용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의 언어를 수용하지 못한 사람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주인공의 '휴가' 덕분에 부딪히게 되었을 뿐이다. 영화는 그 순간의 분주함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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