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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7. 2021

2021-06-07

1. 애니메이션에 대해 다뤄야 할 자리가 생겨서 적어보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경험적 생각들. 


2. 초등학교와 그 이전 시절에 애니메이션이란 (픽사를 포함하는)디즈니, 지브리, 디지몬이었다. 게임 [동키콩]을 원작으로 삼은, 대교방송에서 방영한 3D 애니메이션 <동키콩>이 아마 나의 첫 3D 애니메이션 관람 경험일 것이다. 일요일 오전에 방영하던 디즈니 TV 애니메이션들은 항상 교회를 가느라 반만 봤었고(그래도 <라이온 킹>의 스핀오프들은 다 챙겨봤다). DVD 대여점에 부모님과 함께 가게 되며 <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등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을 엄청나게 반복관람했다. 초등학생 때는 집에서 TV를 자주 보지 못하게 해 <나루토>나 <원피스> 같은 작품을 실시간으로 접하진 못했지만, <디지몬 어드벤처>부터 <디지몬 프론티어>까지는 거의 실시간으로 챙겨봤다. 친구들 집에 놀러갈 때가 되어야 <개구리 중사 케로로> 같은 것을 조금씩 봤을 뿐이다. 아, 당시 부모님이 학습만화 개념으로 집에 구비해뒀던 『도라에몽』의 KBS 방영버전 애니메이션은 그래도 챙겨봤다. 이 당시 영화관에서 본 애니메이션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브리의 작품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게드전기>)를 극장에서 봤었고, 픽사와 디즈니의 작품은 <토이스토리2>와 <몬스터 주식회사>, <카> 정도를 본 기억만 남아 있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기억이 남는 극장관람 애니메이션은 드림웍스의 <슈렉>이다. 청량리 어딘가에 아직 남아있던 동시상영관에서 봤었는데, 팔걸이에 부착된 재떨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21세기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의 포문을 여는 작품을 20세기 영화산업의 잔재에서 봤다는 사실이 지금 떠올려보면 기묘하게 다가온다. 어쨌든 이 당시 나에게 애니메이션이란 이런 작품들이었다.


3. 조금 더 오타쿠적(?)인, 다시 말해 일본 TVA들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건 초등학교 5, 6학년 즈음부터다. 당시 오타쿠새싹이었던 친구들로 인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나 <럭키☆스타> 같은 작품을 접하기도 했고, 판도라 TV 등지에서 <데스노트>를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공각기동대> 같은 유명 작품들을 접한 것은 대학에 오고 난 이후였다. 다만 이런 작품들을 접하기 시작했다고 딱히 애니메이션을 접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변하지는 않았는데, 애초에 <디지몬> 시리즈 등을 통해 일본 TVA가 구성되는 방식 등을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 당시 나에게 애니메이션이란 "실사가 아닌 것" 정도로 여겨졌던 것 같다.


4. 그러고보니 어릴 때 보던 <꼬마펭귄 핑구>와 <월레스와 그로밋>, <패트와 매트> 등의 클레이 애니메이션들을 잊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필수교양 같았던 작품들이랄까?


5. 위에서 적었던, 애니메이션이란 "실사가 아닌 것"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조금 더 발전시켜보고 싶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카메라 앞에 있는 움직이는 대상을 찍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머이브릿지나 마레의 사진 실험부터 뤼미에르 형제와 에디슨의 영화 카메라까지, 영화는 움직이는 대상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게 한다.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 속 달, 디즈니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움직임 등은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환영을 창출해낸 사례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보면, 플립북(fleep book)이나 조이트로프(zoetrope)  같은 최초의 무빙-이미지들은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동시에 그것들은 카메라 앞에 실제로 놓인 대상이 아니라 -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던 실제의 재현이던 간에- 가상으로 제작된 것이다.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 

1)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환영

2)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


6. 이런 의미에서 영화 속 대부분의 특수효과, 시각효과는 애니메이션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킹콩> 속 킹콩이나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은 움직이지 않는 인형들을 움직이게 하였으며, 존재하지 않는 괴물들을 존재하게 하였다. 물론 애니메트로닉스나 <고지라> 시리즈의 슈트, <스타워즈> 등에서 사용된 미니어처 등은 움직이는 대상을 만들어내 카메라 앞에 세웠지만, 이는 영화 촬영의 효율성을 위한 것에 다름없다. 90년대 들어서 활발히 사용되게 사용되기 CGI는 더욱 손쉽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환영이자 고정된 폴리곤 덩어리들을 1초에 24번 움직이게 만든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흥미로운 사례다. 빌런인 미스테리오는 환영을 사용한다. 원작의 캐릭터가 무대장치 제작자이자 특수효과 전문가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가 드론과 CG를 통해 환영을 만들어내는 빌런으로 설정된 것은 애니메이션/특수효과의 역사를 고스란히 따르는 것과 같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이 환영임을 드러내는, 즉 그린스크린과 모션캡쳐 슈트를 노출시키는 악당이라는 지점이다. 차라리 딱 한 숏 외엔 모션캡쳐조차 사용하지 않은 디즈니의 2019년작 <라이온 킹>을 '실사'영화라 우기는 대신,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일 것이다. 


7. 여튼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왜 하냐면....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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