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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5. 2017

꼬이고 꼬인 소설은 불태워버리자

그레타 거윅 주연의 영화 <매기스 플랜>

 <매기스 플랜>은 매기(그레타 거윅)의 계획으로 시작한다. 아이는 가지고 싶지만 결혼은 하기 싫은 매기는 지인의 정자로 임신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겨가던 중, 일하는 대학의 교수인 존(에단 호크)을 만나게 된다. 매기는 동료 교수인 조젯(줄리안 무어)과 결혼해 두 아이를 둔 존과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고, 존은 조젯과 이혼한 뒤 매기와 결혼한다. 꼬여가는 관계 속에서 매기의 계획은 그녀 스스로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휩쓸려 버린다. 


 막장드라마 같은 전개에 매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매기는 리셋 이불 가능한 인생에서 리셋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배배 꼬여버린 관계는 마구 뒤엉켜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가위로 잘라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대로 순응하고 살기엔 매기가 쌓아온 것들을 무너트릴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조젯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존은 스스로 가정적이고 가정에 충실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영화 내내 존이 쓰던 소설은 매기와 조젯, 존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옮긴 것이었다. 소설을 읽던 매기와 조젯은 소설을 읽는 순간 그 속의 인물들이 자신임을 알아챌 수 있다. 육아와 집안일을 아내와 동등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존은 사실 그러지 못했다. 가정적이기보단 자기중심적이었고, 가정 안에서 관찰자로 남아 있기에 자신의 가정사를 기록한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은 현실처럼 길을 잃고 마무리를 지을 수없다.

 이런 소설을 마무리 짓는 방법은 간단하다. 꼬여버린 실타래를 가위로 잘라버리면 풀리는 것처럼, 알렉산드로스가 누구도 풀지 못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린 것처럼 소설을 불태워버리면 된다. 매기의 어린 딸 릴리가 말하는 것처럼 복잡하고 더러워진 관계는 스펀지로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복잡하게 꼬여버린 상황에 가장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매기스 플랜>은 결국 운명이라는 것에 부딪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엔딩의 과한 설정이 영화 전체의 감흥을 조금 망치지만, 98분의 러닝타임이 수다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즐거운 영화이다.

 수다스러운 대사들을 소화해내는 그레타 거윅, 홍상수 영화 속 지질한 남자가 된듯한 에단 호크, 억양까지 우아한 학자 그 자체가 된듯한 줄리안 무어 세 배우의 연기는 막장극을 활력으로 채운다. 특히 매기를 연기한 그레타 거윅의 연기는 ‘그레타 거윅 영화’라는 장르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연기를 선보인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방황하는 소녀들> 등 그녀의 전작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매기스 플랜>은 꼭 관람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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