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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5. 2017

우주 스토커의 감정선

크리스 프랫X제니퍼 로렌스의 <패신저스>

*스포일러 주의


 2007년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 시나리오에 선정되었던 시나리오가 <이미테이션 게임>의 모튼 틸덤 감독의 손을 통해 <패신저스>라는 영화로 완성되었다. 지구에서 식민 행성으로 동면을 이용해 120년의 여정을 떠나던 아발론 호에서 사고로 인해 엔지니어 짐(크리스 프랫)이 깨어나고, 이어서 작가 오로라(제니퍼 로렌스)가 동면에서 깨어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휴먼 우주 멜로드라마를 표방하던 홍보문구와는 다르게 ‘우주 스토커’, ‘우주 스톡홀름 신드롬’ 등의 평이 해외에서 쏟아졌기에 궁금증이 컸었다. 직접 관람한 영화는 해외평에 가까운, 어떻게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인지 궁금해지는 영화였다. 

 짐 이 오로라를 깨운다는 설정에서부터 영화는 어긋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극 중 인물의 대사처럼 “비윤리적이지만 이해는 가는”짐의 행동은 스토킹을 하다 못해 스토킹 대상의 주택까지 침입하고 마는 스토커의 행동과 다름없다. 도착지까지 90년의 시간을 홀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한의 상황이 주어지는 것은 이런 행동을 이해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뿐이다. 오로라의 말처럼 ‘살인’에가까운 짐의 행위를 알고 난 후에도 일련의 사건을 거쳐 오로라가 짐과의 90년을 택한다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하게 되는 전형적인 스톡홀름 신드롬처럼 보인다. 특히나 영화가 짐의 감정선만을 따라가기 때문에 짐의 행동을 극한의 상황으로 인해 정당화하고, 폐쇄된 공간에 남자와 여자 둘이 갇히게 됐을 때의 남성 판타지 서사로 영화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패신저스>는위험수위까지 올라간다. 스토커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동면 대신 90년간의 동행을 택하는 오로라의 엔딩은 남성 중심의 판타지나 다름없는 결말이다. 

 무중력 상태의 수영장 등 비주얼적으로 괜찮았던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우주영화 하면 떠오르는 전형성으로 가득한 디자인들은 아쉬웠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우주선 내부의 디자인과 에어 로크, <월-E>에 미치지 못하는 우주선 외부에서의 산책 등은 어떤 즐거움을 보는 비주얼이라기 보단 익숙한 비주얼의 반복이다.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거나 부족한 이야기를 메우지 못한다.


 그럼에도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 두 배우의 스타성과 연기는 확실한 매력포인트가 된다. 설정상 두 배우만 주구장창 나오기 때문에 두 배우의 팬이라면 스크린을 통해 크리스와 제니퍼를 보는 재미는 있을 것이다. 특히 나제니 퍼 로렌스는 남성 중심의 <패신저스> 서사에서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따금씩 이를 깨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짐의 만행을 알게 된 뒤 자고 있는 짐을 있는 그대로 패는 장면이 나온다. 캣니스라는 아이콘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었기 때문일까, 정말 살벌하게 짐을 패 버리는데 영화 전체에서 가장 괜찮았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제니퍼 로렌스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드러난 장면이었다.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영화다. 처음으로 내한한 두 배우의 홍보활동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완성도는 아쉽다. <패신저스>는할리우드 블랙 리스트 시나리오가 언제나 좋은 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다시 증명하는 영화로 남지 않을까? 모튼 틸덤 감독의 전작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굉장히 만족했었고, 두 주연배우 역시 좋아해 마지않는 배우들이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불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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