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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6. 2021

2021-07-16

1. 오늘은 온라인으로 관람한 부천영화제 상영작 간단 후기. <베니 러브 유>, <제이콥의 아내>, <사악한 쾌락> 정도를 더 보고 싶긴 한데 덥고 무기력해서 손이 안 간다...

<프랭크와 제드> 제시 블랜처드 2021

 7년 동안 제작된 퍼펫 애니메이션. 영화 시작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개봉작마냥 단편이 한편 삽입되어 있다. 단편 또한 제시 플랜처드가 연출한 작품으로, 본편의 성향을 어느 정도 예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퍼펫 애니메이션임에도 상당히 고어하다. 뇌를 먹어야 신체를 회복할 수 있는 좀비 제드와 에너지가 바닥나면 번개를 맞아 충전해야 하는 프랭크가 지키고 있는 성에, 악마를 잡으러 온 마을사람들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중구난방이고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퍼펫 애니메이션 사이로 끊임없이 피가 뿜어져 나오는 영화이지만, 그만큼 즐겁게 볼 수 있다. 영화의 엔드크레딧에 제작과정이 담긴 영상이 나오는데, 함께 뭔가를 만든다는 것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인지 정감가는 영상이었다.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야마구치 준타 2020

 드로스테 효과는 서로 마주 보는 거울 속의 무한반복 이미지를 뜻한다. 카페 마스터인 주인공은 우연히 자신의 방과 카페의 모니터가 2분의 시차를 두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1층 카페와 2층 방을 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2분의 시차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 더 먼 미래를 보려 한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원테이크 영화라는 점에서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쇠사슬의 모양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2분 짜리 루프를 활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극단에서 제작한 작품이기에 연극적인 톤의 대사와 연기가 영화 내내 이어지지만 이는 딱히 단점이 되지 않는다. 영화가 스스로 설정한 제약과 그것을 활용하여 갱신해나가는 과정을 전달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과거, 적어도 실시간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스크린을 미래를 보여주는 것으로 사용하는, 도라에몽에나 나올법한 설정은 원테이크라는 방식으로 오로지 현재에만 머무르는 카메라를 통해 독특한 감각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올해 부천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기억할만한 작품이다.

<잃어버린 외장하드를 찾는 이상한 모험> 백승화 2020

 <걷기왕>, <오목소녀>, <식물생활> 등 독립영화와 웹드라마를 오가며 작업을 이어온 백승화 감독의 단편영화. 영화는 영화 촬영데이터의 백업을 담당한 주인공이 외장하드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모이는, 고양이가 관리하는 공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힐다>의 집의 정령 '톤투'가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영화는 그러한 판타지적 설정에 집중하는 대신 영화하는 이들이 지닌 고민과 애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백승화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다 어느 순간 공감하게 되는 '무해한 코미디' 영화.

<유산> 남순아 2021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집이 <남매의 여름밤>이 촬영된 곳과 같은 집이라는 점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집은 기억이 누적되는 공간임과 동시에 매매를 염두에 둔 채 할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는 공간이기도 했다. <유산>의 집은 주인공 효은이 오랜 시간 간병해온 어머니가 죽은 뒤 유산으로 물려받을 집에 머물게 되며 시작된다. 효은은 집에 남은 엄마의 흔적을 지우고 새출발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지박령이 된 것처럼 집안 곳곳에 기이한 흔적을 남긴다. <남매의 여름밤>에서의 집은 떠남이 예정되어 있는, 그렇기에 남은 감정과 기억의 잔여물을 탐색하는 영화였다면, <유산>은 삶과 공간에 끈적하게 눌러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 K-장녀의 무게감에 대한 영화다. 효은은 집을 떠날 수도 없고 그곳에 머무를 수도 없다. 집은 팔리지도, 고쳐지지도 않는다. 영화 내내 효은을 짓누르는 공포는 그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업보가 아니라, 그의 삶이 지금처럼 흘러가게 한 환경에 대한 것이다.

<박제> 테오 리스 2021

 박제사인 중년 여자와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중년 남자가 있다. 여자는 자신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 박제로 생각하고, 인터넷에 지원자를 모집하는 글을 올린다. 남자는 자신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고성시키기 위해 박제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남과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이 이야기는 뮤지컬로 진행된다. 거의 모든 대사는 노래로 등장하며, 다섯 곡 가량의 음악을 통해 영화가 전개된다. 피그말리온이 고정된 조각상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려 했다면, 여자는 살아있는 것을 고정된 조각으로 박제하려 한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이 발상은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통해 묘한 감동으로 변화한다. 

<쓰레기의 섬> 최지원 2021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은 쓰레기들로 뒤덮여 거대한 쓰레기 섬이 되었다.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4개의 챕터로 나뉜다. 각 챕터는 쓰레기 섬 인근에서 바다거북 등껍질을 줍는 어부, 온갖 사치를 부리며 호화 유람선을 타다 바다에 빠져 표류하는 젊은 갑부, 쓰레기들로 몸을 치장하는 물고기들, 섬을 벗어나려 하는 쓰레기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서로 별개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하나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낸다. 각 챕터의 구성이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음에도, 관객은 이야기가 가진 연속성을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 쓰레기는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돌아가는지, 혹은 쓰레기는 결국 무엇을 대체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진짜 쓰레기는 무엇인지, 다소 귀여운 톤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꾸려진 이 영화는 쉽지 않은 질문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이야기한다.


2. 이 외에도 몇 편을 더 보긴 했는데 딱히 길게 뭔가를 쓸 말이 없다. 한국 단편영화인 <귀신친구>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매끈한 만듦새에 다림질 당한 것처럼 평범해져버린 영화였다. <헛발질>은 배윤환 작가의 작업을 개별적으로 전시장에서 관람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유운성 평론가의 프로그램 노트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얀 슈반크마에르나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업을 연상시키는 목탄이나 스톱모션을 사용한 애니메이션들이 흥미로웠으나, 산발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을 한 시간 가량 집중해서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만의 애니메이션 <심야버스>는 짧게 즐기기 좋은 괴담 같았다. <아키비스트>는 쓸데없이 낭만적이기만 했다. <살아있는 성기들의 밤>은 괴상한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정리가 덜 된 느낌이었다. <지도 바깥_수직 방향으로>는 이 작업과 함께 봐야할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캐시>는 그냥 재미 없었고, 재밌다는 평을 많이 들었던 <올드맨 무비>는 퍼펫 애니메이션이 주는 비주얼의 재미 외에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3. 이번주 개봉작 중에 <이스케이프 룸 2: 노 웨이 아웃>과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를 봤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 여기에 짧게 적는다. <이스케이프 룸 2>는 빠른 전개와 방탈출이라는 컨셉에 충실한 요소들 덕에 지루하지 않게 보았지만, 전편에 비해 부족해진 캐릭터성과 속편을 위한 지나친 셋업이 큰 흠결이었다. <스페이스 잼 2>는 '스페이스 노잼'인 전작보다는 무난했다. 여전히 유치하고, 주연을 맡은 NBA 스타의 연기는 구리지만, 그것이 주는 유치한 즐거움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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