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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3. 2021

2021-07-13

1.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오프라인 일정을 마무리했다. 18일까지 온라인 상영이 진행되서 못 챙겨본 작품들을 몇 편 더 챙겨볼 예정이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면서 영화제가 중단되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계속 진행중이다. 아무래도 4단계가 결정되기 전에 영화제가 개막해서 그런 것 같지만... 올해 기획전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인디포럼은 수도권 거리두가 4단계 일정과 정확하게 겹쳐버려서 9월 말 이후로 일정을 연기했다. 부디 취소되지 않고 무사히 개최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2. 올해 부천영화제 라인업은 예년에 비해 많이 아쉬웠다. 다만 영화 밖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몇 있다. 팬데믹 이후 영화제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해외 게스트들의 인사영상을 영화 본편 전에 상영하는 것이 이제는 관례처럼 자리잡았다. 영상 속 감독들은 내년에는 부천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작년 여러 국제영화제에서도 여러 차례 들었다. 내년에는 꼭 전주, 부천, 부산, 서울, DMZ 등등에서 만날 수 있일 바래요... 이 말은 올해에도 되돌아왔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며 인디포럼을 포함한 여러 영화제들이 연기, 취소, 온라인 전환 등이 될 것 같아서 저 말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다른 하나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제작과정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살인 청바지>, <프랭크와 제드>,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등의 제작과정을 짧게나마 접할 수 있었다.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제작된 작품이고, 나름의 독특함을 지닌 작품이었다. 마치 팬데믹을 뚫고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영상들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3. 아래는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들에 대한 단평. 오프라인에서 8편을, 온라인에서 7편을 봤다. 온라인으로는 몇 편 더 관람할 예정이다. 단편영화들을 묶음이 아니라 개별구매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온라인 사영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몇 번의 영화제를 거치며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우선 리뷰는 오프라인 관람작부터...

<놀이공원> 조지 A. 로메로 1973

 좀비 3부작이나 <마틴>, <분노의 대결투> 같은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조지 로메로가 공익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 알려진대로, 그의 좀비 3부작은 단순히 상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인종차별 등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함의가 담겨져 있다. <놀이공원>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 주연배우인 링컨 마켈이 등장해 일장연설을 늘어 놓으며 이 작품이 노인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영화는 의문의 하얀 방에서 밖으로 나선 노인이 놀이공원에서 온갖 수모를 겪은 뒤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 일종의 루프물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노인들을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평탄한 놀이기구를 타고 기진맥진해하는 노인들과 거친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대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노인과 젊은이들의 대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노인들 또한 다른 노인들을 타자화하고, 노인 스스로가 젊은이들의 공간인 놀이공원에 있는 것을 어색해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놀이공원>은 다방면으로 타자화되는 노인을 다루며, 영화 본편에 앞서 등장한 링컨 마켈의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는 말에 담긴 공포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공익영화로 제작된 이 영화는 지역 교회와 단체의 후원을 통해 제작되었지만, 이들은 완성본을 보고 후원을 취소하였다고 한다. 노인을 공경 혹은 후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그들의 시각을, 조지 로메로가 특유의 고약한 이미지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버켓 오브 블러드> 로저 코먼 1959

 이 영화가 나온 1959년은 아직 영화 검열기관인 헤이즈 오피스가 존재하던 시기다. 때문에 범죄에 대한 자세한 묘사, 특히 고어한 요소의 등장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버켓 오브 블러드>는 그것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돌파해나간다. 비트족이 모이는 카페의 종업원 월터는 시인의 시를 듣고 영감을 얻어 조각을 만드려하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주인의 고양이를 죽이게되고, 월터는 고양이를 석고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작품으로 내세운다. 카페의 예술가들은 그의 작품을 진정한 리얼리즘이라 극찬한다. 의기양양해진 월터는 우연히 그를 마약사범으로 오해한 잠복경찰을 살해하게 되고, 그의 시체를 석고로 덮어 작품을 만든다. 월터의 작품 수가 늘어날수록 그의 살인도 늘어간다. 영화는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석고상의 형태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석고상의 모습을 한 시체다.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를 직접 보여줄 수 없기에, 그것을 다른 형태로 보여준다. 이는 당시 검열제도를 비껴나가는 흥미로운 시도다. 동시에 월터의 마지막 목표가 그가 흠모하던 카페의 다른 여성 직원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피그말리온 신화를 거꾸로 뒤집은 상황이기도 하다. 로저 코먼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해낸다.

<칠-인의 노숙자> 한받 2021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뮤지션 한받의 첫 영화 연출작이다. <칠인의 사무라이>를 패러디한 제목 속 칠-인은 7명이 아니라 chil-inn이라는 이름의 여인숙이며, 철거 예정인 여인숙에서 K-팝 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하는 다섯 명의 이주민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웹드라마를 한번에 몰아 상영하는 것처럼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코로나19 판데믹 속에서 철거 위기에 놓인 이들이 건물담당자(영화에선 건담이라 자칭한다)에 맞서 디제잉을 펼치는 DJ 세입자즈와 음악에 맞춰 춤추는 노숙자-히어로들의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가사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상황주의자들의 전략인 전용을 주요 형식으로 취하려 한다. 웹드라마와 같은 구성도 그러한 전략에 속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전용의 대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아이언맨, 건담, 케이팝 같은 대상을 전용하고 있다기엔 그 방식과 목표가 어딘가 불분명해보이고, 그것들을 전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도리어 이주민이 아니지만 이주민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여장을 한 남성 배우, 노들야학의 운영진이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장애인의 움직임을 희화화하는 듯한 춤동작 등은 영화를 통해 시도하려 했던 목표들을 와해한다. 그간 한받이 다양한 영역에서 보여준 창작물과 함께 두고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작품은 아니지만, 어딘가 미완성된 작품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가 조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품의 방식이 덜 완성된 느낌이랄까. 

<앱스> 루시오 A. 로하스, 호세 미겔 수니가, 산드라 아리아가다, 카밀로 레온, 사못 마르케즈 2021

 영화는 칠레의 젊은 감독 5명이 모여 '앱(App)'을 주제로 만든 단편들을 엮은 옴니버스 영화다. 네 편의 세그먼트와 중간중간 이를 연결하는 세그먼트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실시간 스트리밍, 데이팅어플,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간공유 어플, 이웃을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어플 등을 다루고 있다. 불법 동영상 촬영과 성범죄, 아동학대, 사생활 침해 등의 범죄가 각 세그먼트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슬레셔, 서스펜스, 포크 호러, 오컬트-코미디 등 각기 다른 장르를 취하고 있는 세그먼트들은 <ABC 오브 데스>나 <V/H/S>, <XX> 등 여러 호러 옴니버스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처럼 각 세그먼트의 불균질한 완성도가 영화를 보는 재미이기도 하다. 가령 두번째 세그먼트인 <프리퀀시>는 서스펜스를 표방함에도 지루하기만 하지만, 네번째 세그먼트인 <불지옥>은 조악한 영상에도 불구하고 치기 넘치는 태도와 분위기로 나름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앱이라는 단순한 소재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영화는 패기있개 <앱스 2>를 예고하며 끝난다. 이 작품이 다른 호러 옴니버스 시리즈처럼 칠레 지역의 젊은 장르영화 감독들을 발굴할 수 있는 시리즈가 되길 바란다. 

<피의 향연> 허쉘 고든 루이스 1963

  '고어 장르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쉘 고든 루이스의 대표작. 영화는 고대 이집트 의식을 재현하려는 미치광이가 젊은 여성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장기를 모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60년 전에 제작된 작품답게 지금의 관점으로 보기엔 구린 부분들이 많지만, 배우들의 발연기와 조악하지만 잔혹한 고어 묘사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별의 별 고어영화가 난무하는 지금 시점에서 <피의 향연> 속 고어 묘사는 더미에 케챱을 잔뜩 뿌려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러한 스타일의 묘사가 주는 생경한 비주얼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2021

써둔 리뷰로 대체 https://brunch.co.kr/@dsp9596/923

<스파인 오브 나이트> 모건 게일런 킹, 필립 젤랏 2021

 세 명의 애니메이터가 합심해 7년의 시간 동안 제작한 작품. <헤비메탈>이나 <우주의 왕자 히맨> 등 70~80년대 고전 애니메이션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작품 자체의 세계관은 북유럽 신화나 그리스-로마 신화, 성서 등의 영향을 받은 판타지 창작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토스코핑을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작품 특유의 고어한 묘사가 독특한 비주얼을 선사한다는 점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더는 새로울 것 없는 클리셰 가득한 이야기와 느릿한 전개는 고작 93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다소 지루하게 만든다. 고전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클래식한 느낌을 원하던 관객에게는 만족스러울 법한 작품. 

<살인 청바지> 엘자 케파트 2020

 캐나다에 위치한 한 의류매장에 들어온 신상 청바지들이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독특하고 귀여운 컨셉의 호러영화. 컨셉만 보면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한 이야기 같지만, 거대 SPA 의류 브랜드의 아동노동착취, 저임금 노동, 환경보호와 공정무역을 외치지만 실은 이중 삼중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착취 등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다소 황당한 컨셉에 진보적인 메세지를 담은 작품임과 동시에, 의류 매장이라는 공간을 그간 호러 영화들이 수없이 그려온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들과는 다른 방식의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그려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다만 청바지가 직원들을 하나하나 살해하는 과정의 묘사는 있으나 후반부 벌어지는 거대한 살육을 제대로 보여주는 대신 단순하게 피가 튀기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로만 보여준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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