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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10. 2021

신화를 성립하게 하는 반복

<그린 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2021

*스포일러 포함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 왕(숀 해리스)와 원탁의 기사들 앞에 녹색 기사(랄프 이네스)가 나타난다. 녹색 기사는 크리스마스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과 결투를 겨룰 기사가 자신에게 한 것은 일년 뒤 크리스마스에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규칙이다. 이렇다할 무용담 하나 없이 방탕한 생활을 보내던 왕의 조카 가웨인(데브 파텔)이 나서 게임이 진행된다. 녹색 기사는 순순히 목을 내어주고 가웨인은 그의 목을 자른다. 일년 뒤 가웨인은 게임의 규칙을 따르기 위해 녹색 기사가 있는 녹색 예배당으로 향한다. <고스트 스토리>, <미스터 스마일> 등을 연출한 데이빗 로워리의 신작 <그린 나이트>는 아서왕 전설 속 기사 중 한명인 가웨인의 이야기를 다룬 서사시 [가웨인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삼는다.  

 <그린 나이트>는 ‘판타지 블록버스터’와 같은 홍보문구와 어울리는 영화는 아니다. J. R. R. 톨킨이 원작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과 <그린 나이트>를 엮는 것은 거짓말에 가깝다. <반지의 제왕>은 모험과 대결, 전쟁으로 가득한 신화적 이야기라면, <그린 나이트>는 그것의 반대다. [가웨인과 녹색 기사] 자체를 접하지 않아 원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데이빗 로워리의 <그린 나이트>는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과는 다른, 안티-신화 혹은 안티-전설에 가깝다. 이는 왕좌에 앉은 가웨인의 머리 위로 왕관이 내려오자 그가 불길에 휩싸이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드러난다. 가웨인은 어떤 위업도, 무용담도 없다. 그는 기사가 되고 싶다고 애인인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반복해서 말하지만, 기사가 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녹색 기사가 등장한 크리스마스 이브 당일 나름의 용기를 내어 도전한 것이 그의 유일한 위업인 셈이다. 얼떨결에 녹색 기사의 목을 내리친 이후에도, 그는 다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까지 방탕한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 왕은 그에게 무언가 위업을 세울 것을 요구하지만, 가웨인은 떠나기 직전까지 그것을 두려워한다. 막상 녹색 예배당으로 향하는 여정을 떠난 이후에도, 가웨인은 기사에게 요구되는 용기나 대담함, 이른바 남성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부재하다. 그 때문일까. 가웨인의 여정은 모험도 방랑도 아닌 이상한 형태가 된다. 모험에는 목적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녹색 예배당이라는 목적지가 존재하지만, 그는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방랑은 목적지가 없다. 하지만 그는 이곳저곳을 떠도는 와중에 결과적으로 목적지인 녹색 예배당에 도착한다. 모험도 방랑도 아닌 그의 여정에 끼어드는 강도(배리 케오간), 성 위니프레드(에린 켈리먼), 여우, 성주(조엘 에저튼)과 그의 아내(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일인 이역으로 출연했다) 등은 그의 여정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가웨인의 여정에서 그의 영웅적 면모는 찾을 수 없다. 도리어 그의 지질한 모습, 영웅적이지 않은 순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는 도리어 그가 녹색 예배당에 도착해 녹색 기사에게 목을 내어주기 전에 이미 죽었음을 여러 차례 암시한다. 강도를 만난 그는 녹색 기사의 도끼와 자신의 말, 옷 등을 모조리 빼앗긴 채 팔다리가 묶인 채로 방치된다. 카메라는 그의 모습에서 시작해 360도 패닝한다. 가웨인이 있던 자리엔 팔다리가 묶인 백골이 놓여 있다. 카메라가 다시 돌면 살아있는 가웨인이 등장하고, 그는 남겨진 칼에 기어가 밧줄을 끊는데 성공한다. 이 장면에서 가웨인은 죽은 것인가? 혹은 녹색 기사와의 목을 건 게임의 규칙을 이행해야하기 때문에 어떤 마법적 힘으로 되살아난 것일까? 분명 가웨인은 마녀이자 어머니인 모건 르 페이(사리타 초우드리)가 준, 마법의 힘으로 그를 보호해주는 녹색 허리띠마저 빼앗겼다. 그것의 힘이 여전히 잔존해 있기 때문에 그는 생존한 것일까? 혹은 녹색 기사가 등장하기 전 모건 르 페이가 진행한 의식을 통해 가웨인이 일종의 타임루프에 빠진 것은 아닐까? 

 가웨인이 강도를 만난 이후에도 그가 죽음에 가까운 상황이었음을 드러내는 장면은 여럿 등장한다. 가까스로 밧줄을 끊고 방랑을 시작한 가웨인은 어떤 빈 집에 들어간다. 그곳은 성 위니프레드가 죽임을 당한 곳이었다. 가웨인은 성 위니프레드의 영혼에게 연못에 빠진 그의 시신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주저하다가 연못에 뛰어든 가웨인의 모습 위로 붉은 조명이 등장한다. <그린 나이트>가 리얼리즘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 속 몇몇 조명은 영화의 내적인 리얼리티를 초과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외화면에서 가웨인의 머리 위로 빛을 뿜어내는 이 연극적 조명은 가웨인이 삶과 죽음, 혹은 물질적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가 되돌아왔음을 암시하는 것인가? 어쨌든 가웨인은 성 위니프레드의 해골을 들고 연못 밖으로 나온다. 그 다음으로 그의 죽음이 의심되는 장면은 어느 성주의 성에 당도하는 순간이다. 이곳은 녹색 예배당에서 한나절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성주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성주의 어머니 혹은 아내의 시종으로 보이는 노인 여성이 그곳에 있다. 성주라지만 이 성에는 어떤 하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가웨인을 제외한 세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성주의 아내는 가웨인의 애인 에셀과 똑같은 외모를 지녔다. 이곳은 실존하는 곳인가, 혹은 거인을 비롯한 비현실적인 존재를 거치고 온 가웨인의 환상인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함과 동시에 마법을 믿는 이들이 살아가는 기묘한 신화 속 세계를 살아가는 이의 왜곡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것일까? 

 가웨인은 마침내 녹색 예배당에 도착하고 녹색 기사와 대면한다. 녹색 기사는 게임의 규칙대로 가웨인의 목을 베려 한다. 주저하던 가웨인은 결국 도망친다. 녹색 예배당에 당도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과는 반대로, 가웨인은 거인 평야, 강도가 있는 전장 등을 빠르게 지나쳐 고향에 도착한다. 왕은 죽고, 위업을 세운 가웨인이 왕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왕이 된 가웨인에게 버림받는 에셀, 전투 중 아들을 잃는 모습, 그리고 한 나라의 몰락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몽타주 시퀀스가 이어진다. 왕좌의 앉은 가웨인은 그곳의 문을 뚫고 들어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성주의 아내가 준 녹색 허리띠를 푼다. 가웨인의 목이 떨어지고, 영화는 다시 녹색 기사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가웨인을 보여준다. 그는 허리띠를 풀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난 이후 <그린 나이트>가 담아낸 가웨인의 여정이 모건 르 페이와 성주의 아내, 그리고 녹색 허리띠 등의 마법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타임루프물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웨인의 여정은 수차례 그의 죽음 혹은 그와 유사한 상황을 암시하지만, 어느 순간 가웨인은 그 상황을 벗어나게 된다. 그는 영웅들의 무용담이 으레 담아내는 것처럼 목숨을 건 대결도, 수많은 적과의 혈투를 벌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극 중 등장하는 마법적 요소들을 이 영화의 내적인 리얼리티로 동원한 뒤 반복 속에서 여정을 이어가는 가웨인의 뒤를 쫓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 뒤 떠올린 것은 영화의 두번째 시퀀스다. 오리와 염소들이 다투고 있는 농장이 등장하고, 후경에 위치한 문으로 한 남자와 여자가 들어온다. 이들은 여정을 떠날 때의 가웨인 및 에셀과 동일한 의상을 입고 있다. 풀숏으로 잡힌 화면에서 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화면 우상단에 위치한 불타는 건물의 지붕을 등진 채 말을 타고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영화의 크레딧은 이들이 파리스와 헬렌이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에서 따온 이름을 지닌 캐릭터이며, 데브 파텔과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했음을 공지한다. 하지만 이들의 외양을 쫓아, 이들이 영화에 등장한 어떤 마법적 힘을 통해 녹색 기사의 크리스마스 게임을 이미 경험했으며 그것으로부터 미리 도망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일까? 혹은 가웨인이 녹색 기사의 목을 벤 이후 나라 곳곳에 가웨인과 녹색 기사의 이야기를 담은 인형극이 등장하며, 그 인형극의 끝이 가웨인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웨인의 여정이 일종의 루프임을 미리 알려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데이빗 로워리의 전작 <고스트 스토리>는 지박령의 이야기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C는 영안실을 빠져나와 애인 M과 살던 집으로 되돌아오지만, M은 이미 그곳을 떠났다. C는 유령의 형상으로 영원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 영원은 반복된다. C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속박된 공간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동일한 역사를 마주한다. 영원하게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유령 C의 존재 앞에서 역사라는 개념은 무기력해진다. <그린 나이트>는 이와 비슷한 사태를 신화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교훈적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가웨인은 녹색 기사에게 목을 내어주어야 한다. 그것을 저지하려는 마법의 허리띠는 가웨인이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영웅적 행위를 저지하게 된다. 녹색 기사에게 목이 베어 죽어야 한다는 가웨인의 운명을 저지하려는 마법의 루프는 그를 구원해주기보단, 차라리 시지프스나 프로메테우스가 겪는 형벌처럼 작동한다. 그가 성주의 아내에게 녹색 허리끈을 받아내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가웨인은 죽지 않기 위해 수치심마저 내어주는 인물이며, 영웅적이며 왕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최후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내장을 뽑듯이 허리띠를 푸는 그의 비장한 모습은 그가 모든 실패를 경험한 후에야 찾아온다. 녹색 기사가 찾아오기 전, 왕은 가웨인에게 원탁의 기사들을 보고 무엇이 보이냐고 묻는다. 가웨인은 전설들이 보인다 말한다. 전설은 구전된다. 죽은 이는 자신의 전설을 말할 수 없기에 죽을 수 없다. 성주의 아내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가웨인의 얼굴을 초기 다게레오타입 사진처럼 인화하는 장면에서 뒤집힌 가웨인의 모습은, 그가 신화/전설의 탄생을 위해 여정을 반복하고 자신을 왜곡해야 함을 드러낸다.


언젠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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