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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19. 2021

불구경하는 방화범 같은 태도

<올드> M. 나이트 샤말란 2021

*스포일러 포함


 외딴곳에 위치한 리조트에 한 가족이 도착한다. 가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프리스카(빅키 크리엡스) 부부, 그리고 그들의 딸 매덕스와 아들 트렌트, 이들은 호텔 매니저(이먼 엘리엇)의 소개로 리조트에서 멀리 떨어진 해변으로 향한다. 그곳엔 이들 가족 외에도 찰스(루퍼스 스웰), 크리스탈(애비 리) 부부와 딸 카라, 제린(켄 렁)과 패트리샤(니키-아무카 버드), 휴양 온 래퍼 미드 사이즈드 세단(애런 피에르)이 함께 있다. 해변에 머물던 이들은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변으로 들어왔던 길로 나가려 하면 기절하게 되고, 더군다나 이곳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 해변에서의 30분은 바깥의 1년과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아이였던 매덕스(토마신 맥켄지), 트렌트(알렉스 울프), 카라(엘라이자 스캔런)는 빠르게 성장하고, 병을 앓던 어른들의 증상이 악화된다. 오랜 시간 슬럼프를 겪었으나 <23 아이덴티티>와 <글래스>를 통해 나름대로 재기한 M. 나이트 샤말란의 신작 <올드>는 늙어감에 대한 공포를 담아낸다. 이는 치매 노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았던 전작 <더 비지트>와 유사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순식간에 늙어가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아쉽게도 그의 시도는 <더 비지트>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실패한다. <더 비지트>는 치매 노인을 전형적인 호러영화 속 악령, 좀비, 괴물, 싸이코 살인마와 같은 방식으로 다룬다. 파운드 푸티지 형식은 치매 노인들의 손자의 시선을 경유해 노인의 육체와 나이듦에 따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질병에 대한 혐오감을 쏟아낸다. 제목부터 ‘나이듦’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올드> 또한 그러한 길을 걸어간다. <더 비지트>와 <올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선이다. 매덕스와 트렌트는 해변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산에 누군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이들을 해변에 데려온 운전수이자, 리조트를 운영하는 제약회사의 직원이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제약회사가 일부러 질환자가 있는 가족을 골라 여행 상품을 제공한 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해변으로 안내해 단기간에 신약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 반전은 사실 사족에 가깝다. 해변 근처에 리조트가 있으며 이들이 이곳에 오게 된 것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의무방어전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해변으로 데려오고 먼 곳에서 관찰하는 인물을 샤말란 감독이 직접 연기한다는 점이다. 

 물론 샤말란은 이전에도 자신의 영화에 종종 카메오처럼 출연해왔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지나가는 행인과 같은 엑스트라나 짧게 등장하는 단역으로 출연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올드>에서 샤말란은 영화 자체의 카메라는 물론 극 중에서 해변의 사람들을 관찰(이 그의 업무지만 사실상 구경에 가까운 것을)하고 있다. 이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경유함으로써 (비록 실패했지만) 서사적/형식적 안전장치를 구비해둔 <더 비지트>보다 더욱 강력하게 늙어감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표출하는 것이다. 더욱이 <올드>의 인물들은 질병을 앓고 있다. 프리스카는 종양을, 찰스는 정신병을, 패트리샤는 간질을, 미드 사이즈드 세단은 혈우병과 유사한 질병을 앓는 중이다. 이들의 병은 해변의 기묘한 힘으로 인해 빠르게 진행된다. 프리스카의 종양은 순식간에 멜론만 한 사이즈로 자라나고, 찰스의 정신병은 빠르게 악화되어 치매와 유사한 증상으로 발현된다. 영화의 카메라는 이들의 질병을, 빠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순식간에 늙어버린 자신의 외모(와 골다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크리스탈을, 한 시간 만에 만삭이 되어 출산하게 된 카라를 영화의 무기처럼 사용한다. 

 다시 말해, <올드>는 나이듦과 그것에 따라오는 질병에 따라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이중으로 구경한다. 카라의 임신, 아이들의 너무 빠른 성장, 인물들의 노화, 질병들의 급작스러운 악화는 외화면에서 벌어지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프레임 속으로 들어와 관객들을 놀라게 하려 한다. 어떤 형식적 규칙도 없이, 혼란과 고통에 빠져 있는 인물들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는 움직인다. 이를 위해 해변의 규칙을 어기는 상황도 발생한다. 손발톱과 머리카락은 죽은 세포이기 때문에 자라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람의 시체는 몇 시간 만에 백골로 변해버린다. 인물들의 신체와 질병은 점진적으로 성장/노화,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순간만이 프레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샤말란은 영화관의 관객과 유사한 위치, 즉 저 해변에 있지는 않지만 렌즈를 통해 그곳을 구경할 수 있는 안전한 위치에서 이들을 바라본다. 이 지점에서 샤말란은 명민한 연출자라기보단 끔찍한 사고 현장을 함께 구경하자고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한심한 바보가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이듦에 공포를 느끼고 그것을 호러영화로 만들어내는 것이 <올드>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샤말란 또한 나이듦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혼을 앞둔 가이와 프리스카는 해변에서 함께 늙어가고, 노환이 찾아와 기능을 다해가는 서로의 눈과 귀를 대신해준다. 이들의 죽음은 꽤나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문제는 그 밖의 것들, 그들 이전에 죽어간 이들을 벗어날 수 없는 장소에 가둬둔 채 구경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트렌트와 매덕스는 그곳을 탈출하긴 한다. <쏘우>의 인물이 자신의 한쪽 팔을 내어준 채 탈출하거나, <호스텔>의 인물이 함께 감금된 이들을 모두 희생시킨 이후에 바깥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 영화 또한 인물들을 탈출할 수 없는 곳에 가둬둔 채 시체가 되어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영화다. 다만 소위 ‘고문 포르노’라 불리는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당장 자신의 신체가 훼손되고 고통과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꽤나 보편적이며 동시적인 것이다. <올드>는 나이듦, 늙어감과 몇몇 질병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인물들을 방치하고 그것을 구경한다. 늙어감 자체만을 소재로 삼았다면 <올드>는 조금 더 보편적인 공포의 대상을 관찰하는 모양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샤말란은 <더 비지트>와 동일한 잘못을 오롯이 자신의 시선으로 구경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함께 구경꾼이 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는 <식스센스> 상영관 앞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야!”라고 외친 뒤 반응을 구경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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