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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2. 2021

제23회 서울국제여성여화제 후기

<우리의 전쟁으로 밤은 사라질지니> 엘레오노르 브베르 2020

 비릴리오는 전쟁이 시각기계의 발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라 말했다. 기동력이 뛰어나며 더 멀리 볼 수 있는 카메라의 발전은 현대 전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지금의 카메라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현대전의 군인은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어두운 밤중에도 대상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은 드론을 통해 대상에게 직접 다가가지 않고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에 주둔한 미군과 프랑스군의 드론 영상으로 제작된 엘레오노르 브베르의 <우리의 전쟁으로 밤은 사라질지니>는 비릴리오나 하룬 파로키 등의 작가들이 보여준 전쟁과 시각기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온 작업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영화 속 군인들은 작전이 벌어지는 실제 장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드론의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의 존재는 무전기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이들이 보는 영상은 선명하지 않다. 영상의 해상도는 대상이 들고 있는 물건이 소총인지 카메라 삼각대인지 명확하게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하다. 하지만 드론을 통해 원격으로 감시와 공격을 수행하는 군인들은 촬영된 영상을 믿는다. 밤이 찾아온 전쟁을 낮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오류는 작전의 완수를 위해 무시된다. 대상에게 인지되지 않는 원격의 눈을 지닌 군인은 그것의 전능함을 믿고 작전을 전개한다. 정찰의 대상이 된 이들은 자신이 감시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감시당하고, 공격당한다. 감시자의 눈에는 목동도 저널리스트도 총을 들고 있다.

 드론 카메라 영상에는 대상을 겨냥하는 십자선이 그려져 있다. 밤을 낮으로 변환하는 카메라의 감시체계 속에서 피감시자들의 일상은 전쟁으로 변환된다. 정찰과 감시가 늘어날수록 적과 사상자 또한 늘어난다. 낮으로 변환된 미국의 밤풍경을 담은 영화 속 한 장면은 밤의 어두움을 낮의 환함으로 변환했을 때의 환상성을 보여준다. 브베르의 영화는 밤과 낮을 뒤바꾸는 디지털 카메라의 환상성이 영화의 꿈이 아니라 감시와 살육을 위해 발전하고 있음을, 수많은 증거자료를 통해 지적한다. 

<미얀마의 봄 - 파둑 혁명> 진 할러시, 라레스 마이클 길레잔 2021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양곤, 만달레이, 네피도 등 미얀마의 주요 도시의 미얀마 시민들은 평화 시위를 진행하려 했으나, 군부는 이들을 체포, 구금, 살해하였다. 동남아시아의 인권문제를 연구하고 영화를 통해 다뤄온 진 할러시와 라레스 마이클 길레잔이 공동연출한 <미얀마의 봄 – 파둑 혁명>은 지난 2월과 3월의 미얀마를 기록한다. 

 영화는 군부 쿠데타 이후 처음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20대 여성 난을 통해 세 명의 운동가를 소개한다. 2012년부터 군부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해온 마웅(Maung Saungkha), 자신을 Z세대로 규정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시위를 전개하는 자우(Zaw), 군부에 저항하는 운동이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반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됨을 설명하는 인(Yin Nyein)이 그들이다. 이들은 군부 쿠데타에 맞서는 시위가 ‘아웅 산 수 치 석방’이나 ‘군부독재 타도’와 같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익숙한 구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수민족과 여성 등의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하는 모든 이들의 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난은 시위에 참여하며 페미니즘을 배우고 로힝야족에 대한 버마인의 혐오와 무관심을 반성한다. 2021년의 ‘파둑 혁명’은 저항을 주도하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군부 독재를 포함한 미얀마의 현재 전체에 대한 저항으로 확대된다.

 물론 저항은 쉽지 않다. 수많은 시민이 체포되고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 직전 결혼식을 올린 난은 자신이 품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을 내보인다. 저항을 이끄는 마웅과 자우는 자신의 집에 군인들이 찾아왔다고 말하며,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의 압박감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투쟁이 다음 세대를 위해 미얀마의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이라 말하며 다시 길거리로 나선다. ‘파둑’은 미얀마를 상징하는 꽃이다. 영화는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미얀마의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혁명가들이 치켜든 세 손가락은 미얀마의 새로운 봄을 알리는 파둑 꽃처럼 거리 위에 피어나는 모습을 담아낸다.

<애프터 미투>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2021

 영화는 제목 그대로 미투운동 이후를 기록한 네 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박소현의 <여고괴담>은 스쿨미투를, 이솜이의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성폭행 트라우마를, 강유가람의 <이후의 시간>은 예술계의 미투운동 활동가들, 소람의 <그레이 섹스>는 피해/가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적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기 다른 이슈를 선택한 이들의 작품은 서로 상이한 연출 형식을 보여준다. <여고괴담>은 정지된 사진 이미지에 스쿨미투 운동을 이끈 학생들의 목소리를 얹었고,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와 <이후의 시간>은 인터뷰와 활동을 번갈아 보여주는 익숙한 방식을 택했으며, <그레이 섹스>는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이다. 화자가 직접 영화에 등장할 수 없는 두 작품의 형식적 선택은 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확실하게 전달하며, 화자가 인터뷰이이자 피사체로 화면에 자리하는 두 작품은 지워져서는 안 되는 이들의 존재를 스크린에 보존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미투운동 그 이후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운동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섣부른 행동이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애프터 미투'라는 것은 미투운동이 이 영화의 안팎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가서도 안 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대회해야 할 주제들은 여전히 산재해 있다. 스쿨미투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성폭행 트라우마 해소를 위한 제도적 실천은 미비하며,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종결되지 못했고, 피해/가해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에 대한 언어도 없다. <애프터 미투>는 미투운동 이후 쏟아져나온 여러 주제들에 대해 끝까지 함께 고민하고자 열린 토론회이며, 그곳에 참석하기 위한 초대장이다.

<사천의 좋은 여인> 사브리나 자오 2020

 영화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이어지는 자막에서 이 영화는 꿈이나 환상이 아니며 영화 속에서 픽션이나 허구는 인용한 희곡뿐이라 말한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크레딧에는 '퍼포머'가 있다. 영화는 기승전결을 가진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달리는 기차 창 밖을 촬영한 영상에서 시작한 영화는 사천의 한 마을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흘러가지만, 목소리는 화면 속 사물 혹은 인물과 불화한다. 퍼포머의 음성은 화면 밖에서 흘러나오며,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흘러나오다 중단되길 반복한다. 영화의 유일한 '픽션'인 외화면의 희곡과 관계없이 일상적인 이미지들이 화면 속에서 흘러간다. 그렇게 계속 이미지들이 흘러갈 뿐이다... 

<외침과 속삭임> 원하이, 쩡진연, 트리시 맥애덤 2020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촬영된 이 영화는 중국의 노동자, 지식인, 투쟁가, 활동가들을 담아낸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쩡진연과 원하이가 연출했으며, 트리시 맥애덤이 연출한 애니메이션이 영화 곳곳에서 중국 정부에 의해 부품처럼 다뤄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는 여러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이들의 투쟁을 성실하게 담아낸다. 투쟁하던 노동자가 면도칼로 자신의 얼굴을 긋는 영화의 충격적인 첫 장면은 이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대한 태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인터뷰이로 등장한 노동자들은 종종 호쾌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는 무표정하게 공장의 부품이 되어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초상을 담아낸 애니메이션 장면과 대비되며 씁쓸함을 안겨준다. 여전히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유지하며 공산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자본주의적인 태도로 노동자를 대한다. 노동자, 학자, 페미니스트, 엄마, 다큐멘터리스트, 활동가 등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사수하려는 이들은 치밀한 감시사회가 된 중국의 현재에서 끊임없이 탄압당한다. 영화는 그것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성실한 기록이다. 다만 첫 장면이 보여준 결기에 비해 다소 평이한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점이 아쉽다.

<셜리> 조지핀 데커 2020

 영화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와 [힐하우스의 유령] 등으로 유명한 작가 셜리 잭슨이 [행스맨]을 집필하던 시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셜리 잭슨의 전기영화가 아니다. 수전 스카프 머렐이 셜리의 생애를 바탕으로 쓴 동명의 픽션이 원작인 이 영화엔 셜리의 네 자녀가 등장하지 않고, 로지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영화 속 셜리는 소위 '미친 천재'라 불릴만한 인물들의 전범을 따른다. 술과 담배를 달고 살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으며, 물건을 집어던지고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로지는 자신의 남편이 대학교수인 셜리의 남편을 돕기 위해 그 집에 머물게 되며 셜리와 만난다. 얼떨결에 셜리를 돌보는 역할을 맡게 된 로지는 셜리가 단순한 광이 아님을, 베티 프리단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이라 명명한 그것이 자신과 셜리를 옥죄고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된다. 로지와 셜리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다. 흥미롭게도 <셜리>는 우정을 넘어선 두 여성의 관계를 레즈비어니즘으로 풀어내지만, 그것을 정답인 것마냥 결론내리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아가씨>의 연대/남성으로부터의 저항을 위한 레즈비어니즘이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레즈비언 유토피아와 방향을 달리한다. 결국 가정이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과 그것으로부터 저항하기 위해 광기와 독기를 품게 되는 여성들, 하지만 <셜리>의 마지막은 이와 같은 단순한 도식마저 비웃듯 무질서에 가까운 곳으로 향한다. 문제를 가리키던 손가락을 치워버린다는 점에서, <셜리>의 마지막은 앞선 장면들을 통채로 새롭게 고민하게 만든다.

<일렉트로니카 퀸즈: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 리사 로브너 2020 

 영화는 1930년대의 테레민 연주자부터 1980년대의 컴퓨터 음악가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동해온 여성 전자음악가들을 조명한다. 영화를 보기 전엔 막연하게 50년대 즈음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빗나가고 만다. 전자음악은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 소리가 발생하는 악기가 아닌, 전자신호를 변환한 소리로 이루어진 음악이다. 접촉하지 않고 연주하는 전자악기 테레민에서 시작한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의 여정은 2차대전으로 인해 여성들이 공장 등 노동의 최전선에 뛰어들며 기계를 다루게 되고 다양한 소리들을 접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50년대 여러 전자악기가 등장하고 테이프 레코더를 통해 소리를 자유롭게 녹음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샘플러를 통해 소리를 손쉽게 가공할 수 있게 되며 다양한 방식의 전자음악이 등장한다. 많은 이들의 편견처럼 남성적 영역으로 여겨지던 전자음악의 초기는, 영화나 타자기를 비롯한 여러 신문물이 그러하듯 여성에게 새로운 활동영역을 열어준 전자악기를 통해 독립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시기였다. 영화는 그러한 시기에 활동한 이들을 연대기 순으로 담아낸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해야 하는 기존의 악기나 남성이 장악한 팝음악 작곡과는 달리, 전자음악은 빈 영토였다. 그 영토를 자유롭게 누비는 여성 선구자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페미니즘적이다. 영화는 그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또 하나, 전자음악의 발전은 소리의 파형에 기반한 오디오-비주얼의 발전과도 맞물린다. 영화는 이를 내레이션으로 설명하진 않지만,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대안현실에 주문걸기> 위라다 반쩨룽카쫀 2020 

<혁명 리믹스> 쿠시 바드와르, 레누 사반트 2020 

<당국가체제의 구원> 마야 코르베츠카 2020

<그녀의 다섯 인생> 사오다트 이스마일로바 2020  

<이란의 가방> 마리암 타파코리 2020 

 위의 다섯 단편은 싱가포르의 아시안필름아카이브에서 기획·제작한 모노그래프 단편 시리즈의 여성 감독 영화들이다. <대안현실에 주문걸기>는 중국계 이민자 2세대인 감독이 허우샤오시엔의 '성장 3부작'을 되짚어보며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민한 작품이며, <혁명 리믹스>는 인도 상업영화 속 혁명 이미지가 남성의 군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당국가체제의 구원>은 1951년의 <자자매매참기래>와 1995년의 <홍분>을 중심으로 공산정부 수립 이후 시기의 여성을 영화 속에서 재현하는 방식의 변화를 탐색한다. <그녀의 다섯 인생>은 한 세기에 걸친 우즈베키스탄 영화 속 20명의 여성배우의 모습을 다섯 시기로 분류하며 자국 영화에 대한 새로운 분류학을 제시한다. <이란의 가방>은 남녀간의 접촉이 금지된 이란 영화 속에서 핸드백이 접촉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음을 분석한다. 다섯 편의 영화는 각각 자국 영화를 새롭게 보는 방식을 제시한다. 디아스포라, 역사, 계급, 젠더, 종교, 제도의 문제는 서로 다른 영화들을 재편집/재가공해 맞붙이는 과정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의 모범과도 같은 작업들.

<테라 팜므> 코트니 스티븐스 2021 

<신호 간섭> 코트니 스티븐스 2018

 <신호 간섭>은 남성 의사에게 통각 검사를 받는 여성의 이미지와 신호를 보내는 배의 이미지가 교차하며 등장한다. <테라 팜므>의 초반부에서 감독은 자신이 병으로 인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될 뻔 했다고 언급한다. 코트니 스티븐스의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주제를 말하지만 감독의 개인적 질환으로 인해 엮인다. 침몰하는 배가 할 수 있는 것은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 뿐인 것처럼, 검사 받는 여성은 자신의 질환에 대해 남성 의사의 검사에 따라 무조건 반사 혹은 "yes"라는 대답의 신호만을 보낼 수 있다. 침몰하는 신체는 자신이 갈 수 없는 곳을 탐사한다. 무작정 인도로 떠난 감독은 그곳에서의 여행을 카메라에 담지만, 그가 보기에 자신의 숏은 1920~40년대 여성들이 촬영한 홈 무비 속 여행 푸티지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진다. 침몰하는 신체는 자신이 담을 수 없던 숏을 과거의 여성들이 담아냈음을 확인하고, 아카이브를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이 여행은 당시 여성들이 촬영한 이미지에 대해 계급, 제국주의 등이 개입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이 카메라를 잡았기에 그들의 홈 무비들이 여성적 응시/시선을 보여줄 것이란 생각을 뒤집는 부분이다. 이들은 같은 곳을 여행했을 때 같은 방식으로 그곳을 촬영했다. 그 시선은 지금의 페미니즘/퀴어 영화들이 담아내는 여성적 응시와는 관련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행이 (물론 상류층의 전유물인 해외여행이 중산층에게까지 확대되었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니던 시기, 카메라를 챙겨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계급적인 행위다. 물론 <테라 팜므>는 그러한 행위가 계급적이며 제국주의적이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테라 팜므>는 100여년 전의 일상적인 여행의 기록을 2021년의 시점에서 해석함에 있어서 충만함을 더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코트니 스티븐스는 이 영상들을 통해 시공간을 여행한다. 여행은 여행자가 도달한 공간에 대한 일종의 해석행위다. 그의 여행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자.

<여자들의 증언: 노동운동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들> 하네다 스미코 1996 

 영화는 감독인 하네다 스미코가 10여 년 전에 촬영한 영상들을 뒤늦게 편집하는 모습에서 출발한다. 그는 20세기 초 12~14세라는 어린 나이에 제조업 현장에 뛰어들게 된 여성들이 사회주의 연구원 이시도 기요토모가 1982년에 개최한 모임에서 증언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이들은 일본의 초기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야기를 증언한다.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사를 기록한 기요토모의 책은 십여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11권에 여성 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여자들의 증언>은 그 책에 담긴 여성들이 생존해있던 당시 그들의 증언을 직접 기록하고, 1982년의 회의 이후 그들의 삶을 담아낸다. 감독은 이들의 증언과 노년기의 생활을 보여주기에 앞서 14년 전의 촬영분을 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편집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 놓는다. 기요토모의 책에는 일본의 역사 연표와 함께 생존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연표가 그려져 있다. 남성들의 운동의 보조적 역할만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시간은 70~8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 덤덤한 표정과 말투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싸웠던 대상에는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함께 투쟁하는 여성들을 멸시하던 남성 동지도 포함된다. 이들의 싸움은 여전히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걸로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감독의 말은 우리 모두의 여전한 질문이다. 이 영화는 1996년에 나왔고 지금은 2021년이다. 1982년의 기록은 1996년에서야 영화가 되었고, 국내의 여러 관객은 2021년에서야 이 영화를 만났다.

<소녀들의 혁명: 우리들은 급진군주다> 린다 골드스타인 놀튼 2018 

 '래디컬 모나크'는 8~13세 유색인종 소녀들을 위한 대안적 걸스카우트다. 걸스카우트가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팔고 바느질을 배우는 등 자본주의적이며 가부장제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 대신, 래디컬 모나크는 소녀들에게 인종주의, 페미니즘, 퀴어이론 등을 가르친다. 유색인종 퀴어 여성 애나이벳 마티네즈와 매릴린 홀린퀘스트가 시작한 래디컬 모나크는 'Black Lives Matter' 운동, 페미사이드, 퀴어에 대한 혐오범죄 등이 꾸준히 발생하는 미국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가르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이들의 활동은 유색인종 소녀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서 소수자성에 대한 교육을 택한다. 이들은 레모네이드를 팔고 배지를 받는 대신 국회에 찾아가 법안에 대해 질의하고, 소수자성을 지닌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며, 행진에 참여함으로써 배지를 받는다. 이들이 보여주는 이른바 '풀뿌리 연대'는, 흑표당 활동을 전개하던 여성 활동가가 "유색인에게 최악의 시기"라 평가하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윤가현, 류현아, 이가현 2021 

 '불꽃페미액션'은 2015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 단체다. 이들은 여성의 가슴과 겨드랑이털 등 가리고 제거하는 것이 음란하지 않은 것이자 예의라고 여겨지는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며 다양한 활동을 벌여 왔다. 단체가 만들어진지 5년 이상이 흐른 지금 제작된 이 영화는 이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는 세 편의 단편이 묶인 옴니버스의 형태를 갖고 있다. 류현아의 <찌찌해방>은 그간 불꽃페미액션이 진행해온 '가슴해방' 운동이 팬데믹으로 인해 1인 시위로 전환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윤가현의 <My Body, My Choice Tattoo>는 여성 타투이스트와 타투가 있는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타투 작업과 타투를 통해 몸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되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가현의 <300>은 신지예를 비롯한 현역 여성 정치인들을 인터뷰하며 여성의 정치 활동에 대해 논의한다. 가슴-타투-여성정치인이라는 세 단편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논의의 흐름을 확장한다. 여성의 신체에 특히 주목한 이들의 활동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영화가 다루는 논의와 함께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행보를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다. 노란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참석해 논란이 되었던 순간부터 최근 타투입법을 위한 행동까지, 이 모든 것은 여성 '정치인'이기에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으며 동시에 '여성' 정치인이기에 비난받은 퍼포먼스였다.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은 신체와 정치의 영역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30년의 자매애: 1970년대 일본 우먼리브 운동의 여성들> 야마가미 지에코, 세야마 노리코 2004

 '우먼 리브(Women Liberation)' 운동은 1970년대 일본에서 전개된 여성해방 운동이다. 이들은 함께 합숙하며 성폭행 트라우마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연대를 다짐한다. 영화는 2000년대 초 우먼 리브 운동의 활동가들이 다시 모여 30년 전의 운동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들의 증언 속에서 당시 운동의 의의, 당대의 반응들, 전공투 등 일본 좌파 운동과 우먼리브 운동 사이의 관계 등이 드러난다. 같은 섹션에서 상영된 <여자들의 증언>과 유사한 구성을 취한 작품이지만, <30년의 자매애>는 그보다 조금 더 현재에 가까운 이야기를, 무엇보다 일본 내 대표적인 여성해방운동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기록한다. 영화는 우먼 리브 운동의 성과만을 다루지 않는다. 운동에 참여한 개인들 사이의 갈등과 충돌, 운동의 지향점이 지닌 모순 등을 언급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럼으로써 우먼 리브 운동이 지닌 역동성과 에너지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노 스트레이트 라인: 퀴어 코믹스의 등장> 비비언 클라이먼 2021 

 영화는 앨리슨 벡델, 제니퍼 캠퍼 등 퀴어 코믹스 작가들의 일대기를 담아낸다. 1970년대 코믹스는 DIY로 제작할 수 있었던 매체였으며, 1인 창작이 가능하기에 주류에 속하지 않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백인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당시 코믹스 시장에 반기를 든 작가들은 퀴어로서의, 유색인종으로서의,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자신들의 작품에 새겨 넣는다. DIY로 각자 시작된 이들의 작업은 [쥬시 마더] 등의 앤솔로지 코믹북과 벡델의 [펀홈]과 같은 그래픽노블 히트작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퀴어 코믹스 작가들의 활동과 함께 이들이 서로의 작품에 주고 받은 영향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코믹스/그래픽노블에는 슈퍼히어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 퀴어 작가들은 이제 더이상 자신들은 '사이드 스토리/캐릭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한다.

<불온한 당신> 이영 2015 

 '바지씨'라 불렸던 이묵은 트랜지션이 국내에 도입되기 이전의 트랜스젠더다. 영화는 여성의 몸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아온 그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된다. 이묵의 이야기를 담아내던 영화는 갑자기 어버이연합의 집회 현장으로 카메라를 옮긴다. 좌파 빨갱이 종북세력 척결을 외치는 그들의 모습 다음엔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이 포함된 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성북구와 서울시의 모습이 등장한다. 종북세력 척결을 외치며 예배를 드리던 이들은 이곳에 어김없이 등장해 소리지른다. 이들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에도, 신촌과 서울시청광장에서 벌어진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수많은 집회 현장을 거쳐 다시 이묵에게로 돌아온다. 고향 여수에서 다시 용인으로 돌아온 이묵은 동네 주민들에게 남성으로 인식된다. 그는 자신의 젊은시절과 달리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불온한 당신'인 그의 젊은 시절과 지금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관객이 영화 내내 목격하는 것은 퀴어의 존재를 여전히 불온한 것으로 대하며 퀴어퍼레이드 차량을 저지하기 위해 투신하고 길거리에 누워 통성기도를 올리며 학생인권조례 토론회에서 학생들의 말은 듣지도 않고, 세월호 집회에서 유가족/생존자와 집회 참석자를 조롱하는 이들이다. '불온한 당신'이 여전히 불온한 것은 그들을 불온한 것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과격한 목소리 때문이다. 과격한 혐오의 목소리가 만들어맨 '불온한 당신'을, 이 영화는 열렬하게 바라본다.

<머나먼 길> 히다리 사치코 1977

 영화는 1944년부터 일본 국철에서 일해온 철도노동자 타카노우에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편은 국철에서 일하며 진급을 위해 계속 시험을 보지만 어려운 난이도로 인해 계속 떨어진다. 국철에서 주는 임금은 생활을 영위하고 아이를 양육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아내는 시끄러워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는 남편의 짜증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남편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조 활동을 시작하지만, 아내에게 활동을 제대로 설명해주진 않는다. 두 사람의 불통 속에서 영화는 계속 이어진다. <머나먼 길>은 얼핏 익숙한 노조 프로파간다 영화처럼 비춰진다. 국철에서 30년 동안 일한 타카노우에 씨에게 주어진 것은 포상금 10만 엔과 시계가 포함된 공로상 뿐이다. 영화는 이 시점에서 타카노우에서 처음 철도일을 시작한 시점으로 되돌아가며 시작된다. 일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노조를 만드는 모습, 노조 파괴를 위해 제2노조를 조직하는 회사의 대응 등이 이어진다. 고된 철도노동은 기계에 의해 대체되어간다. 영락없는 노동운동 영화의 모습을 한 영화는 파업이나 투쟁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장면 대신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갈등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일본 사회파 영화의 대표 배우인 히다리 사치코가 연출한 이 영화는 남성중심적으로 조직된 일본의 노동운동과 그것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가족들의 모습을 대립시키며, 프로파간다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교란한다. 한층 복잡해진 이 영화의 텍스트는 노동과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의 모순과 불화를 함께 지적한다. 버려진 탄광촌에서 맞이하는 영화의 엔딩은 그 모순을 아름답게 지적한다. 

<스타스트럭> 질리언 암스트롱 1982 

 재키는 망해가는 엄마의 호텔 바에서 일한다. 열네 살 사촌 앵거스는 재키를 데뷔시키기 위해 온갖 꾀를 부린다. 동네 클럽에서 성공적인 무대를 치운 재키는 밴드의 보컬 로비와 사랑에 빠진다. 익숙한 청춘영화의 전개를 따르는 <스타스트럭>은 엉망진창이다. 얼마나 엉망진창이냐면, 재키의 집이나 다름없는 엄마의 호텔과 바는 <록키 호러 픽쳐 쇼> 속 트랜실베니아 사람들의 저택처럼 느껴질 정도다. 로큰롤과 군무가 어우러지는 영화 속 뮤지컬 시퀀스들은 수많은 캐릭터들이 혼란스럽게 움직이고 말하는 와중에 흥겨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 흥겨움을 동력 삼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정신없이 달려나가는 뮤지컬 영화 특유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영화.

<원주민으로서 살아남는다는 것> 에시 코피 1978 

<내가 살아온 그대로의 삶> 1993 에시 코피 

 호주 원주민 마을에서 살아온 에시 코피는 원주민의 삶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는 어린 아이들에게 사냥, 요리, 도구 사용법 등 원주민의 생활방식을 교육하고, 백인 중심의 역사를 가르치는 공교육에 반기를 든다. <원주민으로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백인들의 국가 되어버린 호주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생존 기록이다. <내가 살아온 그대로의 삶>은 <원주민으로서 살아남는다는 것>에서 15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다. 에시 코피는 호주의 다른 이들과 단절된 채 원주민 마을을 유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판단하고 직접 지방정부 선거에 출마하려 한다. 15년의 세월 동안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어떤 아이들은 15년 전의 다른 성인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에시 코피와 함께 원주민을 위한 정치체계를 구성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15년 전의 영화 속 장면과 겹쳐지는 이 영화 속 장면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지적함과 동시에,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겨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지금은 어떠할까?

<두 친구> 제인 캠피언 1986

 영화는 제목 그대로 두 친구의 이야기다. 성적 좋은 루이스와 펑크족 복장의 켈리는 같은 중학교를 나와 같은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 예정이었다. 하지만 켈리는 이혼한 엄마의 애인이 진학을 반대하는 상황이다. 같은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게 될 상황에 처한 두 사람은 갈등을 겪는다. 영화는 절친인 두 사람이 결혼/연애/경제력을 통해 구성되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속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갈등이 이미 지나간 상황에서 시간을 뒤로 되돌린다. 한 두달 씩 이전의 시점을 가리키는 영화의 간자막은 두 친구가 겪는 갈등을 자매애로만 해쳐나갈 수 없는 구조적 문제임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나이스 컬러드 걸즈> 트레이시 모팻 1987 

 호주의 원주민 여성들은 돈이 없다. 이들에게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나아가는 길은 막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의 세 주인공은 놀기 위해 백인 남성을 꼬드긴다. 이들은 만취한 남성의 지갑을 훔쳐 달아난다. 단순한 이야기는 200년 전 호주에 처음 도착한 백인의 행위를 재연하는 것이다. 세 여성의 행동 사이사이 호주의 역사, 젠더, 인종문제 등을 다룬 이미지들이 함께 등장한다. 이는 역사를 단순히 재현하는 대신 그것을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다. 

<양치기의 아내> 수 브룩스 1984 

 영화는 헨리 로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런데 영화에는 또 다른 원작이 있다. 러셀 드라이스데일의 동명의 회화다. 영화는 두 원작이 호주 여성의 삶에 대해 보여주는 것을 영화로 번역하려는 시도다. 원작의 맥락을 세세히 알지 못하지만, 소설의 서사와 회화의 이미지가 짦은 단편영화 속에서 결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최선의 삶> 이우정 2020

 먼 길을 돌아 다시 <파수꾼>으로 돌아오고야 만 성장영화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2020

 이 영화는 <82년생 김지영>과 <애비규환> 사이에 놓여 있다. 전자는 임신과 출산 이후의 육아를 다루고 있으며, 후자는 임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관계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십개월의 미래>는 임신이라는 사건 자체를 다룬다. 주인공 미래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섹스를 통해 임신하게 되고, 그것은 미래의 삶을 통채로 바꿔놓는다. 갑작스럽게 남자친구 윤호와 결혼식 이야기가 나오지만, 두 사람은 경제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임신은 착실하게 쌓아오던 게임 개발자 커리어를 붕괴시키고, 음주와 같은 일상적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 가족관계는 복잡해지고, 회사 대표 등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자 돌아오는 이야기는 "왜 나를 나쁜 놈 만드냐"라는 대답이다. 임신한 몸으로는 바람도 피우지 못한다. 미래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사라진다. 미래는 아이의 태명을 '카오스'라 부른다. 뱃속의 아이가 가져온 혼돈은 미래의 삶을 이전과 다른 것으로 뒤바꾼다. 영화는 매주 변화하는 미래의 '십개월'을 성실하게 쫓는다. 그 과정을 착실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십개월의 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게 관객의 기억에 남는다. 

<젖꼭지 3차대전> 백시원 2021 

 방송국 PD 용은 '노브라'로 이슈가 된 여성 연예인 사진을 모자이크해서 내보내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는다. 이에 반발한 용은 상사의 지시에 불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영화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유쾌한 톤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성의 젖꼭지는 검열 대상이 아니지만 여성의 젖꼭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가리는 게 예의라는 상사의 말에 대항하는 용의 모습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직설적으로 담아낸다. 직설적인 톤이 영화를 다소 평이하게 만들지만, 영화의 주제만큼은 확실히 기억된다.

 <솔플> 자오신웨 2020   

 팬데믹으로 락다운이 내려진 중국의 한 대학 캠퍼스,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빈 교실에서 의문의 가상현실 게임에 참여한다. [슈퍼마리오]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와중에 그가 받은 미션은 경비원 몰래 배달음식을 들여오는 것. 하지만 이는 팬데믹으로 인해 금지되어 있다. 영화는 게임을 비롯한 여러 서브컬처의 형식을 빌려와 팬데믹 상황의 답답함을 토로하려 한다. 하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게임의 규칙은 제멋대로 뒤바뀌며,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상황을 보여주기에 급급해 영화의 형식적 논리는 성립되지 못하고 난잡해지기만 한다. 

<빨래> 박소현 2021 

 박소현 감독의 전작 <구르는 돌처럼>을 떠올리게 하는 댄스필름. 다섯 명의 여성 안무가가 1993년 초연된 남정호의 무용 [빨래]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빨래는 일상적인 가사노동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지만, 그것을 둘러싼 행위자들의 모습은 젠더화되어 있다. 빨래터는 여성들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다른 가사노동들과 마찬가지로 빨래 또한 여성적 노동으로 다뤄진다. 영화는 빨래와 빨래터를 둘러싼 여성 공동체의 연대와 의미를 되찾는 무대 위 공연과 함께 노동과 예술창작 행위로서의 빨래를 주목한다. 이는 감독의 첫 영화인 <야근 대신 뜨개질>에서 뜨개질을 대안적 운동으로 표현해낸 것과 유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NAL> 박정연 2020

 6분 동안 흘러나오는 이미지는 소위 '야애니'라 불리는 포르노 애니메이션에서 여성의 질과 자궁과 같은 내장기관을 묘사하는 이미지를 확대한 것이다. 이미지와 함께 흘러나오는 자막은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전파사례를 다룬 기사의 호모포비아적인 댓글들이다. '야애니'를 소비하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소비자들은 여성의 내장기관을 성적 흥분의 재료로 소비한다. 동시에 그들은 퀴어 커뮤니티가 중심이 된 클럽에서 벌어진 감염사태를 혐오한다. 신체의 내부마저 성적 객체로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동일하게 전염병 사태를 겪고 있는 퀴어 커뮤니티를 전염병을 전파하는 혐오적인 객체로 대한다. 모두가 동일하게 겪는 전염병 사태 앞에서도 여성과 퀴어의 신체는 성적, 혐오적 객체로 이야기된다. 작년 5월 이후에 다른 클럽발 감염사례에서 이정도의 격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NAL>은 그러한 상황에 대한 스산한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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